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후기에 유득공이 삼한 시대의 소국이었던 감문국을 소재로 하여 지은 한시. 「감문국(甘文國)」은 유득공(柳得恭)[1749~1807]이 전국 고도(古都)를 돌 때에 감문국(甘文國)[현재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지역 일대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소국]에 대한 일종의 회고를 표현한 시이다. 본관은 문화, 호가 냉재(冷齋)인 유득공은 실학사대가(實學四大家), 한학사가(漢學...
-
조선 후기 김산군 향청에서 제작된 품관좌목. 향안은 지방에 거주하는 유향소 품관의 명단이다. 경재소에 비치된 ‘경안(京案)’에 대칭해 작성되는 것으로, 품관좌목(品官座目)·향적(鄕籍)·향언록(鄕彦錄)·향록(鄕錄)·향중좌목(鄕中座目) 등으로도 불렀다. 「김산 향안(金山鄕案)」은 1861년(철종 12) 양사당[조선 후기의 사숙(私熟)]을 중수하던 중 대들보에서 발견된 것이다. 「김산...
-
경상북도 김천시 감천면 도평리에서 문랑과 효랑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문랑과 효랑 이야기」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불의에 맞선 자매가 빼앗긴 조상의 묘 터를 찾고 정려를 받았다는 문랑(文娘)과 효랑(孝娘) 자매의 효행담이다. 집권층의 유력자들과 친척 지간인 청하현감이 죽산 박씨 선산에 자기 조부를 투장(偸葬)[남의 산에 몰래 묘를 씀]하자,...
-
조선 후기 김병연이 직지사 승려와 내기를 하여 지은 한시. 「발치직지승(拔齒直指僧)」은 김병연(金炳淵)[1807~1863]이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216번지에 있는 직지사 승려와 글짓기 내기를 하여 지는 편의 이[齒]를 뽑기로 한 끝에 지은 한시(漢詩)이다. 결국 스님의 이빨을 뽑았다는 천재 시인 김병연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성심(性深), 호는 난고(蘭皐...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직지사 대웅전에 봉안된 조선 후기 후불탱화. 「아미타회상탱화(阿彌陀會上幀畵)」는 1744년 세관(世冠) 외 9명의 화사(畫師)들이 제작한 불화이다. 「미타회」, 「미타회도」, 「아미타여래후불탱」이라고도 부른다. 불화 아래쪽에 있는 긴 화기를 통해 불사와 관련된 전반적인 사실과 불화의 성격을 알 수 있다. 1980년 8월 23일 보...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직지사 대웅전에 있는 조선 후기 후불탱화. 「약사회상탱화(藥師會上幀畵)」는 1744년(영조 20) 세관(世冠) 외 7명의 화사(畫師)가 제작한 불화이다. 「약사회」, 「약사회도」, 「약사여래후불탱」이라고도 부른다. 불화 아래쪽에 있는 화기를 통해 불사와 관련된 전반적인 사실 및 불화의 성격을 알 수 있다. 1980년 8월 23일...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직지사 대웅전에 봉안된 조선 후기 후불탱화. 「영산회상탱화(靈山會上幀畵)」는 1744년(영조 20) 세관(世冠) 외 15명의 화사(畫師)가 제작한 불화이다. 「삼세불화」라고도 부른다. 불화 아래쪽에 있는 긴 화기를 통해 불사와 관련된 전반적인 사실, 불화의 성격을 알 수 있다. 1980년 8월 23일 보물 제670-1호로 지정되었...
-
조선 후기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열렸던 김천장에 대한 내용이 실려 있는, 꿩을 의인화한 고전 소설. 「장끼전」은 조선 시대의 소설로 작자와 연대는 미상이나 꿩을 의인화(擬人化)한 우화(寓話)이다. 이를 「장끼 타령」이라고도 한다. 「장끼전」은 새들의 생활을 그려서 인간 사회를 풍자했는데, 그 내용은 장끼가 까투리의 간언(諫言)을 듣지 않고 탁첨지(卓僉知)가 놓은 콩을...
-
조선 후기 지례현 향청에서 제작된 품관좌목. 향안은 지방에 거주하는 유향소 품관의 명단이다. 경재소에 비치된 ‘경안(京案)’에 대칭해 작성되는 것으로, 품관좌목(品官座目)·향적(鄕籍)·향언록(鄕彦錄)·향록(鄕錄)·향중좌목(鄕中座目) 등으로도 불렀다. 향안이 정확히 언제부터 작성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조선 시대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각 지방에 전래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현재 자료...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광명리 경양서원(鏡陽書院)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시대 여대로(呂大老)와 여응구(呂應龜)의 시문집을 새긴 책판. 감호문집·송오문집 판목은 경양서원에 소장되어 있는 104장의 『감호문집(鑑湖文集)』 책판과 50장의 『송오문집(松塢文集)』 책판을 말한다. 『감호문집』은 조선 후기 문신 여대로[1552~1619]의 시문집이다. 여대로의 자는...
-
1738년 발간한 경상도 김천 지역 일대에 설치되었던 역의 호구 대장. 『건륭삼년김천도형지안(乾隆三年金泉道形止案)』은 저지(楮紙)에 필사하였고 크기는 가로 80㎝, 세로 56.5㎝이다. 광곽은 사주 단변(四周單邊), 행수는 32행으로 상(上)은 대 1행(行), 하(下)는 소 2행으로 모두 40장이다[이하는 결락으로 알 수 없음]. 김천도찰방이 관할하는 19개의 속역(屬驛...
-
1718년(숙종 44) 여이명(呂以鳴)이 김천 지역의 지리, 인물, 풍속, 군사, 건물 등을 기록하여 편찬한 향토지. ‘금릉(金陵)’은 김천의 옛 지명으로, 조선 시대 김산군(金山郡)의 별호(別號)였다. 이 지역은 조선 전기 김산현 관내에 제2대 정종의 태를 묻었다고 하여 이웃의 어모현을 폐합하여 합친 후 김산군으로 승격하였다. 1914년 개령군·김산군·지례군을 김천군으로 통폐합했...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금평리 도암재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 문인 여희필(呂姬弼)의 『도암집(道巖集)』 판목. 『도암집』은 여희필[1584~1645]의 시문집이다. 여희필은 자가 가회(嘉會), 호는 도암(道巖)·양호(養浩)이고, 본관은 성주(星州)이다. 1613년 사마시에 합격했으나 광해군 때 폐모론이 일어나자 향리로 돌아와 은거하면서 후학 양성에 전념하...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직지성보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 불교 경전. 『불정심관세음보살다라니경(佛頂心觀世音菩薩陀羅尼經)』 권상(卷上)은 1642년(인조 20) 부산에 있는 금정산 범어사(梵魚寺)에서 간행된 책이다. 관세음보살은 갖가지 재앙으로부터 중생을 구원하는 보살로 일반인들에게 가장 친숙하며 잘 알려져 있다.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광세음보...
-
조선 후기 정후시(鄭厚時)가 김천 지역 해주 정씨의 탄동 개척사를 정리한 책. 『탄동지(炭洞誌)』는 조선 후기 인물로 추정되는 정후시가 해주 정씨 가문에서 탄동을 개척한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대부분의 내용이 해주 정씨 가의 사적과 관련되어 있다. 1669년(현종 10) 김지익(金之益)이 쓴 「제탄동사적후(題炭洞事蹟後)」에 보면 “탄동(炭洞)은 옛날에 임씨(林氏)와 정씨...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상원리 이현택(李鉉澤)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에 간행된 『가례증해』의 판목. 가례증해 판목은 1792년(정조 16) 이의조(李宜朝)의 『가례증해(家禮增解)』를 간행하기 위해 새긴 475판의 판목이다. 『가례증해』는 『주자가례(朱子家禮)』에 우리나라 제가설(諸家說)을 열거하여 증해하고 자가설(自家說)을 첨가하여 엮은 것이다. 전체 10...
-
개항기 김천 출신의 동학운동가.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영원(永元), 호는 석남(石南)·계헌(溪軒). 아버지는 강휘국(姜彙國)이다. 강기선(姜基善)[1846~1894]은 1894년(고종 31) 5월 9일 음직(陰職)으로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를 지냈다. 동학에 가담하여 강평접주(江坪接主)로 활약하였다. 1894년(고종 31) 9월 농민군을 일으켜 선산의 일본 군영을...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낙서(洛瑞)·이중(而仲), 호는 학암(鶴巖). 은열공의 20세손, 학사공의 15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강여호(姜汝㦿)이고, 할아버지는 강필형(姜必亨)이며, 아버지는 이조참판을 지낸 강진환(姜震煥)이다. 외할아버지는 장만원(張萬元)이다. 강석구(姜碩龜)[1726~1810]는 지금의 김천시 구성면 광명리[기를]에서...
-
조선 후기 김천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정보(淨甫), 호는 남와(南窩). 할아버지는 김천도찰방을 역임한 강부(姜符)이고, 아버지는 군자감 참봉 강해로(姜海老)이다. 어머니는 고성 이씨이다. 아들로 강여구와 강여호를 두었다. 강설(姜渫)[1583~1651]은 1583년(선조 16) 지금의 충청남도 대덕군 회덕면에서 태어났다. 한강(寒岡) 정구(...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계숙(啓叔), 호는 기재(耆齋). 할아버지는 김천도찰방을 역임한 강부(姜符)이고, 아버지는 남와(南窩) 강설(姜渫)이다. 강여호는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외할아버지는 여대로(呂大老)이며, 장인은 강용사(姜用俟)이다. 강여호의 서자(庶子)인 강필중(姜必中)은 허통(許通)되어 1708년(숙종 34) 식년회시(式年會試)에 합격하였...
