개항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역사. 1876년(고종 13) 조선과 일본 사이에 체결된 강화도 조약 이후 서산 일대에도 예외 없이 개화의 물결이 들이닥쳤다. 당시 국가 권력의 해체 과정에서 관료들의 수탈과 약탈이 횡행했는가 하면, 대외 무역의 확대에 힘입어 만석꾼으로 성장한 부호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하였다. 이른바 시대 변화에 편승하여 경제력과 권력을 거머쥔 새로운 주도 세력이 나타...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에서 활동한 교육자. 본관은 안동. 인조 때 영의정을 지낸 김상용(金尙容)[1561~1637]의 후손이다. 김상용은 병자호란 때 청과의 화의를 반대하였던 척화파 대신 김상헌(金尙憲)[1570~1652]의 형이다. 그는 청군이 쳐들어올 때 왕족과 종묘의 위패를 모시고 강화도로 피난하였다가 강화성이 함락되자 자결하였다. 김병년(金炳䄵)[1855~19...
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 초명은 경립(敬立), 자는 직재(直哉)·군언(君彦), 호는 관포(灌圃). 고조할아버지는 대사성을 지낸 박간(朴幹)이고, 아버지는 박현룡(朴顯龍)이다. 어머니는 현감 윤환(尹瓛)의 딸이다. 박홍미(朴弘美)[1571~1642]는 1603년(선조 36) 사마시에 합격하고, 1605년(선조 38)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승문원...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뱃사공들이 노를 저으면서 부르던 노동요. ‘시선(柴船)’은 일종의 상선이며, 본래 땔감을 실어 나르던 배였으나 어업에 이용되면서 큰 고깃배의 어획물을 실어 나르는 운반용 배를 뜻하게 되었다. 「시선뱃노래」는 서해안의 강화도에서 한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시선에서 부르는 노래가 대표적이지만, 서산의 「시선뱃노래」 또한 보존되어 전승해 오고 있다. 즉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