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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 마을의 화려했던 상점 거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B020103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마을/마을 이야기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오동리 천운 마을|복암리 구암 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전경숙, 양라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화순 광업소 전성기 1988년 - 화순 광업소 석탄산업 종사자 수만도 2,175명이었으며, 가족들까지 포함하면 최고의 번영을 구가했던 시기이다.
오동수퍼 개업 시작 2012년 3월 1일 - 천운 마을 입구에 위치한 오동수퍼는 2012년 3월 1일 개업을 시작했다.
마을지 천운장 터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오동리 천운 마을
마을지 천운장 극장 터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오동리 천운 마을
마을지 화순탄광 연립사택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천운길 17
마을지 화순 광업소 부속병원 터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오동리 천운 마을
마을지 화순 광업소 대운동장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복암리
마을지 국도 15호선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복암리
마을지 제1구암교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마을지 충의로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복암리
마을지 부식가게 터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오동리 천운 마을
마을지 양복점 터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오동리 천운 마을
마을지 세탁소 터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오동리
마을지 오동수퍼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오동리 천운 마을

[마을이 시끌벅적했지!]

천운 마을에서부터 화순 광업소까지 충의로를 따라 가다보면 길 양쪽으로 문이 닫혀있는 상가들이 눈에 띈다. 도로를 따라 작지만 여러 채의 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모양이 과거에는 번화했던 상점 거리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호시절이었던 1970-80년대 화순 탄광 마을에는 직원들만 2,000여 명이 넘었고, 월급이 면서기보다 많았다.

“남자 분들은 쌀 5가마 정도 급료를 받았제. 쌀 한 가마당 3,200원 할 때지. 막장을 들어가면 200만원이 넘었응께, 연봉 3,000만원이 되었제. 종업원들은 탄을 무료로 배부해 줬어. 1달에 138장씩 탄표를 줬제. 다 못 때니까 탄표를 일반인에게 개인 거래를 했어. 여자 분들은 선탄부라 해서 콘메어벨트에서 나무, 조각들을 골라 내제. 급료가 남자분들의 1/3이지만, 보너스, 퇴직금, 학자금까지 주니 좋았제”(윤대림)

탄광 노동자들의 넉넉한 보수로 탄광 마을은 번창하였다. 화순 광업소 직원들을 상대로 마을길 양쪽으로 상점들이 빼곡히 들어섰다. 당시 상점 거리에는 식당, 술집, 양복점 등이 있었고 지금도 흔적이 남아 있다.

특히 식당과 술집들이 많았는데, 고된 노동을 마친 광부들은 이곳에서 돼지비계와 막걸리로 시커먼 탄가루를 씻어내는 것이 삶의 위안이었고, 상점 거리를 따라 시끌벅적한 소리가 밤늦도록 이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월급날이면 광업소 앞 제1구암교에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술집 아가씨들이 밀린 외상을 받기 위해 다리 양쪽으로 줄을 서서 기다렸다고 한다. 과거 탄광 마을의 상점 거리가 얼마나 번성했는가 짐작하게 하는 일이다.

“전부 양쪽으로 술집이 있었어요, 양쪽으로 전부 다. 도로가, 길옆에가 양쪽으로 술집이었어. 지금이니까 없어졌지. 종업원 1,500명일 때는 말도 못했어요. [여기] 옛날 다리거든, [다리] 양쪽으로 술값 받으려고 [아가씨들이] 쫙 서있었어요.”(최병철)

[여가 면소재지보다 나았었지…]

1980년대 천운 마을로 이사 왔던 마을 주민은 당시만 해도 마을이 씩씩했다고 회상한다. 마을은 화순 광업소에 다니는 건장한 사내들과 직원들, 가족들, 상인들로 활기찼고, 식당, 술집, 양복점 등 상점들이 즐비하고, 현대식 극장과 병원까지 없는 것 없이 번성했던 마을이었다.

“극장 보러 이웃 마을에서도 오지. 술집도 많고, 부식가게도 있었고, 담배 가게도 있고, 엄청 컸어요. 엄청 커갖고 막 사람들 지글지글하고 그랬어. 그때는 여가 면단위보다 나았어.”(김정록)

하지만 탄광 산업이 점차 쇠퇴하면서 사람들도 떠나고 화려했던 상점거리도 점차 문을 닫게 된다. 극장은 덩그러니 넓은 터만 남아있으며, 즐비했던 상점거리는 몇 군데만 문을 열었을 뿐 닫혀있는 곳이 더 많다. 늦은 밤까지 북적거렸을 술집과 식당은 흔적 없이 사라져버렸다. 한때는 면소재지 보다 사람 많고 활기찼던 탄광 마을이었기에 지금의 거리가 더욱 쓸쓸해진다.

[탄광 마을의 동네 슈퍼와 젊은 주인]

많은 이들이 탄광 마을을 떠났지만 새로운 사람이 그 자리를 대신하기도 한다. 천운 마을 입구에 자리 잡은 오동 슈퍼가 대표적인 예다. 밖에서 보면 오동 슈퍼는 깨끗한 외관과 산뜻한 녹색 간판이 생기를 더하고, 안으로 들어가면 마을 주민들에게 필요한 생활용품들이 즐비하다. 한쪽에는 탄광 마을 주민들에게 꼭 필요한 번개탄이 쌓여있다.

그런데 손님을 맞는 가게 주인이 젊은 남성이다. 물건을 사면서 궁금한 것들을 질문하는데 친절하게 답해준다. 요양차 천운 마을로 이주한 신만식 씨는 화순 오동 사원 아파트에 거주하다가 마을에 단독 주택을 짓고 정착하였다. 그러다가 가게 자리를 인수해 2012년 3월 1일 오동 슈퍼를 오픈했다고 한다. 시골 동네 슈퍼지만 운영에 어려움도 없고, 가게를 하면서 마을 사람들과 더욱 친해졌다고 한다.

“요즘은 거의 다 차가 있고 그러는데, 술 같은 거, 담배 같은 거 있으니까 시골에 슈퍼가 없는 것보다는 괜찮죠. 오히려 내가 보기에는 여기가 화순 시내 구멍가게보다 훨씬 더 나아요. 운영하는데 별로 어려움이 없어요.”(신만식)

탄광 마을의 작은 슈퍼지만 잠깐의 담소를 나누는 동안에도 손님들이 오간다. 번화하고 시끌벅적했던 상점거리는 남아 있지 않지만 인심 좋고 훈훈한 마을 사람들의 일상은 그대로 남아 있다.

[정보제공]

  • •  김정록(여, 1933년생, 동면 오동리 천운 마을 주민)
  • •  신만식(남, 1970년생, 오동 슈퍼 운영, 마을 청년회 총무)
  • •  윤대림(남, 1933년생, 동면 복암리 구암 마을 주민, 보성 상회 운영)
  • •  최병철(남, 1953년생, 동면 오동리 천운 마을 이장, 화순 광업소 광부)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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