-
경상북도 김천시 어모면 옥율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강우창의 정려각. 강우창(姜遇昌)은 조선 시대 광해군 때의 인물이다. 평소 부모에 대한 효심이 지극하여 조석으로 틈만 있으면 부모 곁을 떠나지 않고 늘 가까이에서 맴돌며 정성으로 보살폈다. 그러던 중 부친이 병들자 직접 환자의 대변을 맛봐 병환의 위중을 헤아렸다. 병세가 위독할 때마다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
조선 후기 경상도 개령 지방[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일어난 농민 봉기. 전국적으로 발생했던 농민 항쟁의 하나인 개령민란은 삼정의 문란이 가장 심했던 때에 일어났다. 전정(田政)·군정(軍政)·환곡(還穀)의 문란, 즉 삼정의 문란이 계속 되자 동학이 일어나고, 1862년 2월에는 진주에서 민란이 발발하였다. 이러한 불길이 거창·선산·상주·성주를 비롯한 인근 고을에까지 번지더니 삼...
-
경상북도 김천시 성내동에 있던 조선 후기 서원 터. 김천 지역 최초의 서원으로, 성리학의 시조인 주돈이(周敦頤)와 주희(朱熹)를 배향한 서원이다. 서원의 이름은 주렴계(周濂溪)를 경앙(景仰)한다는 뜻으로, 김종직(金宗直)이 문당동 배천[白川]에 서원을 짓고 ‘경렴당(景濂堂)’이라 이름 지은 데서 유래하였다. 1648년(인조 26) 김산군수 조송년(趙松年)이 감...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작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김여권을 모시는 사당. 지례향교 교임으로 있던 관란재(觀瀾齋) 김여권(金汝權)이 임진왜란 당시 향교가 불에 타자 오성(五聖) 위판(位版)[위패]을 업어내어 화액을 면하게 하였다. 경인사는 이를 기려 김여권에게 제사지내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삼문 오른쪽에 ‘의산서당’이란 현판이 걸린 건물이 서 있고, 그 마루 벽...
-
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 관덕리에 있는 김해 김씨 문중의 조선 후기 사당. 김해 김씨 문중에서 1782년(정조 6)에 경현사(景賢祠)를 짓고, 선조 삼현(三賢)과 구의사(九義士)를 제사 지냈다. 삼현 구의사는 김세준(金世準), 김희수(金羲壽), 김진손(金震孫), 김대홍(金大鴻), 김대붕(金大鵬), 김기원(金基遠), 김진원(金振遠), 김홍순(金洪順), 김홍은(金洪...
-
경상북도 김천시 농소면 봉곡리 고방사에 있는 조선 후기 목조 불상. 고방사 목조아미타삼존불상은 고방사의 보광명전에 본존으로 봉안되어 있으며 2004년 10월 14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67호로 지정되었다. 고방사 목조아미타삼존불상은 현재 법당인 보광명전에 아미타불좌상을 본존으로 하고 그 좌우에 관세음보살상과 대세지보살상이 사각형의 수미단 위에 나...
-
경상북도 김천시 농소면 봉곡리 고방사에 있는 조선 후기 부도군. 고방사 입구 계곡의 남서쪽 산기슭에 3기가 있다. 우측에 있는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 부도는 방형 지대석에 8각 중대석과 상대석을 마련하고 그 위에 둥근 모양 몸돌을 놓고 8각 지붕돌[옥개석]을 얹어놓고 다시 그 위에 8각 보주를 장식하였다. 우측의 부도는 총 높이 189㎝, 가운데 있는 부도는...
-
임진왜란 당시 공자동에서 일어난 김천의 대표적 전투. 왜장 모리 데루모토[毛利輝元]가 이끄는 왜군이 개령현에 왜군 후방 사령부를 구축하자 그 소속 부대가 대항면 공자동에 포진하고 있었다. 1592년 7월 봉계 출신의 좌수 정유한(鄭維翰)이 피란 갔다가 잠시 봉계마을에 들러 창의 격문을 보고 봉계에서 의병군 150명, 대항면에서 100명을 모아 김산군수 이우빈에게 인계하였다. 당시...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광명리에 거주하는 성산여씨 가문의 가례(家禮). 1990년 당시 건들바우박물관 학예실장 석대권이 김천시 구성면 금평리와 광명리 성산여씨 종가 댁을 방문하여 이 집안의 가례인 관혼상제(冠婚喪祭) 관련 자료를 수집하였다. 이후 1991년 김천문화원에서 발간한 『김천민속지』에 「성산여씨가문의 가례」라는 글을 실었다. 당시 김천시 구성면 금평리에서는 가례...
-
조선 후기 김천 지역 선비들의 시문학 단체. 구로시사(九老詩社)는 같은 고을에 살던 의기 상통하는 6개 문중[진주 강씨, 하빈 이씨, 인천 이씨, 성산 여씨, 의성 김씨, 고성 이씨] 9명의 선비들이 명승지를 찾아다니며 학문을 논하기 위해 1820년(순조 20)에 결성한 시문학 단체이다. 창립 회원은 강이무(姜履武), 강체순(姜體淳), 이금성(李錦成), 이지배(李之培),...
-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 신곡리에 있는 9인의 선비들이 풍류를 즐겼던 조선 후기의 사우. 구로재는 1820년(순조 20) 구로시사(九老詩社)를 만든 강이무(姜履武)·강체순(姜締淳)·이금성(李錦成)·이지배(李之培)·여학조(呂學祖)·이창익(李昌益)·김종태(金宗泰)·이장익(李章益)·이희(李僖) 등 아홉 명의 선비들이 학문을 닦고 시작(詩作)으로 풍류를 즐기기 위...
-
경상북도 김천시 교동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 창건 연대와 창건자는 알 수 없다. 구화사는 본래 고산사(孤山寺)의 산내암자였다. 고산사는 조선 중기까지만 하여도 존립해 있었으나, 유교의 세력에 밀려 절이 강제 철거되고 그 자리에 향교가 건립되었다. 김산향교(金山鄕校)가 고산사의 자리를 강제로 점령함으로써 고산사는 지금의 자리로 옮기고 이름을...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효자이자 선비. 본관은 안동. 자는 회숙(會叔), 호는 은재(隱齋). 안동 권씨 문경공 권진(權軫)의 5세손으로 아버지는 권흠(權欽)이다. 형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이었던 권응성(權應聖)[?~1592]이고, 아들은 권기(權耆)이다. 권기는 예빈시첨정을 역임하였다. 권응기(權應期)는 김천시 조마면 장암리에서 태어났다. 임진왜란 당시 형 권응성에게 “...
-
동부리는 삼한 시대 김천 지역에 자리 잡은 소국인 감문국의 도읍지가 된 이래 신라, 고려를 거쳐 조선 시대 말까지 개령군과 현의 읍치로서 김천 역사의 중심에 있었던 큰 마을 중 하나이다. 그런데 동부리가 그러한 영광 못지않게 역대 중앙 정부로부터 곱지 않은 시각과 경계, 나아가 멸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아는 이가 드물다. 신라의 정복 전쟁에 대한 감문...
-
1601년 김천 출신의 길운절(吉云節)이 일으킨 반역 사건. 길운절[?~1601]은 개령현 아포 제석리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살다가 패륜아로서 횡포가 심하여 유생들에 의해 쫓겨나 선산으로 이주하였다. 1601년(선조 34) 정여립(鄭汝立)의 기축옥사에 연루되어 제주도에 유배된 소덕유(蘇德兪)[정여립의 척분]를 찾아가 함께 모반을 도모하였다. 임진왜란 직전인 1589년(선조...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김녕(金寧). 성균관대사성을 역임한 8대조 김지(金智)로부터 분파된 대사성파의 후손이다. 1429년(세종 11) 덕산마을로 낙향한 입향조 김풍(金豊)의 후예이며, 아버지는 김석용(金碩龍)이다. 김석용도 당대의 효자로 부모상을 당하여 3년간 시묘를 하고도 눈이 오면 산소를 찾아 눈을 쓸었고, 아들 김재택도 9세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수시로 성묘를...
-
경상북도 김천시 어모면 구례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김굉의 묘비. 김굉(金宏)[1560~1634]은 본관이 상산(商山)으로 자는 대기(大器), 호는 감개당(鑑開堂)이다. 처음 벼슬에 나아가 사근도찰방(沙斤道察訪)을 지냈고, 1609년(광해군 1) 흉년이 들었을 때 가산을 털어 백성들을 구제하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1634년(인조 12) 75세의 나이로 생...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선비. 본관은 의성(義城). 호는 죽헌(竹軒). 아버지는 김협으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김덕승(金德升)[1637~1662]은 지금의 김천시 구성면 구미리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글재주가 뛰어나 지례현감 조형은 영남에서 처음 보는 재주라 칭찬하였다고 한다. 15세에 「동국읍호부(東國邑號賦)」를 짓고, 16세에 「치격정중원문(馳檄定中原文)」을 지...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김녕(金寧). 자는 성중, 호는 송헌(松軒). 김성대(金聲大)[1695~1747]는 1728년(영조 4) 무신란에 종제 김성진(金聲振), 김성옥과 더불어 원근의 창의(倡義) 병사를 모집하여 거창의 우두령을 사수하고 지금의 김천으로 진입하는 적을 막았다. 정세갑이 이끄는 금어군(禁禦軍)과 합세하여 황간을 넘어 영동, 옥천, 청주에 이...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김녕(金寧).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순절한 백촌 김문기(金文起)의 12세손이며, 아버지는 김상원(金尙元)이다. 부인은 연안 이씨 이춘방(李春芳)의 딸로 1660년 2월 2일 태어나 1724년 2월 3일 세상을 떠났다. 슬하에 김흥수(金興壽), 김흥추(金興錘) 형제를 두었다. 손자로 효행이 높은 김치범(金致範), 김치신(金致兟)이 있다....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무신. 김인상(金仁尙)은 1728년(영조 4) 무신란을 일으킨 정희량(鄭希亮)이 거창군을 함락하자 난의 주모자인 이웅보(李熊輔)와 정희량 등을 체포하는 데 공을 세웠다. 반란군 이웅보가 거창군의 속오(束伍) 8초(哨) 및 자신의 수하 군사 5초를 거느리고 우지치(牛旨峙)에 진을 치자, 이 곳에 거창천총(居昌千摠) 정빈주(鄭彬周)가 쳐들어갔다....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선비. 김종태(金種泰)[1775~?]는 자는 노첨이고, 호는 광거(廣居)이다. 1820년(순조 20) 강이무(姜履武)[1772~1833], 강체순(姜體淳)[1773~1842], 여학조(呂學祖)[1715~1836] 등과 김천시 조마면 신곡리 백화동에서 구로시사(九老詩社)를 결성하여 향산 고사를 본받아 자연과 벗하며 시와 술을 즐겼다....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무신. 김진옥(金振玉)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에게 지극한 효성을 보였다. 천성이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강개지사의 기질이 있었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가 반란을 일으키고 이웅보(李熊輔)와 정희량(鄭希亮) 등이 거창을 함락하자 경상감사 황선(黃璿)은 성주목사(星州牧使) 이보혁(李普爀)을 우방장(右防將)으로, 초계군수(草溪郡...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직지 성보 박물관에 소장된 조선 후기 불화. 「김천 고방사 아미타여래 설법도」는 2015년 3월 4일 보물 제1854호로 지정되었다. 「김천 고방사 아미타여래 설법도」는 가로 277㎝, 세로 293㎝이다. 본존의 키형 광배를 비롯하여 높은 육계(肉髻) 표현, 천공 바탕에 표현된 화문, 채운의 끝 부분에 흰색을 칠하여 강...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상좌원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도동서원에는 이숭원(李崇元)·이숙기(李淑琦)·이호민·이숙함·이후백을 배향하였다. 충간공 이숭원은 1453년(단종 1) 증광 문과에 장원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1491년 병조판서에 이르렀다. 정양공 이숙기는 1453년 무과에 급제하고 여러 관직을 거쳐 호조판서에 이르렀다. 문희공 이호민은 이숙기의 증손으로...
