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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0037
한자 政治
분야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심문보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에서 지역민을 통해 획득한 권력을 행사하여 지역의 발전을 도모하는 총체적 활동.

[개설]

서산 지역의 정치 활동으로는 선거를 통한 대통령, 국회 의원, 광역 단체장, 지역 단체장, 시 의원 등을 선출하는 지역민의 활동과 이를 통해 선출된 지역 단체장 및 시의원들이 서산시청서산시의회를 통해 이루어지는 지방 자치 활동을 들 수 있다.

국회나 시 의회에 파견되어 공적 업무를 수행할 대표자 선출의 경우 국회 의원은 충청남도 서산시와 태안군을 통합하여 1명을 선출하며 서산시의회 의원은 총 13명[비례 2명 포함]을 선출한다. 서산시의 정치를 대통령 선거와 서산시의회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시기별 대통령 선거]

지역의 정치적 성향을 파악하는 방법은 선거 결과를 통해 유추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에 시기별 서산 지역 대통령 선거 결과를 통해 이를 파악해 보고자 한다.

1. 제1공화국 시기

한국 정치사에서 제1공화국은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 이후부터 1960년 6월 15일까지를 말한다. 한국 역사상 최초의 공화 헌정 체제(共和憲政體制)이다. 제1공화국 시기 서산 지역 정치 참여는 2대 대통령 및 3대 부통령 선거부터였다. 초대 대통령 및 1·2대 부통령 선거는 국회의 무기명 투표로 결정되어 서산시 지역민의 투표 결과로 결정되지는 않았다.

서산 지역의 지역민들이 최초로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것은 2대 대통령 및 3대 부통령 선거였다. 실제 대통령 당선자인 이승만(李承晩)은 서산 지역에서 6만 9993표를 얻어 다른 후보보다 압도적으로 앞섰다. 부통령의 경우에는 이범석(李範奭)이 6만 3093표로 압도적이었으며, 실제 부통령 당선자인 함태영(咸台永)은 3,727표에 불과하였다.

1956년 5월 15일 실시된 3대 대통령 및 4대 부통령 선거에서는 이승만장면(張勉)이 각각 당선되었다. 대통령 후보로 나온 민주당의 신익희(申翼熙) 후보가 선거일 직전 급서하여 무효표가 많았다. 부통령 선거에는 이기붕(李起鵬)이 4만 2709표를 얻었으며, 실제 당선자인 장면은 2만 9258표를 얻어 2위를 기록하였다.

1960년 3월 15일 실시된 4대 대통령 선거 및 5대 대통령 선거는 자유당의 이승만이기붕이 당선되었으나, 4·19 혁명을 통해 무효가 되었다. 4대 대통령 선거에는 자유당의 이승만과 민주당의 조병옥(趙炳玉)이 입후보하였으나, 선거 운동 가운데 조병옥이 사망하여 이승만이 단일 입후보하게 되었다. 서산 지역에서는 총 선거인수 9만 7554명 가운데 9만 1022표를 얻었다. 5대 부통령에 입후보한 사람은 자유당의 이기붕, 민주당의 장면, 통일당의 김준연(金俊淵), 국민당의 임영신(任永信) 등으로 이기붕이 8만 8147표, 장면 5,391표, 김준연 1,000표, 임영신이 224표를 얻었다. 그러나 선거가 무효화됨에 따라 내각 책임제로 개헌되고 양원 합동 회의의 간접 선거를 통하여 윤보선(尹潽善)이 4대 대통령이 되었다.

2. 제2공화국~제3공화국 시기

제2공화국~제3공화국은 1960년 4·19 혁명 이후 1972년 10월 17일 헌법을 개정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1961년 5월 16일 군사정변 이후, 대통령 중심제 및 단원제로 복귀하게 되는데, 1963년 10월 15일 제5대 대통령 선거를 시행하게 된다. 선거결과 박정희(朴正熙)윤보선을 근소한 차이로 누르고 당선되었는데 서산 지역의 선거 결과도 이와 비슷하였다.

