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 전기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행정구역 명칭. 강주(降州)는 지금의 충청북도 진천군을 말하는 것으로, 고려 초기 제정된 이름이다. 995년(성종 14)에 지방관으로 자사(刺史)를 파견하였고, 1005년(목종 8)에 그것이 폐지되었으며, 1018년(현종 9)에는 청주목에 소속되었다. 『고려사(高麗史)』권56, 지리1, 청주목(淸州牧)조에 ‘고구려의 금물노군(今...
-
고구려 때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地理志)」에 고구려의 금물노군(今勿奴郡)을 황양군(黃壤郡)이라고도 한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고려사(高麗史)』「지리지(地理志)」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및 『여지도서(輿地圖書)』「충청도(忠淸道) 진천현(鎭川縣)」 조에는 금물노군은 고구려 지명으로 만노군(萬弩郡),...
-
삼국시대 충청북도 진천 서쪽 지역에 있던 백제의 성. 금현성은 550년(백제 성왕 28년, 고구려 양원왕 6년) 백제가 고구려 영토에 있던 도살성(道薩城)을 공격하여 함락시키자 고구려가 이에 대응해 함락시킨 백제의 성이다. 오늘날의 충청북도 진천군 서쪽이라는 설이 있고 충청남도 연기군 전동면과 전의면의 경계에 있는 금이성(金伊城)이라는 설도 있다. 금현성과 관...
-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실시하는 디지털 기반의 지적(地籍) 구축 사업. 디지털 지적구축 시범사업은 충청북도 진천군이 도내에서 최초로 추진하는 세계 측지계 기반의 지적 구축 사업으로,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화상리 소재 화상지구 662필지 634,312㎡를 대상으로 한다. 이번 사업은 전액 국비를 투입하여 실시하는 사업으로 경계 설정과 그에 따른 면적 증감 및 청산 등을 면밀...
-
신라 때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 설치된 행정 구역. 만노군(萬弩郡)이라는 지명은 『삼국사기(三國史記)』「김유신열전(金庾信列傳)」에 처음 나타난다. 진평왕 때 김서현(金舒玄)을 고구려와의 접경 지역인 만노군 태수로 파견하였는데 여기서 김유신(金庾信)이 태어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려사(高麗史)』「지리지(地理志)」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및 『여지도서(輿地圖...
-
고려 성종 때 별호로 제정된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옛 이름. 신라 말에 진천 지방의 유명한 산으로 상산(常山)이 있었고, 이 산에 세워진 사찰이 상산사였다. 진천의 명칭이 통일신라 이래로 자주 바뀌었고, 특히 후삼국시대에 들어서도 두 차례나 바뀌었음을 볼 때 당시 진천의 명산인 상산이 이 지역의 명칭으로 병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라 말부터 불려오던 ‘상산’이라는 지명...
-
2008년 충청북도 진천군의 지역 정체성 정립과 홍보를 위해 특허청으로부터 등록받은 상표. ‘생거(生居)’란 형용사형 용어로 ‘살기 좋은 곳’ 또는 ‘살아서 좋은 곳’이라는 의미이다. 진천은 비옥한 진천평야가 있고 경치가 아름다우며, 인심은 후덕하고 유구한 역사와 더불어 전통문화·불교문화·유교문화 등이 발달되었다. 또한 먹을거리·볼거리·놀거리 등이 풍부하여 많은 사람들이 살기 좋은...
-
조선 전기 세종대왕이 행차하다 유숙하였던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고을 이름. 세종대왕이 안질을 치료하기 위해 청주의 초정(椒井)에 행차하다가 하룻밤을 머물다가 갔다고 하여, 북평(北平)을 성평(聖平)이라고 하였다. 1444년(세종 26)에 세종이 안질을 치료하고자 물이 좋다는 청주 내수의 초정에 행차하기 위하여 서울을 떠났다. 세종은 죽산을 거쳐 진천을 지나다가 진천읍내의...
-
고려 후기 충청북도 진천 지역이 속한 지방 행정구역. 고려시대 지방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하여 성종대 전국을 10도(道)로 나누었다가 실효를 거두지 못하여 5도로 개편하였다. 이때 양주와 광주 소속의 기존 군현과 청주·충주 소속의 군현들을 합하거나 나누어 편성하면서 명칭의 변경이 있었으나, 충숙왕 때는 양광도로 만들었다. 『고려사(高麗史)』권 56, 지(志) 제10 양...