-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동부리에 있던 고택. 김천 지역에는 조선시대 집성촌을 중심으로 많은 고택이 형성되었다. 김산군에 영일정씨, 청녕조씨, 벽진이씨, 화순최씨, 지례현에 남평문씨, 김녕김씨, 성산여씨, 연안이씨, 개령현에는 성산배씨, 단양우씨, 남양홍씨, 해주정씨 등의 고택이 있었는데 이중 단양우씨의 종가는 ‘우상학 종택’으로 불리며 개령 일대 최대 규모를 자랑하였다. 단양우씨...
-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동부리에 있던 고택. 김천 지역에는 조선시대 집성촌을 중심으로 많은 고택이 전해져왔는데 김산군에 영일정씨, 청녕조씨, 벽진이씨, 화순최씨, 지례현에 남평문씨, 김녕김씨, 성산여씨, 연안이씨, 개령현에는 성산배씨, 단양우씨, 남양홍씨, 해주정씨 등의 고택이 있었다. 배종선 가옥은 개령면 동부리 마을 중에서도 2리로 속하는 조천마을 관학산 아래에 있었다. 배종선...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상원리에 있는 조선 후기 누정. 방초정은 1625년 이정복(李廷馥)이 선조를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누정이다. 많은 시인(詩人) 묵객(墨客)들이 정자에 올라 주위의 아름다운 경치를 찬미한 시가 붙어 있다. 방초정은 김천시 구성면 구성초등학교 앞에 자리하고 있다. 방초정은 1625년에 처음 건립했을 때에는 현재의 위치보...
-
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 조룡리 봉곡사에 있는 조선 후기 석조 불상. 김천 봉곡사 대웅전 석조석가여래삼존상은 도금(鍍金)을 한 모습으로 중앙의 본존불좌상(本尊佛坐像)과 좌우협시보살좌상(左右脇侍菩薩坐像)으로 이루어진 석조삼존불좌상이다. 본존불은 굴곡이 나타나지 않은 두꺼운 옷을 걸치고 있으며 신체에 비해 어깨가 좁고 머리가 크며 목이 짧아 움츠린 것처럼 보인다....
-
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 조룡리 봉곡사에 있는 조선 후기 목조 불상. 김천 봉곡사 명부전 목조지장삼존상 및 시왕상은 지장보살좌상(地藏菩薩坐像)을 중심으로 좌우에 시립(侍立)한 무독귀왕(無毒鬼王)과 도명존자(道明尊者)의 지장보살 삼존상(三尊像) 및 의자상(倚子像)인 10구의 시왕(十王)과 입상(立像)인 녹사(綠事) 2구, 판관(判官) 2구, 인왕(仁王) 2구 등...
-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인의리에 있는 매계(梅溪) 조위(曺偉)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조선 후기의 사우. 1686년(숙종 12)에 성리학의 대가인 매계(梅溪) 조위(曺偉)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유허지에 세운 사당이다. 김천 율수재는 김천시 봉산면 인의리 769번지 봉계마을에서 서쪽으로 500m 정도 떨어진 극락산 동쪽 산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직지사에 있는 조선 후기 불화. 「직지사 괘불(直指寺掛佛)」은 1803년(순조 3) 제한대사(濟閑大師) 등 총 13명의 화사(畫師)가 그린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화기(畫記)에 증사(證師), 송주(誦呪), 화사 공양주(供養主), 화주(化主), 시주(施主) 등의 명단을 기록했는데, 총 153명에 이른 것을 보면 이 불사가 얼마나 큰...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직지사에 있는 조선 후기 수미단. 김천 직지사 대웅전 수미단은 ‘순치 팔년 신묘 사월 대웅전 황악산 직지사(順治八年辛卯四月大雄殿黃岳山直指寺)’라는 묵서명을 통해 1651년의 절대 연도를 가지고 있다. 수미단을 통해 하늘과 땅과 바다의 경계가 없는 이상향을 동식물로 표현하고 있으며, 불(佛) 세계를 향한 대중들의 부처...
-
경상북도 김천시 황금동 개운사에 있는 조선 후기 지장보살좌상과 시왕상. 김천 개운사 지장보살좌상 및 시왕상은 원래 쌍계사의 명부전에 봉안되어 있다가 청암사로 옮겨졌다. 그 후 1943년 일본인들이 개최한 고미술 전시의 출품을 위해 청암사에서 옮겨왔다가 해방이 되면서 그대로 두고 갔으나 개운사에서 명부전을 신축하여 옮겨 모셨다. 2003년 4월 17일 경상북도...
-
경상북도 김천시 남산동에 있는 샘물. 김천 과하천은 김천이라는 지명이 유래된 유서깊은 샘이다. 1718년(숙종 44) 여이명(呂以鳴)이 저술한 『금릉지(金陵誌)』에 예부터 금이 나는 샘이 있어 금천(金泉)이라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려시대 초에 현재의 남산동 김천초등학교 일대에 역을 설치하고 이 샘 이름을 따서 역 이름을 금천역이라 했는데 역 주변에 역리(驛吏)가 거주...
-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신리에 있는, 정유재란 때 절개를 지킨 정유한 처 영천이씨를 기리는 정려비. 영천이씨[1570~1597]는 봉계마을[현 신리]의 영일정씨선전공파 문중의 정유한(鄭維翰)[1568~1640]의 아내로 경상북도 영천의 찰방(察訪) 이대유(李大有)의 딸이다. 영천이씨의 남편 정유한은 본관은 연일(延日)이고, 자는 인보(仁輔)이며 아버지는 정내신...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준백(俊伯), 호는 눌암(訥菴). 이조판서 김불비(金不比)의 8세손이다. 김한영(金漢英)[1637~1712]은 지금의 김천시 양천동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배우기를 즐겨하였고 언행이 엄하고 무거워 어른들이 아이라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였으며, 효자로 이름이 났다. 아버지의 병이 위급할 때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아버...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유운(遊雲), 호는 송정(松亭). 김해 김씨 안경공(安敬公) 김영정(金永貞)의 후예이다. 동생으로 김홍붕(金洪鵬)이 있는데, 호는 호은(湖隱)이다. 그리고 김홍기(金洪基), 김홍진(金洪振) 역시 김홍대의 동생이다. 김홍대(金洪大)[1599~1636]은 지금의 김천시 대덕면에서 태어났다. 힘이 절륜하였고 말을 타고...
-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 초곡리에 있는 덕림서원의 터. 덕림서원에서는 영남학파의 주요 인물인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신당(新堂) 정붕(鄭鵬),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를 제향하였다. 한편 덕림서원이 있던 마을은 덕림서원이 있다고 하여 서원마을로 부른다. 덕림서원은 1669년(현종 10)에 창건되었고 1676년(숙종 2)에 정경세를 배향...
-
1894년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동학 농민군이 봉건 정부의 수탈과 탐학에 반대하고 외세의 침략에 저항하며 일으킨 운동. 김천 지방에 동학이 전파된 때는 제2대 교주 최시형(崔時亨) 시기였다. 1890년 11월 최시형은 경상북도 김천군 구성면 용호동 김창섭의 집에 머물면서 내수통문을 각 읍에 포고하였다. 김천에서 농민군이 조직된 시기는 대체로 동학 농민군이 전주성을 장악...
-
조선 후기 김천 출신 효녀. 득옥(得玉)은 지금의 김천시 감천면에서 태어났으며, 감천면 상기동 어느 집의 여종이었다. 득옥은 여든 살에 가까운 노모를 모시고 살았는데, 어느 해 큰 물난리가 나서 사람들이 풀뿌리로 연명해야 하였다. 이때 득옥은 양식을 구걸하여 어머니를 봉양하고, 자신은 풀뿌리로 목숨을 버텼다. 영양실조로 기진맥진해진 어느 날 멀리 나가 양식을 구걸해 오던...
