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항기 동학 농민 운동에 참여한 화순의 동학 접주. 김용보(金用甫)[?~?] 는 1894년 동학 농민 혁명 운동 당시 화순 오성산 전투에 참여하고 같은 해 12월 7일 최범구와 함께 체포되어, 신문을 받다가 12월 12일 죽었다....
-
개항기 동학 농민 운동에 참가한 화순군의 동학 접주. 김자근(金者斤)[?~1894]은 접주(接主)로서 화순에서 동학 농민 운동에 참여하였다가 1894년 12월 7일 김용보, 왕일신, 조번개와 함께 붙잡혀 정식 재판도 받지 않고 죽음을 당하였다....
-
조선 후기 화순에서 활동한 학자. 본관은 광산(光山). 호는 서남(瑞南). 사헌부 집의(執義)를 지낸 김정(金禎)의 후손이다. 김재수(金在洙)[?~?]는 타고난 품성이 순박하고 지기(志氣)가 고결하여 일찍이 문리에 밝아 경전과 역사서를 두루 섭렵했다. 만년에는 서석산(瑞石山)[무등산 별칭] 아래 동면(東面) 청궁리(靑弓里)에 은거하여 부귀현달(富貴顯達)을 구하지 않고 소...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선행인.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성찬(聖贊). 감역(監役) 김정식(金廷植)과 자오재(子梧齋) 김인갑(金仁甲)의 후손이다. 김현리(金顯履)[?~?]는 타고난 성품이 관대하며 과묵(寡黙)하고 기개(氣槪)와 도량(度量)이 장대했다. 성품이 너그럽고 덕이 있어 베푸는 것을 좋아하여, 매번 흉년에 많은 곡식을 내어 빈곤한 사람을 구제하였다....
-
조선 후기 정유재란 때 주인을 따라 죽은 화순 출신의 충노(忠奴). 목산(木山)[?~?]은 하대붕(河大鵬)의 노(奴)이다. 정유재란 때 하대붕의 부인인 오씨(吳氏)가 하대붕이 왜병에 포로로 잡혔다는 소식을 잘못 전해 듣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에 목산은 “외주(外主)는 피로(被擄)되었고, 내주(內主)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니 내 어찌 혼자 살겠는가.”하고 주인을 따라...
-
조선시대 화순 출신의 학자이자 선행인. 본관은 남평(南平). 자(字)는 인좌(仁佐), 호(號)는 농은(農隱). 면수재(勉修齋) 문자수(文自修)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문기림(文琦林)이다. 문계환(文啓煥)[?~?]은 품성(稟性)이 강직(剛直)하고 풍모가 있으며 도량이 컸다. 부모를 정성으로 봉양하고 선조의 업[유학]을 잘 계승했다. 농민의 복리를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하고 매년...
-
개항기 화순 출신의 학자. 본관은 남평(南平). 자(字)는 사규(士圭), 호는 경묵재(敬黙齋). 면수재(勉修齋) 문자수(文自修)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증 참판(參判) 경직재(敬直齋) 문필진(文弼鎭)이다. 문영찬(文永瓚)[?~?]은 타고난 품성이 영오(穎悟)하고 효도와 우애를 다 갖추었고 부귀영달에 힘쓰지 않고 오로지 경학(經學)에 전념했다. 향교 문묘(文廟)의 집기와 제...
-
근대 화순 출신의 계몽 운동가. 본관은 밀양. 호(號)는 효강(曉岡). 박원조(朴元祚)[1884~1923]는 일본 큐슈[九州] 대학을 수료하고 도쿄 메이지[明治] 대학 재학 중 노백린(盧伯麟)을 만나 교유하였다. 귀국 후 그는 비밀 결사인 화순 우국 동지회를 조직하고 노채필(盧彩弼)·안교일(安敎日) 등과 함께 1919년 3월 24일 화순 장날에 만세 시위를 계획하였으나...
-
일제 강점기 화순 출신의 화순 탄광을 개광한 실업가. 박현경(朴賢景)[1883~1949]은 7세부터 김여빈(金汝彬) 문하에서 한학을 수학하였으며, 누이 박농선과 인척 박영효(朴泳孝)의 후원을 받으며 다양한 사업을 벌였다. 1905년 4월 5일 광업권을 등록하여 정부의 허가를 받아 1908년 채탄을 시작하였으며, 1909년 2월 탄광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해 도일하였다....