6대 대통령 선거는 1967년 5월 3일 실시되었다. 박정희윤보선을 제치고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서산 지역에서는 당선자인 박정희보다 윤보선이 앞서는 결과가 나왔다. 7대 대통령 선거는 1969년 10월 17일의 국민 투표에서 3선 개헌안이 유효 투표수의 65.1%의 찬성으로 가결되어 다시금 박정희가 대통령 후보로 나서게 되었다.

제1야당인 신민당에서는 김대중(金大中)이 후보로 나섰는데, 장기 집권에 대한 국민의 경계심과 야당 내 경선 과정과 세대교체에 대한 관심 및 김대중 후보 및 야당의 역동적인 선거 운동으로 인해 박정희 후보에게 어려운 상황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투표 결과는 박정희가 95만 표의 비교적 안정된 차이로 당선되었다. 이에 관해서는 선거의 투개표 과정에서의 광범위한 부정 의혹이 계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서산 지역 결과도 박정희, 김대중 순이었다.

한편, 이전까지 서산군의 선거구가 갑·을구로 분리되어 각 구에서 1명씩 국회 의원을 선출하였다. 이에 서산은 서산 갑구, 태안은 을구로 분리되어 1960년 7월 29일 제5대 국회 의원 선거까지 실시되어 오다가 제6대 국회 의원 선거 때부터는 충청남도 제9지역 선거구로 단일화되었다. 1963년 11월 23일 실시된 제6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는 8명이 입후보하였으며 모두 정당의 공천을 받아 출마한 것이 특징이다. 투표 결과 공화당의 이상희 후보가 압도적인 득표로 당선되었다.

제7대 국회 의원 선거는 1967년 6월 8일 실시되었다. 총 6명의 후보가 출마하였으며 이상희 후보가 압도적인 득표로 당선되어 2선 국회 의원이 되었다. 1971년 5월 25일에 실시된 제8대 선거에서는 모두 6명이 출마하였는데, 개표 결과 박승규 후보가 압도적인 득표로 당선되었다.

3. 제4공화국 시기

제4공화국 시기는 10월 유신 이후부터 1981년 3월 3일까지를 말한다. 이 기간 동안 8대~11대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었다. 8대 대통령 선거는 간접 선거로 진행되었다. 1972년 10월 17일의 ‘10·17 비상조치’로 대통령 직선제 대신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을 선출하도록 한 것이다.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을 선출하는 선거는 1972년 12월 15일에 실시되었다. 서산읍에서는 김영일·나원기 후보가 당선되었으며, 인지면 유기승, 부석면 강모준, 팔봉면 서원모, 지곡면 임종연, 대산면 김득환, 성연면 이재성, 음암면 김기흥, 운산면 김진오, 고북면 김기혁, 안면면 지창권·윤주욱, 남면 문세호, 근흥면 김인학, 소원면 이재원, 이북면 안덕순·이은신, 해미면 박준상, 태안읍 김언석·이화영이 각각 당선되었다. 9대 대통령 선거도 8대 대통령 선거와 같은 양상이었다.

10대 대통령은 ‘10·26 사태’로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되면서 비상계엄 속에서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던 최규하(崔圭夏) 국무총리가 1979년 12월 6일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해 당선되었다. ‘12·12 사태’로 인한 전두환(全斗煥)의 실권 장악과 1980년 8월 16일 최규하 대통령의 사임에 따라 1980년 8월 27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전두환을 제11대 대통령으로 선출하였다. 9대부터 11대까지 모두 제2대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들이 대통령을 선출하였다.

4. 제5공화국 시기

제5공화국은 1981년 3월부터 1988년 2월까지이다. 12대까지 이어져오던 간선제가 1987년 ‘6·10 민주 항쟁’으로 인해 직선제로 전환되었다. 이에 따라 1987년 12월 16일 제13대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었다. 야당 후보 단일화가 결렬됨에 따라 집권 여당인 민정당의 노태우(盧泰愚), 통일민주당의 김영삼(金泳三), 평화민주당의 김대중, 신민주공화당의 김종필(金鍾泌)이 후보로 나섰는데, 민정당의 노태우 후보가 총유권자의 32%에 해당하는 828만 2783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13대 대선은 지역별 대립 구도가 가장 극명하게 나타났는데, 충청남도 지역은 김종필 후보를 지지하였으며, 서산 지역도 이를 그대로 반영한 선거 결과를 보여주었다.

