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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읍성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0584
한자 瑞山邑城
이칭/별칭 서산군성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관아문길 1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서정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조성|건립 시기/일시 1452년연표보기 - 착공
조성|건립 시기/일시 1475년 11월연표보기 - 완공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76년 1월 8일연표보기 - 성내의 아문과 외동헌 등의 시설물이 ‘서산관아문 및 외동헌’이라는 이름으로 충청남도 유형 문화재 제41호로 지정
현 소재지 서산읍성 - 충청남도 서산시 관아문길 1[읍내동 492]지도보기
원소재지 서산읍성 - 충청남도 서산시 관아문길 1[읍내동 492]
성격 성곽|읍성
양식 석성
관련 인물 정분(鄭苯)|문종|성종
크기(높이,길이,둘레) 3m~3.9m[높이]|1,800m[둘레]
소유자 서산시
관리자 서산시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조선 전기 읍성.

[건립 경위]

서산읍성(瑞山邑城)은 여말 선초에 축조된 대부분의 읍성이 그러하듯이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축조되었다. 1452년(문종 2) 삼도도체찰사였던 정분(鄭苯)의 건의에 의해 축조가 시작되었다. 1452년(단종 즉위년)에 일시 중단되었다가 1475년(성종 6) 11월 축성이 완료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 서산읍성은 석성으로 둘레가 3,710척이고, 높이가 12척이었으며, 서쪽으로 작은 시냇물이 성내로 흘러들어 왔다고 한다.

뒤이어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옹성[큰 성문 밖의 작은 성]은 없었지만 여장[성 위에 낮게 쌓은 담]이 374개소, 곡성[성문을 밖으로 둘러 가려서 구부러지게 쌓은 성]이 8개소, 성문이 동·서·남에 3개소, 우물과 샘이 3개소, 창고 역시 3개소가 있었다고 한다. 또한 성내에는 객사에 딸린 안정청 6칸, 동헌 12칸, 서헌 10칸, 향청 8칸, 중대청 8칸, 하마대 5칸 등이 있었고, 아사(衙舍)에는 동헌 11칸, 아사 15칸, 책방 3칸, 향청 10칸, 관청 30칸, 작청 9칸 등이 있었다고 한다.

[위치]

서산시 읍내동 일대와 옥녀봉의 남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데, 현 서산시청을 둘러싸고 있어 마치 서산시청의 담장처럼 이용되고 있다. 서쪽은 명림산이 가로막고 있고, 북쪽으로는 봉화산부춘산·옥녀봉이 병풍같이 둘러싸고 있다. 동쪽과 남쪽으로는 시가지와 경작지가 펼쳐져 있다.

[형태]

둘레는 1,800m이며, 남벽이 거의 평지를 지나고 있는 평산성(平山城)의 형태로 되어 있는 석성이다. 평지에 축조되어서 그런지 남북으로 길쭉한 장타원형의 형태를 하고 있다. 북벽과 동벽, 특히 동북 귀퉁이 부분의 성벽 너비가 가장 넓게 축조되어 있다.

[현황]

2011년 현재 서산읍성의 소유자 및 관리자는 서산시이다. 도로 건설과 함께 민가가 들어서면서 대부분이 파괴되어 있는 상태이다. 서산시청 뒤쪽의 담장처럼 남아 있는 구간 120m 정도만이 그런대로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성벽은 대부분이 붕괴되고 일부만 남아 있는데, 여기에서 보면 성벽의 기저부 폭은 6m, 높이는 3m의 크기로 남아 있다. 동북 모서리 부분은 기저부 폭이 14.8m, 성벽의 높이가 3~3.9m의 크기로 남아 있다.

현재 성내에는 ‘서령군문(瑞寧郡門)’이라는 편액이 걸린 아문(衙門)과 정면 7칸, 측면 4칸의 외동헌, 정면 8칸, 측면 2칸의 객사 등만이 남아 있다. 이들 시설물은 ‘서산관아문 및 외동헌’이라는 이름으로 1976년 1월 8일 충청남도 유형 문화재 제41호로 지정되었다. 서산읍성서산군성(瑞山郡城)이라고도 부른다.

[의의와 평가]

서산읍성은 왜구를 비롯한 해적의 방비를 위해 축조한 성곽인 만큼 여말 선초의 관방의 실태를 확인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또한 지방 관아가 성내에 자리하고 있었던 만큼 조선 시대 읍사(邑司)의 구조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로 의미가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7.07.04 둘레 변경 1,200m -> 1,80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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