-
전라남도 화순군 출신의 경제학자. 본관은 밀양(密陽). 박현채(朴玄埰)[1934~1995]는 광주 서중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화순 백아산에 입산하여 빨치산 소년 돌격 부대 문화부 중대장으로 활동하였으며, 1952년 하산하다 군경에 체포되었다. 1954년 전주 고등학교 3학년에 편입한 그는 1955년 서울 대학교 경제학과에...
-
개항기 동학 농민 운동 당시 화순의 농민군 지도자. 왕일신[?~1894]은 동학 농민군 지도자로서 전라도 화순에서 동학 농민 봉기에 참여하였다. 1894년 음력 12월 1일 광주에서 퇴각한 농민군 지도자 최경선이 동복으로 내려와 3일 외남면의 벽송리(碧松里)·사평리(沙坪里)에 유숙하며 전열을 가다듬었다. 이를 알게 된 민보군 300여 명이 4일 벽송리를 급습하여 치열한...
-
일제 강점기 화순군의 관리. 본관은 장흥. 호(號)는 소산(小山). 임태현(任泰賢)은 방은(芳隱) 임호응(林鎬應)에게 수학하였다. 1921년부터 1924년까지 화순 군청 및 면사무소에서 근무하였다. 1945년 해방 이후 국민회 화순군 부회장을 역임했다고 한다....
-
개항기 동학 농민 운동 당시 화순군의 접주. 조번개[?~1894]는 접주(接主)로서 전라도 화순에서 동학 농민 운동에 참여하였다가 1894년 12월 7일 왕일신[왕왈신], 김용보, 김자근과 함께 체포되어 총살되었다. 1894년 음력 12월 1일 광주에서 퇴각한 농민군 지도자 최경선이 동복으로 내려와 3일 외남면의 벽송리(碧松里)·사평리(沙坪里)에 유숙하며 전열을 가다듬었...
-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을 중심으로 세거하고 있는 창녕 조씨 판윤공파 입향조. 본관은 창녕. 고려 말 문하시중 조민수(曺敏修)[1328~1390]의 5세손이며 판윤공 조린(曺璘)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흡(曺恰)[?~1429]이고 아버지는 감찰 조연(曺衍)이다. 조온(曺穩)[?~?]은 뜻이 크고 기개가 높았으며 문학이 일찍이 이루어졌으나 연산군의 난정(亂政)으로...
-
전라남도 화순군 출신의 해방 이후 건국 운동에 참여한 인물. 본관은 해주(海州). 자(字)는 기운(起雲), 호(號)는 중오(中悟)이다. 최명수(崔明洙)[?~?]는 중일 전쟁 이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북경·상해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다 국내에 잠입하여 은신하였다고 한다. 해방이 되자 귀향하여 대한 독립 촉성 국민회 전남 지부 총무부장, 국민회 전남 본부 사무국...
-
개항기 화순군에서 동학 농민 운동에 참가한 농민. 최범구(崔範九)[1849~1894]는 화순 지역에서 최경선 등과 함께 동학 농민군을 모아 남평 전투 등에 참여하였으며, 화순 벽송 마을까지 후퇴하면서 항전하였으나, 체포되어 신문을 받다가 죽었다....
-
개항기 화순군에서 동학 농민 혁명 운동에 참가한 농민. 최성칠(崔性七)[?~1894]은 동학 농민 혁명 운동 당시 화순 오성산 전투에 참여하고 같은 해 12월 7일 최범구와 함께 붙잡혀, 신문을 받다가 12월 12일 죽음을 당하였다....
-
조선 시대 화순 출신의 문인. 본관이 해주(海州). 고려 시대 문헌공(文憲公) 최충(崔沖)을 후손이며 아버지는 최경일(崔慶日)이다. 최홍이(崔弘頤)[?~?]는 성품과 행실이 단정하며 중후하고 학문은 고상하고 빼어났다. 만년에 소곡촌(所谷村)에 송호재(松湖齋)를 지어 후손들과 후진들을 가르치며 즐거움을 삼았다. 늙도록 학문과 수양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
개항기 동학 농민 운동에 참가한 화순군 출신의 동학 접주. 한달문(韓達文)[1859~1895]은 나주 농민군 접주로 나주 전투에 참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동학 접주로서 나주 지역 대장으로 활동 중 1894년 12월 중 나주에서 민보군에게 체포되어 12월 20일 나주옥에 수감되었다. 이 때 우진영에 인도되어 엄한 문초를 받았다. 이후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내어 구명을 요청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