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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0830
한자 成應吉
영어음역 Seong Eunggil
이칭/별칭 덕일(德一)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춘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563년연표보기 - 서령판관 부임
활동 시기/일시 1567년연표보기 - 서령판관 퇴임
추모 시기/일시 1717년연표보기 - 자헌대부 병조판서에 추증
추모 시기/일시 1721년연표보기 - 정려를 받음
추모 시기/일시 1982년연표보기 - 충의문 건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58년연표보기 - 서산시 해미면 언암리 2구로 묘소 이장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홍성군 장곡면 화계1리로 묘소와 충의문 이건
묘소|단소 성응길 묘소 - 충청남도 홍성군 장곡면 화계1리 소래실
성격 무신
성별
본관 창녕
대표 관직 경상좌도병마절도사

[정의]

조선 전기 서령판관을 지낸 무신.

[가계]

본관은 창녕. 자는 덕일(德一). 증조할아버지는 개성유수(留守)를 지낸 성세정(成世貞)이고, 아버지는 증병조참판 성진(成鎭)이다. 7촌 작은아버지가 성혼(成渾)이다.

[활동 사항]

성응길(成應吉)은 성품이 온화하였다. 이른 나이에 무과에 급제하여 30세 무렵에 판관으로 있다가 서산군수로 부임하였다. 1563년(명종 18)부터 1567년(명종 22)까지 5년 동안 재임하면서 많은 선정을 베풀었다. 임진왜란 당시 경상좌도병마절도사였던 성응길은 화양수사(華陽水使)에 임명되어 왜군과 싸우다 전사하였다.

[묘소]

묘소는 홍성군 장곡면 화계1리 소래실에 있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후손들은 성응길이 전투에 사용했던 패도(佩刀) 및 고의(袴衣)를 거두어 인천 오동곡촌에 예장하였다. 1958년 서산시 해미면 언암2리로 이장하여 부인과 쌍분으로 모셨다. 1980년대 후반 서산시 해미면 언암리에 공군 비행장 건립이 확정되자 1990년 후손들이 홍성군 장곡면 화계1리에 창녕 성씨 묘역을 새로이 조성하고, 성응길의 묘소와 정려도 이곳으로 옮겼다.

[상훈과 추모]

1717년(숙종 43)에 자헌대부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1721년(경종 1) 정려를 받았으나 건립되지 못하고 당진군 정미면 대조리 창녕 성씨 집안에서 대대로 보관해 왔다. 1982년에야 12세손인 성만경(成萬慶)이 나서서 충의문을 건립하고, 그해 9월 25일 많은 유림이 참석한 가운데 준공식과 현판식을 가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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