-
고려 후기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행정구역 이름. 1269년(원종 10)에 진천임씨인 임연(林衍)이 김준(金俊)을 제거하고 최고 집정자가 되자, 왕이 임연의 고향인 진주[창의현(彰義縣)]을 고쳐 의령군(義寧郡)으로 승격시켰다. 지방관으로 지의녕군사(知義寧郡事)를 두었다. 『고려사(高麗史)』 권56, 지10 양광도 진주조를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1259년(고종...
-
고려시대 충청북도 진천이 소속되었던 지방 행정구역. 중원도는 995년(성종 14)에 설치된 10도(道) 가운데 하나로, 고려시대 진천이 소속되었던 지방 행정구역이다. 지방에 대한 체계적인 통제를 통하여 중앙 집권화를 굳히려는 목적에서 제정되었다. 고려는 후삼국 통일 이후 국가체제 정비에 나서게 되었고, 그 결과 983년(성종 2)에 12목(牧)을 설치하였다....
-
고려시대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행정구역 이름. 고려 태조가 궁예왕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뒤 청주 세력이 반란을 일으키자 이들을 진압하기 위하여 진천에 군사를 파견하여 청주 세력의 반란을 진압할 수 있었다. 청주를 진압하였던 전초기지였다는 의미에서 진주(鎭州)라고 명칭을 변경하였다. 진주는 고려군이 청주세력을 ‘진압(鎭壓)한 곳’, 혹은 고려군이 ‘진수(鎭守)한 곳’이라...
-
충청북도 진천군의 조선시대 행정구역 명칭. 진천현(鎭川縣)은 조선왕조 건국 이후 1413년(태종 13) 전국적인 지방제도 개편 때 제정되어 조선 말까지 유지되었으며, 1895년(고종 32) 전국적으로 현(縣)을 군(郡)으로 일괄 개칭하면서 폐지되었다. 1413년의 전국적인 지방제도, 즉 군현제 개혁은 고려 후기 이래 무질서하게 승격되었던 지방 행정구역의 읍격(...
-
고려 후기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행정구역 이름. 충청북도 진천 지역 출신인 임연(林衍)이 김준(金俊)과 함께 최의를 제거하고 최씨 정권을 붕괴시키는 데 공을 세웠다. 이에 임연의 고향인 진주(鎭州)를 창의현(彰義縣)으로 승격시켜 그의 공훈에 대해 포상했다. 『고려사(高麗史)』권56, 지리지 양광도 청주목 진주조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고종 46년 임연의...
-
고려시대 충청북도 진천이 속해 있던 행정 구역. 청주(淸州)는 919년(태조 2)에 청주로 이름 붙여졌고 983년(성종 2)에 처음으로 12목을 설치했을 때 청주가 그 가운데 하나로 선정되었다. 그 후 1018년(현종 9) 8목으로 정리되었을 때도 청주목(淸州牧)은 충청권역의 행정 중심지로서 역할을 수행하였다. 신라 말 중앙정부의 지배력이 약화된 틈을 타 호족이라 불리는...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초평저수지 일대에 붕어마을을 조성하기 위한 사업. 초평붕어마을 조성사업은 향토음식점 붕어마을이라는 관광 이미지 제고 및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전개되었다. 초평붕어마을 조성사업은 도비 5,000만 원과 군비 5,000만 원 등 총 1억 원을 들여 조형물을 설치하고 홍보 안내 표지판 등을 설치한 사업이다. 붕어 형상을 오석으로...
-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위생관리 우수·모범 음식업소를 선발하는 제도.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일반 음식점에 대해 특별위생 지도점검을 실시하고, 그 결과 업소의 위생 관리 청결도가 다른 음식점에 비해 우수한 업소를 ‘클린음식점’으로 선발하고자 제정된 제도이다. 이를 통해 선발된 업소들을 표창·지정하여 진천군 음식 문화의 수준을 높이려는 목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또한 우...
-
신라가 삼국통일 후 설치한 9개 주의 하나. 한산주(漢山州)라는 지명은 『삼국사기(三國史記)』「신라본기(新羅本紀)」와 「지리지(地理志)」, 『고려사(高麗史)』「지리지(地理志)」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 및 『여지도서(輿地圖書)』, 『대동지지(大東地志)』 등에 기록되어 있다. 한산주는 삼국통일 후 신라가 설치한 9개 주의 하나로 오늘날의...
-
통일신라 때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 설치된 행정 구역. 흑양군(黑壤郡)이라는 지명은 『삼국사기(三國史記)』「지리지(地理志)」에 신라의 한주(漢州)에 속한 지역으로 처음 나온다. 고구려의 금물노군(今勿奴郡)을 개칭한 것이며 황양군(黃壤郡)이라고도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고려사(高麗史)』「지리지(地理志)」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및 『여지도서(輿地圖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