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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성현민의 난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0394
한자 富城縣民-亂
이칭/별칭 부성민란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윤용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182년연표보기 - 부성현민의 난 발생
성격 민란

[정의]

고려 후기 부성현[지금의 서산]에서 일어난 민란.

[역사적 배경]

서산[부성현]에서 민란이 일어난 시점은 1182년(명종 12)이다. 이때는 무인 정권 시대로 당시 무인의 집권에 자극받은 각 지역에서 농민 혹은 천민들이 난을 일으켜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충청 지역에서는 1176년(명종 6) 공주에서 망이·망소이의 난을 시작으로 충청도 전역으로 확산되었으며, 서산에서 민란이 일어난 같은 해에 옥천에서도 민란이 일어났다.

[경과]

부성현민의 난은 당시 중앙에서 파견된 현령[문관]과 현위[무관]의 갈등으로 백성들의 고통이 심해지면서 발생하였다. 부성현민들이 현령과 현위가 있는 관아를 공격하여 현령을 감금하고 현위 휘하의 관원을 살해하였다. 한편 『양렬공실기』에는 당시 사건의 발단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현위가 향리 아전들의 비위(非違)를 통제 감독하는 과정에서 아전들이 서산 지역민을 동원하여 현위를 살해하였다.”이를 통해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와 지역 향리들 간의 갈등에서 빚어진 사건으로 볼 수 있다.

[결과]

정부에서는 지방관의 파견을 철폐하고 이에 대한 징계 조치로 수령을 파견하지 않고 행정 구역을 폐지하기에 이른다. 이 사건으로 지역적 명예가 실추되었을 뿐 아니라 행정 업무를 처리하기 위하여 공주 또는 청주를 경유해야 했다.

[의의와 평가]

고려 무인 정권 시대에 전국적으로 만연한 민란이 서산 지역에서도 일어남으로써 당시의 사회적 모순과 동향이 일반화된 것이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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