-
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 관덕리에 있는 조선 후기 누정. 만취정은 1782년 김천시 지례면 관덕리 김해 김씨 문중에서 건립한 경현사 옆에 위치하고 있다. 만취정은 송정 김홍대가 정자를 세우고자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자 그의 손자 김종해가 1638년(인조 16) 선조(先祖)의 행적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였다. 만취정은 정면 3...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상원리에 있는 이의조(李宜朝)의 영정을 모신 조선 후기 재실. 재실 정면의 ‘명성재(明誠齋)’라는 현판은 이의조의 스승 운평(運平) 송집의(宋執義)가 썼다. 이로 인해 재실의 명칭이 명성재로 불리게 되었다. 한편 이의조의 제자들이 스승의 행의(行誼)와 학문이 맑은 거울과 호수 같다 하여 경호선생(鏡湖先生)이라 불렀다. 이의조가 죽고 난 뒤 이곳에...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광명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자. 무송정(撫松亭)은 김천 시내에서 거창 방면으로 국도 3호선을 따라가다가 조마면 방면 지방도 하천변에 자리한 옛 철원 최씨 집성촌이었던 광명리 하촌마을 송설봉 아래 자리하고 있다. 구성면 광명리 하촌은 예부터 철원 최씨 집성촌으로 고려 말의 명장인 최영(崔榮)의 직계 후손이 정착해 형성된 유서 깊...
-
경상북도 김천시 감천면 도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녀 문랑·효랑 자매의 효각. 문랑·효랑 자매는 죽산 사람 박수하의 딸로 1709년(숙종 35)에 현풍 권력가인 청하 현감 박경여에게 선산을 빼앗겼다. 부호이자 권세가인 박경여가 박씨 선산에 자기 할아버지의 묘를 이장하려 하였다. 이장을 중지할 것을 요청하였음에도 박경여는 박수하 조부모의 묘를 파내고 묘를 이장한...
-
경상북도 김천시 다수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사우. 미곡정사의 옥호(屋號)는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지었다. 미곡정사의 ‘미(薇)’자인 이곳의 옛 지명인 미곡(米谷)의 ‘미(米)’자와 음이 같고, 야은(冶隱) 길재(吉再)의 채미정(採薇亭)에서 ‘미(薇)’자를 따서 전씨 선조들의 청풍고절(淸風高節)한 높은 기풍을 상징한 것이라고 한다. 미곡정사는...
-
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시윤(施允), 호는 학촌(鶴村). 증조할아버지는 박원직(朴原直)이고, 할아버지는 박지(朴址)이며, 아버지는 영천부사를 역임한 박성건(朴成楗)이다. 어머니는 흥덕 장씨이고, 7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장인은 박윤종(朴胤宗)이다. 박이룡(朴以龍)[1533~1593]은 어려서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문하에서...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선비.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여빈(汝彬), 호는 도은(道隱). 할아버지는 박수종(朴守宗)으로 단종 복위 운동에 참여하였다. 박홍발(朴鴻發)[1610~1671]의 유허비에는 할아버지의 이름이 박원복(朴元福), 벼슬은 참봉(參奉)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아버지는 명종 때 군기시주부(軍器寺主簿)를 역임한 박경순(朴景淳)이다. 어머니는 남양 홍씨(南陽洪氏)와...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무신.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수초(遂初). 할아버지는 효숙공(孝肅公) 배흥립(裵興立)이고, 아버지는 배시망(裵時望)이다. 부인은 정부인(貞夫人) 의성 김씨(義城金氏)이다. 아들로 배상경(裵尙瓊), 배상행을 두었다. 배명순(裵命純)[1597~1636]은 지금의 김천시 조마면 신안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용모가 남달라 장차 후일에 이름을 남길...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공근(公瑾), 호는 만학당(晩學堂)·숭정처사(崇禎處士). 증조할아버지는 공조참판 배흥립(裵興立)이고, 아버지는 현감 배명전(裵命全)이다. 배태래와 배태휘(裵泰彙) 두 명의 아들을 두었다. 배태래[1651~1701]는 자는 내보이고, 호는 농수(農叟)이다. 경학에 밝아 숙종조에 관찰사의 천거로 사헌부감찰에 제수되었지만...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무신.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자명(子明). 아버지는 배흥립(裵興立)이고, 부인은 정부인(貞夫人) 영산 신씨(靈山辛氏)이다.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들은 통덕랑(通德郞) 배명호(裵明虎)와 진사(進士) 배명생(裵命生)을 두었고, 형으로 배시망(裵時望)과 배시준(裵時俊)이 있다. 배시량(裵時亮)[1604~1657]은 54세가 되던 1630년(인조...
-
조선 후기 김천 지역의 열녀. 성산 배씨 집안은 ‘삼강세가(三綱世家)’라 일컬을 만큼 열부, 충신을 여럿 배출하였다. 배인범(裵仁範)과 경주김씨(慶州金氏)는 아들로 효숙공(孝肅公) 배흥립(裵興立)과 상의원직장(尙衣院直長) 배의범(裵義範)을 두었다. 셋째 손자 배시량(裵時亮)은 1630년(인조 8) 무과에 장원 급제한 후 양주목사, 도총부부총관, 경상·충청·전라 삼도의 병...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학자.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휘보, 호는 존덕성재(尊德性齋). 할아버지는 현감 배명전(裵命全)이고, 아버지는 배상유(裵尙瑜)[1622~1686]이며,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형으로 배태래[1651~1701]가 있다. 자는 내보이고, 호는 농수(農叟)이다. 경학에 밝아 숙종조에 관찰사의 천거로 사헌부감찰에 제수되었지만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강선(姜銑...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백기(伯起), 호는 동포(東圃). 아버지는 현감 배인범(裵仁範)이다. 외할아버지는 북일(北逸) 김익(金瀷)이다. 배흥립(裵興立)[1546~1608]은 지금의 김천시 조마면에서 태어났다. 태어날 때 할머니 한양 조씨는 대장기(大將旗)가 마당에 서는 꿈을 꾸었는데, 태어났을 때 과연 장군의 골상이었다고 한다. 할머니...
-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 신안리에 있는 배흥립 삼대의 충절을 기려 세운 조선 후기 정려각. 열부 경주 김씨는 황주목사 김익의 딸로 성산인 현감 배인범의 처이다. 평소 자녀교육이 엄격하고 효심이 지극하여 “여자는 남편 따르기가 으뜸이고, 남자는 임금 따르기가 으뜸”이라 훈계하고 남편이 서울에서 병사하자 “이제 나는 너희 아버지 뒤를 따르려 하니 너희들은 충의롭게 살라.” 하...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송죽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무신 배흥립의 신도비. 배흥립(裵興立)[1546~1608]은 본관이 성산(星山)으로 자는 백기(伯起), 시호는 효숙(孝肅)이다. 아버지는 현감을 지낸 배인범(裵仁範)이다. 1604년(선조 37) 임진왜란 중에 세운 공로로 무인 출신으로는 드물게 공조참판이 되었다. 당시의 지휘관이던 이순신(李舜臣)이 장계(狀啓)...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수원(水原). 아버지는 김천의 대표적 효자라 불리는 백시형(白時珩)이고, 형으로 백봉주(白鳳周)가 있다. 아들로 백상정(白尙淨)을 두었다. 이 집안은 3대에 걸쳐 효(孝)를 행하였다. 백봉양(白鳳陽)[1700~1758]은 지금의 김천시 대신동에서 태어났다. 9세에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슬퍼 채소만 먹고 견뎌 몸이 극도로 허약해졌다. 어머...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수원(水原). 승선 백귀선의 9세손이다. 첫째 아들 백봉주(白鳳周)[1698~?]와 둘째 아들 백봉양(白鳳陽)[1700~1758], 손자인 백봉양의 아들 백상정(白尙淨)[1748~1817] 네 명이 3대에 걸쳐 효(孝)를 행하였다. 백시형(白時珩)[1664~1708]은 지금의 김천시 대신동에서 태어났다. 김산군의 군무를 맡아 보던 관...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6호로 지정되어 있는 방초정(芳草亭)은 연안이씨 문중 소유의 건물이다. 방초정은 원래 1625년(인조 3) 구성면 출신 유학자 이정복(李廷馥)이 지금의 위치보다 국도 쪽 가까이에 건립하였다. 이후 정자가 쇠락하자 1689년(숙종 15) 손자 이해(李垓)가 중건하였다. 이후 1727년(영조 3)에 다시 보수를 했으나 이듬해 무신란(戊申亂)에 파손되고...
-
김천에서 수도하다 입적한 것으로 보이는 조선 후기의 고승이자 승병장. 자는 징원(澄圓), 호는 벽암(碧巖). 어머니는 조씨(曺氏)이다. 벽암대사(碧岩大師)[1575~1660]는 10세에 출가하여 설묵(雪默)의 제자가 되었으며, 14세에 보정(寶晶)에게서 구족계를 받은 후 불경을 공부하였다. 그 뒤 선수(善修)의 제자가 되어 스승을 따라 속리산, 덕유산, 가야산...
-
1636년 12월부터 1637년 1월까지 청나라가 조선을 침략하여 일어난 전쟁에 참여한 김천의 관군과 의병. 1636년 12월 14일 청나라 태종이 10만 대군을 거느리고 우리나라를 침공해 오자, 조정에서는 각 지방에 영을 내려 군사를 모았다. 김천 지방에서도 12월 19일 제색군(諸色軍)을 상주진관(尙州鎭管)에 주둔시키고 군기와 군량을 급송하였다. 김산군기감관 정은신, 김산군량감...
-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인의리·예지리·신리[봉계동] 3개 마을에 거주하는 창녕조씨 가문의 가례(家禮). 1990년 당시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강사 이기태가 창녕조씨 집안의 가례인 관혼상제(冠婚喪祭) 관련 자료를 수집하여 1991년 김천문화원에서 발간한 『김천민속지』에 「창녕조씨문중의 가례」라는 글을 실었다. 봉계의 창녕조씨 가례는 혼맥과 정관계의 인맥을 통해 예부터 노론의...