5. 제6공화국 시기

제6공화국은 1988년 3월부터 2011년 현재도 진행 중이다. 이 시기에는 무엇보다 지방 자치 선거가 활발해지는 특징을 보인다. 먼저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김영삼 후보가 당선되었다. 이 시기는 서산군과 서산시가 나눠져 있었는데, 서산군에서는 정주영(鄭周永) 후보가 1만 4605표를 얻어 1위를 차지하였다. 서산시에서도 정주영 후보가 1만 292표를 얻어 역시 1위를 차지하였다. 이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서산 지역에서는 서산의 지역 경제와 연고가 깊던 통일민주당의 정주영 후보가 양김 후보를 앞서는 강세를 보여주었다.

1997년 12월 18일 실시된 15대 대통령 선거에는 한나라당의 이회창(李會昌), 국민회의 김대중, 국민신당 이인제, 국민승리21의 권영길, 공화당 허경영, 바른정치연합의 김한식, 한국당의 신정일 등이 출마하였다. 서산 지역에서는 김대중 후보가 강한 모습을 보였다.

2002년 12월 19일 실시된 16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한나라당 이회창,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하나로연합 이한동,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사회당의 김영규, 호국당의 김길수가 후보로 나섰다. 서산 지역에서는 노무현 후보가 3만 6292표로 1위를 차지하였다. 이는 당시 행복 도시와 충청권 발전 기대에 따른 결과로 보인다.

17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한나라당 이명박, 민주노동당 권영길, 민주당 이인제, 창조한국당 문국현, 참주인연합 정근모, 경제공화당 허경영, 새시대참사람연합 전관, 한국사회당 금민, 무소속 이회창이 후보로 나섰다. 서산 지역에서는 당선자인 이명박 후보가 약간 우세한 결과를 보였다.

[서산시의회]

서산시의회의 조직은 의장, 부의장, 사무국장 등으로 편성되어 있으며, 그 외에도 3개의 상임위원회[의회운영위원회·총무위원회·산업건설위원회]와 특별위원회를 두고 있다. 서산시의회의 주요 기능으로는 의결 기능, 통제 기능, 청원 처리 기능 등을 들 수 있다. 이중 의결 기능은 서산시의회의 정책과 입법, 주민의 부담, 기타 서산 시정의 운영에 관한 사항을 심의하여 결정하는 기능을 말한다.

서산시의회는 조례의 제정 및 개폐, 예산의 심의·확정, 결산의 승인, 사용료·수수료·부담금·지방세 또는 가입금의 부과와 징수, 기금의 설치·운용, 중요 재산의 취득·처분, 공공시설의 설치·관리 및 처분, 예산 외 의무 부담이나 권리의 포기, 청원의 수리와 처리 등에 관한 의결 기능을 수행하며 의결 형식은 조례·승인·동의 형태 등이 있다.

통제 기능은 집행부의 독주나 부당한 처사를 시정하기 위하여 감사를 통하여 시정을 통제하는 기능을 말하며 주요 통제 수단으로는 시장 등의 출석·답변·의견 진술의 요구, 서류 제출의 요구, 현지 확인, 행정 사무 감사 또는 조사 등이 있다. 청원 처리 기능은 시민이나 시에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이 시의 행정 사무 처리에 대한 불만 또는 희망 사항을 진술하고 그 시정을 요구할 경우 이를 처리하는 기능을 말한다. 이 때 법령에 어긋나는 것, 재판에 간섭하는 것, 국가 원수를 모독하는 것을 제외한 피해 구제, 비리 공무원의 처벌, 공공시설 운영 등 시의 권한에 속하는 모든 사항은 청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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