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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00812
한자 金元健
영어음역 Kim Wongeon
이칭/별칭 자이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송만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의병
출신지 전라북도 남원시
성별
생년 1595년연표보기
본관 경주

[정의]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가계]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자이(子以). 개국원훈 계림군(鷄林君) 제숙공(齊肅公) 김균(金稛)의 후손이며, 부제학(副提學) 김신민(金新民)의 7세손이다. 완암 김영진(金英振)의 아들이다.

[활동사항]

김원건은 어려서부터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늘 고을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 오랑캐들이 서울로 쳐들어와서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였다는 말을 듣고 군량미 100석과 집안의 노비 50명을 내놓았다.

김원건은 군량미와 군졸들을 모아서 바로 길을 떠나 전주에 도착하였다. 이 날 남원·임실·곡성·구례로부터 의병에 참가하려는 사람들이 밤을 타서 도착하였는데, 군량미는 5,000여 석, 군졸은 3,000여 명에 이르렀다.

이들은 곧바로 청주로 달려갔으나, 마침 눈보라가 크게 일어서 진을 치고 머물렀다. 각지에서 올라온 의병을 모두 합치니 1만 2,000여 명에 달했다. 이 때 사촌 아우 능주목사 김원립(金元立)이 그곳에 당도하여 진을 치고 과천에서 남한산성까지의 통행로를 확보하였다.

이 날 한밤중에 오랑캐 부대를 습격하여 적 500~600여 명을 죽였고 수많은 전리품을 얻었는데, 아군의 사망자는 불과 2명뿐이었다. 강화가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임금이 있는 북쪽을 바라보고 통곡하며 군사를 해산하였다. 이어 독전어사(督戰御史) 김경여(金慶餘)를 만나 서로 붙잡고 울분을 토로하고 돌아왔다. 그로부터 3년 뒤인 1639년(인조 17)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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