-
조선 후기 김천 직지사로 출가한 고승(高僧)이자 의병장.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이환(離幻), 호는 사명당(四溟堂)·송운(松雲), 속명은 임응규(任應奎), 별호는 종봉(鍾峯). 아버지는 임수성(任守成)이다. 사명대사(泗溟大師)[1544~1610]는 직지사에 6년간 머물렀으며 주지를 지냈다. 1575년(선조 8) 왕의 중망(衆望)에 의하여 선종의 수사찰(首寺刹)인 봉은...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직지성보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 동종. 문경 김룡사 동종은 1670년(현종 11) 경기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주종장(鋳鍾匠)으로 활동한 사인비구(思印比丘)가 만든 종이다.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김룡리 410번지에 있는 김룡사에서 전해 오던 동종으로, 1995년 직지성보박물관이 개관하면서 옮겨져 보관, 전시되고 있다. 2...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광명리에 있는, 배흥립을 기리기 위한 조선 후기의 사당. 배흥립(裵興立) 장군은 1546년 김천시 조마면에서 출생하여 무과에 급제하고, 임진왜란 때에는 이순신 장군의 휘하에서 조방장(助防將)에 임명되어 선봉장으로 활약하였다. 칠천도(漆川島) 싸움에서는 단선으로 적을 막았고, 한산도 9전 9첩 때와 행주(幸州)의 싸움에서는 언제나 선봉에...
-
조선 시대 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에서 태어난 효자 3대를 통칭하는 상징어. 삼세효(三世孝)는 박수(朴壽), 박수의 손자 박상태(朴尙泰), 증손 박천일(朴天一) 등 삼세(三世)에 걸쳐 나온 효자를 일컫는다. 박수는 순천 박씨 수종의 후예로 지례현 출신이며 자는 수옥이요, 호는 용강(龍崗)이다. 그의 손자 박상태는 호가 무명재(無名齋)이다. 박수의 증손 박천일은 호가 천류정이다....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상원리와 상좌원리에 거주하는 연안이씨 가문의 가례(家禮). 1990년 당시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강사 이영진이 노론 계열의 연안 이씨들이 세거하고 있는 김천시 구성면 상원리와 남인 계열의 연안이씨들이 세거하고 있는 상좌원리 마을을 대상으로 두 집안의 가례인 관혼상제(冠婚喪祭) 관련 자료를 수집하여 1991년 김천문화원에서 발간한 『김천민속지』에...
-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 신곡3리에 있는, 이세간을 기리기 위한 조선 후기의 사당. 남강(南岡) 이세간(李世幹)은 본관이 농서(隴西)로, 1664년에 태어났다. 효성이 지극하여 아버지가 병환으로 누웠을 때에는 겨울에 살구꽃이 피어 약으로 썼고, 아버지가 돌아가 시묘살이를 할 때에는 눈보라 치는 엄동에 호랑이가 와 감싸 주어 동사를 면하고, 3년간의 시묘를 호랑이...
-
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 가례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당. 대덕면 가례리 석정마을에 위치한 석곡서당은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제자로 영남 사림의 태두로 일컬어지는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제자들이 스승을 기리기 위해 설립한 서당이다. 한강 정구가 성주에서 벼슬을 마다하고 학문을 강론할 때 이웃한 고을인 지례현을 방문하자 평소 그를 따르던 지례현의 선비들이 이...
-
임진왜란 때 김천시 구성면 상좌원리 돌고개[석현]에서 벌어진 김천의 대표적 전투. 이 석현전투로 인해 고개는 돌모리로 불리게 되었으며 면 이름도 석현면으로 불리게 되었다. 석현[돌고개]은 조선 시대에는 김산군, 지례현의 접경을 이루었다. 조선 시대에는 지례현 하북면에 속한 상좌원리는 1914년 석현면에 편입되어 상좌원과 도동, 원앞을 통합하여 하원리가 되었다. 구미의 석현면 면청사...
-
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 조룡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서원. 서원 이름을 섬계(剡溪)라 한 까닭은 이 마을 이름이 섬계리(剡溪里)였던 데서 비롯된다. 섬계서원은 단종 복위를 꾀하다 순절한 충의공(忠毅公) 백촌(白村) 김문기(金文起)의 충절을 숙모(肅慕)하고 현창하고자 창건했다. 지금은 조룡리로 바뀐 섬계리는 김문기를 중시조로 하는 김녕 김씨 집성촌이다. 경상북도...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광명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성산여씨 문중 가옥. 성산여씨(星山呂氏) 문중에서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성산여씨 하회댁은 15세손 여명주(呂命周)[1681~?]에 의해 18세기 초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3년에 걸쳐 1,700여 평의 부지에 60칸 건물로 세워졌다. 하지만 1870년 농민 항쟁 때와 1936년의 수해 등으로 소실되거나 붕괴되어...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광명리에 있던 조선 후기 서당 터. 1702년(숙종 28)에 기로(耆老), 장암(壯岩)의 여러 선비들이 자제 교육을 위해 조마면 강곡리에 처음 건립하였다. 처음에는 학도들이 많이 모여들어 학문적 성취를 이룬 사람들이 많았으나 오래되어 돌보는 이가 없어 퇴락하게 되었다. 1950년대 지금의 자리인 구성면 광명리 하기(下耆)로 옮겼다. 강당이 있었으나...
-
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 관덕리에 있는 조선 후기 숙명과 숙경 공주의 태실 터. 숙명·숙경공주 태실 터는 조선 17대 왕인 효종의 3녀 숙명(淑明), 6녀 숙경(淑敬) 두 공주의 태를 안치했던 곳이다. 효종 이후 왕실에서는 한 태봉에 두 태를 안치하거나 요란한 발행 의식을 치르는 일을 삼갔으며, 아예 궁궐 내 정갈한 곳에 안태하는 등의 방법으로 대안을 물색하였다...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상거리에 있는 김숙련(金淑蓮)을 추모하기 위한 조선 후기의 사우. 승유재는 김숙련(金淑蓮)을 추모하여 1849년(헌종 15)에 그의 후손 김치규(金致奎)와 김치일(金致一)이 건립한 사당이다. 단옹(短翁) 이공(李公)이 상량문(上樑文)을 짓고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이 현판을 지어 쓰고, 심석재(心石齋) 송병순(宋秉珣)이 기문(記文)을...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금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당. 김천시내에서 국도 3호선을 따라 가다가 구성면 송죽리송죽휴게소 직전에 조마면 방면으로 좌회전을 하면 금평리와 광명리가 나온다. 금평리 기를마을 앞에서 우측으로 다리를 건너서 2㎞정도 직진하면 금평리 광수마을을 알리는 이정표가 있고 마을 입구로부터 300m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면 도로 왼편에 야귀당이 있다....
-
경상북도 김천시 교동에 있던 조선 후기 서당 터. 조선 후기의 사숙(私熟)이었으나 김산군수가 적극 권장했던 서당이라고 한다. 규모 등 관련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 1709년(숙종 35)에 군수 윤택(尹澤)이 유생들의 힘을 얻어 건립하였고 송상기(宋相琦)가 송당기(松堂記)를 썼다. 1741년(영조 7)에 군수 이화중(李華重)이 향교 동쪽으로 옮겼고 1790년(정조 14)...
-
1631년 김천 지역에서 양석천(梁錫天)과 이정(李瀞)이 일으킨 반역 사건. 1631년(인조 9) 김산[현 김천]의 양석천이 당파 싸움에 휘말려 상소하였다가 반역죄로 몰렸다. 조마면 장암리 신촌에 사는 이정은 벽진 사람으로, 재산가 이당춘(李堂春)의 아들이다. 이정은 양석천과 함께 모역을 했다가 발각되어 처형되고, 그의 가택은 헐려 연못이 되었다. 이정의 아들 이천건은 이광제의 사...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성우(聖遇), 호는 감호(鑑湖). 아버지는 여응구(呂應龜)이다. 여대로(呂大老)[1552~1619]는 지금의 김천시 구성면에서 태어났다. 남명(南溟) 조식(曺植)의 문하생으로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학업을 이루려는 뜻이 남달랐다. 아버지는 늘 “이 아이가 우리 가문을 빛낼 자식”이라고 격려하였다. 8세에 모친상을 당...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송죽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여대로의 창의비. 여대로(呂大老)는 성산여씨 여응구(呂應龜)의 아들로 1552년(명종 7) 구성면에서 태어났다. 호는 감호(鑑湖)이다. 1582년(선조 15) 사마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문과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 때에 고향에서 집안의 노복과 마을 사람들을 거느리고 의병을 일으켜 김면(金沔), 곽재우(郭再祐...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문인.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명세(鳴世), 호는 수봉(壽峰). 여대로(呂大老)의 후예로 아버지는 여저징이다.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여이명(呂以鳴)[1650~1737]은 김천시 교동에 있던 양사당(養士堂) 창건을 주도하여 김천 지역의 유학 진흥에 이바지하였다. 특히 1718년(숙종 44) 이태하(李泰夏)와 함께 현존하는 김천 지역 최고(最古)...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선비.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직도, 호는 노일헌. 여종호(呂從護), 여응구(呂應龜), 여대로(呂大老)의 가계를 잇는 여사민의 아들이다. 아들로 여석홍을 두었다. 여학조(呂學祖)[1715~1836]는 천품이 총명하였고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문장에도 뛰어났다. 일찍이 조목수(趙沐洙)·유심춘(柳尋春)의 문하에서 수업하였다. 여러 번 사림에서 학...
-
경상북도 김천시 감천면 도평리에 있는 이언의(李彦儀)를 추모하기 위한 조선 후기의 사우. 영모재는 이언의(李彦儀)를 추모하기 위해 성주 이씨(星州李氏) 문중에서 1841년(헌종 7)에 건립한 사당이다. 이언의는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서 인조(仁祖)가 남한산성(南漢山城)에서 청나라 군사에게 포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의병을 모아 참전하였다가 경...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하강리에 있던 조선 후기 서당 터. 1701년 안동인 진사 김선(金墠)이 아내의 고향인 하로(賀老)에 이거하면서 백방으로 동지를 모아 5칸짜리 한 동을 지었다. 이후 수학하는 사람이 늘어 1703년에 쌍계사(雙溪寺) 승려 목수로 하여금 10칸을 증축하여 석간정사(石磵精舍)라 하였다. 10칸 가운데 5칸은 승려들의 숙사로 지었다. 1705년에 초가지...
