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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0798
한자 慶州崔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대/남북국 시대,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홍제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본관 경주 - 경상북도 경주시
입향지 서산 지곡면 -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산성리 일대 -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산성리 지도보기
성씨 시조 최치원
입향 시조 최사

[정의]

최치원(崔致遠)을 시조로 하고 최사(崔泗)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서산시 세거 성씨.

[개설]

경주 최씨고운(孤雲) 최치원[857~?]을 시조로, 최사를 입향조로 하는 서산시 지곡면 일대의 세거 성씨이다. 서산의 경주 최씨는 고려~조선 전기까지의 기록은 거의 확인되지 않는다. 경주 최씨의 서산 입향조는 최사인데 바로 최몽량(崔夢亮)[1579~1627]의 아들이다. 그는 양주에서 살다가 지곡으로 옮겨와 살았으며, 고려 후기 절의계 인물 최정의 후손이다.

[연원]

경주 최씨는 신라 6촌의 하나인 돌산(突山), 고허촌(高墟村), 소벌도리(蘇伐都利)를 원조로 하고, 최치원을 시조로 하고 있다. 최치원은 12살의 나이로 당나라에 유학하여 18세의 나이로 과거에 급제하였다. 태산(太山), 함양(咸陽), 부성(富城) 등지의 태수(太守)를 지냈으며, 시무 10조를 올렸으나 시행되지 않자 난세를 비관하며 전국을 유랑하다가 해인사로 들어가 은거하다 생을 마쳤다. 경주 최씨는 신라 6두품 집안으로서 이후 고려 건국에 적극 참여하여 유력 가문으로 성장하였다. 대표적 인물로는 재상까지 오른 최승로(崔承老)[927~989] 등을 들 수 있다.

[입향 경위]

조선 후기에 서산에 정착한 경주 최씨지곡면 일대에 세거하게 되었다. 경주 최씨의 서산 입향조는 최사인데, 그는 경기도 양주에서 살다가 지곡으로 옮겨와 살았다. 그가 어떠한 연유로 서산 지역에 입향하게 되었는지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자세히 알 수 없다.

[현황]

현재 지곡면 산성리 일대에는 경주 최씨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대표적인 성씨이다.

[관련 유적]

경주 최씨와 관련된 유적은 대부분 지곡면 일대에 자리하고 있다. 먼저 최치원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부성사(富城祠)와 그 아래 솔대배기에 있는 최몽량·최호주·나주 정씨 삼강 정려가 대표적이다. 부성사대원군에 의해 훼철되었다가 1907년 후손들에 의해서 다시 재건되었으며, 최몽량의 정려는 아들 최사가 경기도 양주에서 서산으로 이거하면서 함께 이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인근 지곡면 화천리에는 고려 시대 두문동 72인 중의 한 명인 최청(崔淸)[1344~1414]을 제향하는 모송사(慕松祠)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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