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개항기의 문신, 의병. 조선 1860년(철종 11) 서울에서 태어나 1889년(고종 26)부터 3년간 선전관 벼슬을 지냈다. 이 무렵 국운이 기울기 시작하자 벼슬을 버리고 국권 회복을 꾀하던 중 1906년 고종으로부터 밀지를 받고 의병에 투신, 의병장이 되어 육남소모장(六南召募將) 칭호를 받았다. 이후 진주에 거주하면서 동지들을 규합하여 의병투쟁을 벌였다. 1907년 김동신(...
조선 말기의 의병. 진주 출신으로, 승지 벼슬을 지내 윤승지(尹承旨)로 일컬어지던 인물이다. 일제의 기록에 전직 대관, 승지 출신 등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벼슬을 버리고 항일 의병투쟁으로 일생을 보냈다. 윤자승이 이끈 의병의 규모는 200명 정도였으며, 최대일 때는 600명이나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주로 진주 인근의 덕산·삼가·산청 등지에서 활약했다....
조선 말기의 의병장.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성숙(性叔), 호는 후은(後隱). 경상북도 영천 출신. 고려삼중대광 개국원훈 이총언을 시조로 한 벽진이씨(碧珍李氏)의 후손이며, 이정봉(李禎鳳)의 아들이다. 1907년 조선 군대의 강제해산 이후 전국 각지의 의병봉기가 확대될 무렵, 경상남도 산청에서 의병을 일으켜 박동의(朴東儀)를 의병장으로 하고 이학로는 부장(副將)이 되어 의병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