-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덕촌리에 있는 조선 후기 오여권 처 성주이씨의 효열각. 성주이씨(星州李氏) 부인은 함양인 오여권에게 시집가 시부모를 정성으로 모시고, 남편이 병들자 백방으로 간호하는 한편 자기 목숨을 대신해 달라고 하느님에게 빌었으나 보람 없이 사망하자 삼종지예(三從之禮)의 부도를 좇아 스스로 남편의 뒤를 따랐다. 성주이씨는 병자호란 때 백의종군하다가...
-
동부리를 감싸고 있는 감문산에 오르면 멀리 마을을 회오리쳐 흐르는 감천과 드넓게 펼쳐진 개령들, 감문산으로부터 뻗어 내린 관학산과 유동산이 어우러져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펼쳐 놓은 듯 아름답기만 하다. 그러나 이곳이 지금으로부터 418년 전 동부리를 비롯한 개령 읍민 절반이 희생된 비극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개령 동부리 일대는 수로와...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자선가. 본관은 단양(丹陽). 안정공(安靖公) 우홍강(禹洪康)[1357~1423]의 후예이며, 아버지는 우익선(禹益善)이다. 우상학(禹象學)은 지금의 김천시 개령면 덕촌리에서 태어났다. 빈농가 출신으로 자수성가한 후에는 흉년이 들었을 때 감문면 빈민들의 호구세를 대신 내주었고, 사재를 털어 감문면의 구야평과 하포평의 제방을 쌓았다. 또한 금오산 약...
-
조선 후기의 유학자. 본관은 풍산. 자는 숙빈(叔斌), 호는 계당(溪堂).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의 9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용양위부호군 유심춘(柳尋春)이며, 아버지는 좌의정 유후조(柳厚祚), 어머니는 연안 이씨로 부사 이재연(李載延)의 딸이다. 유주목(柳疇睦)은 1813년(순조 13) 상주시 중동면 우물리에서 태어났다. 전통적인 가학을 전수하여 젊은 시절에 이미 학...
-
임진왜란 당시 현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왜적을 몰아내기 위해 일어난 의병들의 항쟁. 임진왜란은 일본이 오랜 기간 전국 시대를 통하여 전쟁 경험을 쌓고 신무기인 조총으로 무장하여 일으킨 전쟁이었다. 이에 비해 조선은 당쟁에만 몰두하여 군비가 전무한 상태였다. 왜군이 부산포에 상륙하여 서울까지 오는데 20일이 채 걸리지 않았을 정도로 상대가 되지 않았다. 왜군이 온다는 소문만 듣고도...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작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당. 승용차로 김천에서 거창으로 가는 국도 3호선을 따라가다 구성면을 지나면 5분 거리에 구미교라는 작은 교량이 나오는데, 이 교량 끝을 지나자마자 오른쪽 작은 길로 5분 정도 올라간 곳에 장천마을이 있으며 그 동쪽 끝에 의산서당이 있다. 의성 김씨 문중의 자제들을 교육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1864년(고종 1...
-
조선 후기 흥선대원군이 김여권(金汝權)의 유행(儒行)을 찬양하여 지례향교에 내린 친필 현판. 의산서당 석파 친필 현판은, 임진왜란 때 관란재(觀瀾齋) 김여권이 지례향교가 불타 대성전에 모신 오성(五聖)의 위패位牌)와 동방 제현(諸賢)의 위판이 불에 탈 위험에 처하자 불속으로 뛰어들어 위판을 가지고 나와 대덕면 등곡에 모셨다는 유행(儒行)을 찬양하여 흥선대원군이 지례향교에...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경보(慶普), 호는 노포(老圃). 이수빈의 종질(從姪)이다. 동생으로 이광림(李桄林)이 있다. 이경구(李璟求)는 지금의 김천시 구성면 상원리에서 태어났다. 벼슬이 부호군(副護軍)에 이르렀는데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아버지가 병환이 들자 자신이 대신 아프길 기원하였다. 부친상을 당해서는 3년간 술과 고기를 입에...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강양(江陽). 자는 여앙. 연안군(延安君) 이숙기의 7세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이윤서이다. 아들 이영진(李榮鎭)도 김천 지역에서 효자로 이름이 났다. 이구(李坵)[1598~1664]는 1627년(인조5) 정묘(丁卯) 식년시(式年試)에 입격하였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오직 학문 연구에만 전념하였으며 천품이 총명하며 지기가 고결하고 고상하였다,...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하빈(河濱). 자는 공달, 호는 송재(松齋). 이선동의 후예로 아버지는 이광진이다. 동생으로 이득지, 이득봉이 있다. 이득지는 자는 여달로 효성이 높았으며 벼슬은 부호군으로 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이득봉은 자는 계달이고, 호는 매허로 역시 효행이 뛰어났다. 이득배(李得培)[1550~1635]는 지금의 김천시 구성면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학자.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정약, 호는 이원재(二願齋). 아버지는 이수함이다. 이병중(李秉中)[1762~1848]은 명성당 이의조(李宜朝)와 당대 석학인 송환기(宋煥箕)의 문하에서 수업하였으나, 과거 시험을 보지 않고 오로지 중용학 공부에 힘썼다. 예학에도 밝아 『경예문답(經禮問答)』과 『예의해집(禮疑解輯)』 등의 저서가 있다. 승정원좌승지...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평(廣平). 자는 희성(希聖). 아버지는 직장 이춘란(李春蘭)이고, 어머니는 흥해 최씨이다. 이삼성[1564~1624]은 지금의 김천시 양천동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였고, 향시에 수차례 합격하였다. 효성이 지극하여 물고기를 잡아 모친을 봉양하였으며, 충의위(忠義衛)를 거쳐 찰방으로 향촌의 행정 업무를 담당하였다. 36세가...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소헌(素軒). 이약동(李約東)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이흥선이다. 동생으로 이상필(李尙苾)이 있으며, 형제가 모두 김천 지역에서 효행을 행하였다. 이상익(李尙益)은 지금의 김천시 구성면에서 태어났다. 동생 이상필과 함께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의 문하에서 경학과 예학을 수학하였다. 집...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성산(星山). 호는 영은(嶺隱). 경무공(景武公) 이제(李濟)의 후손이다. 아들로 효자인 이숙봉, 손자로 이용재·이용손을 두었다. 아들 이숙봉은 어머니가 위독해지자 손가락을 베고 피를 입에 넣어 주어 어머니를 살렸으며, 어머니가 작고한 후 시묘할 때 호랑이가 보호해 주었다는 일화가 있다. 손자 이용재·이용손도 여름날 어머니 김씨의 종기 난 자리...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명필가. 본관은 성산(星山). 할아버지는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에 굴욕적인 항복을 한 후, 두문불출하여 절의를 지킨 이상규(李相規)[1596~1645]이다. 이성동(李星東)[1662~1702]은 지금의 김천시 감문면 삼성리에서 태어났다. 벼슬은 통사랑에 이르렀으며, 문장뿐 아니라 명필로도 널리 알려졌다. 특히 서도에 능하여 개령객사(開寧客舍)에 ‘감...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유학자이자 효자.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대임(大任)·남강(南岡), 호는 도원거사. 할아버지는 군자감정 겸 좌승지(軍資監正兼左承旨)에 추증된 이이함(李以馠)이고, 아버지는 예조참판에 추증된 이유항(李惟杭)이다. 어머니는 벽진(碧珍) 이부규(李父逵)의 딸이며, 부인은 안동 장씨(安東張氏)이다. 아들로 이봉거(李鳳擧), 이붕거(李鵬擧), 이학거(李鶴擧), 이...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수정, 호는 악계(樂溪). 할아버지는 이명원(李命元)이다. 이수빈(李璲彬)은 영조 때 사람으로 일찍부터 과거에 뜻을 두지 않았다. 언행이 정직하고 효성과 우애가 하늘로부터 타고난 듯하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효제(孝悌)가 뛰어났다. 부인 곽씨와 더불어 부모를 정성으로 섬겼는데, 아버지가 병들었을 때 의원이 병을 낫게...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선비.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양오, 호는 진암(進庵). 형으로 이수암이 있다. 이수호(李遂浩)[1744~1796]는 지금의 김천시 구성면에서 태어났다. 족숙인 명성당 이의조(李宜朝)와 당대 석학인 송환기(宋煥箕)의 문하에서 예학과 경학을 공부하였다. 특히 이수호가 저술한 역서 『소학증해(小學增解)』는 간행된 후 널리 반포되었으며, 학자들의 교...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자선가.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성용. 증조할아버지는 이창하이다. 이안신(李安臣)은 지금의 김천시 개령면에서 태어났다. 기개와 도량이 탁월하였으며 성품도 관대하고 어질어 권선을 낙(樂)으로 삼았다. 흉년에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하자, “우리만 배불리 먹는 일은 하늘에 죄를 짓는 일이다.”라면서 자신의 재산을 내놓아 사람들을 도왔다. 1832~1...
-
경상북도 김천시 양천동에 있는 조선 초기의 문신 이약동의 유허비. 이약동(李約東)[1416~1493]은 본관이 벽진(碧珍)으로 자는 춘보(春甫), 호는 노촌(老村), 시호는 평정(平靖)이다. 김종직(金宗直), 조위(曺偉) 등과 교분이 깊었다. 1441년(태종 14) 진사시에 합격하고, 1451년(문종 1) 증광문과에 급제한 뒤 사섬시직장(司贍寺直長)을 거쳐 내...
-
조선 중기 김천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윤칙(允則). 할아버지는 통훈대부 용담현령 이검송(李儉松)이고, 아버지는 진사 이근동(李根東)이다. 어머니는 완산 이씨이며, 부인은 성산 배씨이다. 네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삼남은 통정대부 이은계(李殷繼)이고 사남은 첨정 이은확(李殷確)이다. 이언의(李彦儀)[1600~1637]는 지금의 김천시 감천면 도평리에서...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화범(華範), 호는 송호(松湖). 이영보(李英普)[1768~1821]는 지금의 김천시 부항면 지좌리에서 태어났다. 천성이 질박하고 부모를 모시는 데 효성을 다하였다. 10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슬퍼하고 예의를 갖추는 모습이 어른 못지않았다. 이 때문에 문상 온 사람들이 그를 더욱 갸륵하게 여겼다 한다. 그리고...
-
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 지좌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이영보의 효자각. 이영보(李英普)는 전서공(典書公) 이존인(李存仁)의 후예로 벽진 이씨 집안에서 1712년(영조 44)에 태어났다. 자는 화범(華範), 호는 송호(松湖)로, 천성이 절박하고 부모를 모심에 삼가고 조심하여 효성을 다하였다. 어려서부터 부모 섬기기를 지극히 하여 마을에서는 그가 사는 마을 한송정...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학자.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건백, 호는 숭례(崇禮). 할아버지는 이돈(李墩)[1628~1703]으로 향시에 합격하였으나 병자호란 이후 관료로 나아가지 않고 향리에서 성리학을 공부하여 숭정처사로 불렸다. 아들은 이의조(李宜朝)이다. 이의조는 조정에 천거될 때 ‘영남 우도의 큰 유학자’라고 하였는데, 2책의 『의요보유(義要補遺)』, 『경의수차(經義隨箚)』...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선비.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맹종(孟宗), 호는 경호(鏡湖)·명성당(明誠堂). 아버지는 이윤적(李胤積)이다. 이의조(李宜朝)[1727~1805]는 지금의 김천시 구성면 상좌원리에서 태어났다. 자신의 학문적 기반을 바탕으로 다양한 저술 활동뿐만 아니라, 방초정(芳草亭)을 교육장으로 활용하여 후진 양성에도 전력하였다. 부친의 유명을 따라 13년...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문신이자 선비.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대유, 호는 용호(龍湖). 이숭인(李崇仁)의 후예이다. 이의형(李宜亨)[1800~?]은 지금의 김천시 감천면에서 태어났다. 용호재를 짓고 후진을 양성하여 많은 제자를 배출하였다. 향리와 도에서 학문이 뛰어나다고 추천하여 동몽교관에 제수되었다. 『학설(學說)』 2권, 『잡록(雜錄)』 15권 및 일...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호원(浩遠), 호는 초당(草堂). 증조할아버지는 이구령이다. 이장원(李長源)[1560~1649]은 지금의 김천시 구성면에서 태어났다. 7~8세에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묘 옆의 여막(廬幕)에서 기거하는 3년간 흰죽만 먹으면서 시묘를 하였을 만큼 효성이 매우 지극하였다. 또한 예절이 어른보다 나은 바가 있었다고 한다....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모반자. 본관은 벽진(碧珍). 아버지는 재산가 이당춘(李堂春)이다. 아들로 이천건을 두었다. 이정(李瀞)[?~1631]은 김천시 조마면 장암리 신촌에서 태어났다. 1631년(인조 9) 양석천(梁錫天)과 더불어 반역을 도모하였다가 발각되어 처형되었으며, 가택은 헐리고 그 자리에는 못이 파였다. 이때 이정의 아들 이천건도 교수형에 처해졌다. 이천건의...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상원리에 있는 조선 후기 화순최씨의 정려각. 화순최씨는 화순 사람 최율(崔律)과 상산 김씨(商山金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17세에 연안 사람 이정복과 혼인했으나 신행 전에 임진왜란을 만났다. 적이 들이닥치자 죽더라도 시가(媤家)에서 죽겠다고 하고 감천면 하로에서 가족과 함께 구성 쪽으로 피난을 떠났다. 상좌원에 있는 시가에 들리니 이미...
-
경상북도 김천시 농소면 봉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종화 처 김해김씨의 정려각. 이종화 처 김해 김씨는 남달리 성질이 온유하고 공손하며 학식에 능하고 일찍이 삼종지의(三從之義)를 깨달았다. 김씨 부인은 16세에 강양(江陽) 이종화(李鍾華)에게 시집가 시부모와 남편을 극진히 모셨으며, 이로 인해 효부로서 칭찬이 높았다. 일찍이 남편이 병들자 정성으로 간병하다가 위...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직여, 호는 해재(海齋). 아버지는 이유(李遊)이다. 집안이 대를 이어 주자학을 연구하고 실천하여 ‘사세 학행, 사세 유일’로 명성을 얻었다. 아버지 이유도 형 이혼과 함께 고향에 은거하면서 성리학에 잠심하여 일가를 이루었다. 중종 대에 학행으로 안음현 훈도에 제수되었고, 이조참의에 증직되었다. 아들 이지남[자 성지, 호...
-
조선 후기 김천의 향토지를 저술한 문인. 본관은 하빈(河濱). 자는 자형(子亨), 호는 허주자(虛舟子). 이선동(李善仝)의 후예로 아버지는 이명필이다. 1718년(숙종 44) 이태하(李泰夏)[1658~1721]는 여이명(呂以鳴)과 함께 현존하는 김천 지역 최고(最古)의 향토지인 『금릉승람(金陵勝覽)』을 저술하였다. 경학(經學)에 밝고 문장이 탁월하여 유명하였으며, 특히 시사(時事)...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면여(勉餘), 호는 양계(陽溪). 아버지는 개령(開寧)에 세거지를 둔 이상규(李尙規)이고, 장인은 황준경(黃浚瓊)이다. 셋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형으로 이함(李馠)과 이암(李馣)이 있고, 아우로 이필(李馝)과 이발(李馞)·이의(李薿)가 있다. 이하(李馥)[1626~1688]는 지금의 김천시 감문면 삼봉에서 태어나,...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면여(勉餘), 호는 양계(陽溪). 아버지는 병자호란 이후 절의를 지켜 개령 삼봉에서 두문불출한 숭정처사 이상규(李相規)[1596~1645]이다. 이하(李𩡘)는 지금의 김천시 감문면에서 태어났다. 1651년(효종 2)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1654년(효종 5) 문과에 급제하였다. 1660년(현종 1) 사헌부...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선비.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유백, 호는 천고(闡皐). 연안 이씨 가적(家籍)의 종손이다. 이현구(李賢求)[1808~1874]는 지금의 김천시 구성면에서 태어났다. 김천 지역에서 후학의 교육에 힘써 유풍(儒風)을 쇄신하였고, 향음주례(鄕飮酒禮)를 실행하였다. 저서로 『용학연의(庸學衍義)』가 있다....
-
조선 후기 숙종대 인현왕후가 김천 청암사로 부친 편지. 조선 숙종의 계비인 인현왕후가 1689년에 폐서인이 되어 김천 청암사 보광전에서 3년간 기거하였다. 인현왕후어제등록은 인현왕후가 복위된 다음 해인 1695년에 청암사에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하여 보낸 편지이다. 인현왕후어제등록은 간찰의 형태이다. 인현왕후어제등록에는 청암사 스님들에 대한 충심의 고마움과 함께 비녀와 잔과 신을 신...
-
“어쩐다냐?” 개령현 동부리 쌍샘 인근 비석거리에 사는 김규진은 애꿎은 담뱃대만 뻑뻑 빨아대며 한숨을 쉰다. 벌써 여러 날 전부터 개령관아에서 지난해 빌렸던 보리쌀을 갚으라고 아전들이 닦달을 하더니, 급기야 어제는 가마솥을 떼어 갔고 오늘은 또 동헌에 불려 나가 볼기까지 얻어맞았다. 설상가상으로 재작년 환곡을 갚지 못한 동생은 식솔을 데리고 야반도주를 했다. “아이고,...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개령(開寧).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에 증직된 임기(林芑)이다 임우춘(林遇春)은 부친 임기가 임진왜란 때 왜적에게 피살된 후 원수를 갚기 위해 경상북도 상주군 갑장산에서 의병을 모아 기습을 준비하던 중 정유재란 때 적에게 발각되어 사로잡히고 말았다. 임우춘은 끌려가다가 부친의 산소가 가까워 오자, “나는 임기의 아들이다. 죽음은 두렵지...
-
1592년부터 1598년까지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왜군의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 4월 13일 임진왜란을 일으킨 왜군은 한양을 함락하기 위해 교통로를 따라 빠르게 진격하였다. 구로다 나가사마[黑田長政]가 이끄는 우로의 왜군은 무계~성주~개령을 거쳐 4월 25일 교통의 요지인 김천역에 도착하였다. 김천역을 지키던 우방어사 조경(趙儆)과 조방장 양사준이 적을 맞아 싸웠으나 패배하여 조...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의병. 임천강(林千江)은 본관은 나주(羅州)이며, 지금의 김천시 대항면 복전리에서 태어났다. 김천의 역리(驛吏)였다. 1566년(명종 21) 강사상이 경상감사로 부임할 때 진주로 수행하다가 덕산에서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2]을 만났다. 이때 남명이 임천강에게 “향리나 역리는 모두 고려 때 충신의 후손인데, 향리는 과거에 응할 수...
-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 강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자동서원은 강설(姜渫)·강여호(姜汝㦿)·강석구(姜碩龜)·강이하를 배향한 서원이다. 남와 강설은 1612년(광해군 4)에 증광 진사시에 합격하고,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는 기호 지방 선비들의 의병장으로 추대 받은 바 있다. 1628년 김산에 들어와 지금의 구성면 광명리에 거처를 정하고, 정한강...
-
조선 후기 김천 지역에 은거한 문인.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윤오, 호는 농재(聾齋). 장홍한(張鴻翰)의 후예이며, 아버지는 장한걸이다. 장신강(張信鋼)[1779~1856]은 선대의 업적을 드러내어 밝혀서 널리 퍼지게 하려는 높은 뜻을 가졌으나, 시대 상황은 이미 조선 말기의 쇠퇴기이었다. 이에 김천시 구성면 임천리에 은거하였다. 관리로서는 제세안민의 뜻을 펼치지 못...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순거. 할아버지는 죽정 장잠이고, 아버지는 참의 장곤이다. 장홍한(張鴻翰)[1571~1594]은 의기가 초인하고 지략이 절륜하였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왜승 찬희와 그 상좌승 수정을 사로잡는 공을 세웠다. 1593년(선조 26) 10월에는 황간의 의병장 박이룡과 더불어 김산, 지례, 개령, 선산 네 개 읍의...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충복(忠僕)이자 효자. 전순기(全順己)는 지금의 김천시 봉산면 신리 봉계마을에서 태어났다. 봉산면 조익의 노비로 천성이 효성스러웠다. 어려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탓에 장례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였으나 성장하여 3년간 추복(追服)을 하였다. 어머니가 병에 걸리자 어머니의 대변을 맛보아 병세를 짐작하고 약을 달여 드렸고, 어머니가 위독할 때에는 손가락을...
-
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 가례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정구의 기념비. 정구 기념비는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가 고향 성주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에 늘 들르던 대덕면 조룡리 봉곡사(鳳谷寺)를 오르내릴 때 지팡이를 기대어 놓고 쉬어 가던 곳에 1826년경 후학들이 정구의 덕을 기리고자 세웠다. 비석을 세우기 시작하여 20년이 지나 비석을 완성하...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유학자로 노비 해방을 실천한 인물. 본관은 영일(迎日). 호는 구암(懼庵). 아버지는 정박(鄭璞)이다. 아들은 정사기(鄭師沂)와 정량수를 두었고 손자로는 정혐(鄭馦)이 있다. 정혐은 1789년(정조 13) 식년시에 급제하여 할아버지의 명성과 가세를 이어갔다. 정만용(鄭萬容)은 1682년(숙종 8) 지금의 김천시 봉산면 신리 봉계마을에서 태어났으며,...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으로 무신란 때 공을 세운 인물. 본관은 서산(瑞山). 자는 조향, 호는 율옹(栗翁). 고려 후기 문신인 서산 정씨 정인경(鄭仁卿)의 후손이다. 정세갑(鄭世甲)[?~1788]은 지금의 김천시 대덕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비상한 재주가 있었으며 사색하는 것을 무척 좋아하였다. 무예에 관심이 많았는데, 특히 활쏘기와 말 타기를 즐겨하였다. 마을 앞 석...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중보(仲輔), 호는 천방자(天方子)·수옹(睡翁). 아버지는 병절교위(秉節校尉) 정내신(鄭鼐臣)이다.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동생인 옥산(玉山) 이우(李瑀)의 사위이다. 정유성(鄭維城)[1569~1645]은 총명하고 학문에 대한 열의가 대단하여 율곡 이이의 문하에서 촉망받던 제자로, 율곡의 학통을 이을 기량을...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영일(迎日). 초명은 정서룡(鄭瑞龍), 자는 인보(仁輔). 아버지는 병절교위(秉節校尉) 정내신(鄭乃臣)이다. 정유한(鄭維翰)[1568~1640]은 어릴 때부터 영민하고 효성 우애가 돈독하였다. 13세에 시구(詩句)를 맺을 줄 알았다. 효성이 지극하여 아버지의 다리에 갑자기 종기가 나서 일어서지를 못할 때 삼촌과 함께 병간호에 치성을...
-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 장암리에 있는 정일 부부의 정려각. 영일 사람인 진사 정일(鄭鎰)의 자는 경중(輕重), 호는 송암(松巖)인데, 1556년(명종 11) 2월 16일 영일 정씨 정사신(鄭思信)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3년간 죽만 먹으며 애도하여 널리 효자로 이름이 나기도 했다. 임진왜란 때 정일은 움직일 수도...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무신.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상보. 증조할아버지는 정내신, 할아버지는 정유한(鄭維翰)[1568~1640]이다. 정유한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공자동에서 김산 관군과 합세하여 적을 물리친 공을 세웠다. 정후상(鄭后相)[1649~1715]은 할아버지의 기질을 이어받아 의협심이 강하고 의리를 소중히 여겼다. 숙종조에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청선...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운거(雲擧), 호는 경지재(敬知齋). 아버지는 이조판서에 증직된 조유(曺逾)이며,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첫째 형은 조세호(曺世虎), 둘째 형은 조세룡(曺世龍), 셋째 형은 조세봉(曺世鳳)이다. 조세호는 자는 병여이고 숙종조에 진사시에 합격하여 학행으로 참봉에 제수되고 수직으로 지중추부사에 올랐으며 학자로서만이 아니라 세인이...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문신. 조시영의 본관은 창녕(昌寧)이며 자는 치극(稚克)이고 호는 후계(後溪)이다. 동지중추부사 조위(曺偉)의 12세손이며, 아버지는 참봉 조진만(曺鎭萬)이고 어머니는 진주 강씨(晉州姜氏) 강처중(姜處重)의 딸이다/ 조시영(曺始永)[1843~1912]은 1873년(고종 10) 계유 식년시에 입격하여 진사로 성균관 유생이 되었으며 1882년 임오 정시 문과에...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복전리에 있는, 박사삼을 기리기 위한 조선 후기의 서당. 김천 시내에서 국도 4호선을 타고 가다가 직지사로 가는 지방도 903호선으로 접어들면 첫 마을로 직지천 건너편인 김천시 대항면 복전리 복전마을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안으로 좀 더 들어가면 조천서당(藻川書堂)이 위치하고 있다. 충주 박씨 안정공(安定公) 박사삼(朴事三)[1...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직지성보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에 간행된 불서(佛書).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은 송나라 고승 도원(道源)이 역대 법맥과 법어를 수록한 불서로, 조선 시대에는 승과의 한 과목이었다. 인도에서 중국에 이르는 방대한 선종의 법맥(法脈) 전승을 총 30권으로 정리해 놓은 책이다. 고려와 조선 시대 승과(僧科)에서 선종의 시...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직지성보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에 간행된 불경.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藥師瑠璃光如來本願功德經)』은 7세기 중엽 당나라의 학승 현장(玄奘)[600~664]이 번역한 것으로 “약사유리광여래가 불법을 닦을 때 세운 다짐과 부처를 섬길 때의 공덕에 대해 설한 불전”이란 뜻을 가진다.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은 『약사여래본...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직지성보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 사찰 행사의 절차와 의식을 담고 있는 책. 오침 안정법을 한 선장본으로, 표제는 ‘제반문(諸盤文)’이다. 어미는 상하내향이엽화문어미(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 광곽은 사주단변(四周單邊)이다. 책의 크기는 가로 22㎝, 세로 35.5㎝, 반곽 크기는 가로 16.5㎝, 세로 18.2㎝이다. 행수는 8행,...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직지사 대웅전에 봉안된 조선 후기 후불탱화. 「직지사 대웅전 삼존불탱화」는 1744년(영조 20) 승려 화가 진기(震基)와 지영(智英) 등이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세계(三世界)의 교리를 배경으로 하여 중앙에는 석가불의 「영산회상도」, 왼쪽에는 약사불의 「약사회상도」, 오른쪽에는 아미타불의 「아미타회상도」를 배치하였다. 19...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직지사에 있는 조선 후기 금강역사상. 명부전은 팔작지붕에 앞면과 옆면 각 3칸 규모의 불당이다. 안에는 지장보살좌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도명존자·무독귀왕이 협시하고 있고, 그 주위로 시왕과 판관·녹사·사자·인왕 각 2위가 봉안되어 있다. 금강역사상은 오른쪽과 왼쪽에 두 구가 있는데 모두 나무로 만들어져 있다. 오른쪽 인왕상은 전체 높이 123...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직지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사적비. 직지사는 신라 말 고려 초에 능여대사가 활동하여 고려 태조가 대찰로 창건하였다. 이곳에 왕희지(王羲之) 글씨를 집자한 비가 있었는데, 조선 세조 때 학조(學祖)가 중수하였고, 임진왜란으로 피해를 입어 유실되었을 때 중창하였다. 직지사 사적비는 1681년(숙종 7)에 조종저(趙宗著)가 짓고 낭선군...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직지사 명부전에 있는 조선 후기의 십대왕상. 직지사 십대왕상은 명부의 세계를 형상화한 것으로 모두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모두 관복 차림으로 의자에 앉아 있다. 그러나 머리에는 각각 다른 변형된 원유관(遠遊冠)을 쓰고 손에는 책 또는 홀(笏)을 들고 있는 등 10개의 상이 모두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오른쪽 첫 번째 제1 진광대왕...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직지사 응진전에 있는 십육나한상. 직지사 응진전은 931년(태조 14) 능여대사가 창건하였으나, 임진왜란에 전소되었던 것을 1656년(효종 7) 관음전으로 중건하였다가 뒤에 응진전으로 개액하였다. 직지사 응진전에는 석가여래삼존좌상을 중심으로 직지사 십육나한상과 동자상이 봉안되어 있다. 직지사 십육나한상은 석가모니의 많은...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직지사에 있는 조선 후기 불상. 직지사 천불상에 관해서는 「천불 조성기」, 「천불상 개분중수공덕주축원문(千佛像改粉重修功德主祝願文)」 현판 등의 사료가 전해 내려온다. 「천불 조성기」에 의하면 직지사 천불상이 처음 조성된 것은 1656년(효종 7) 경잠(景岑)에 의해서였으며, 1784~1785년에는 한꺼번에 259위를 새로 조성하는...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직지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비. 추담대사 관징(琯澄)[1582~1685]은 13세에 출가하여 회암(晦庵), 낙암(洛岩), 환성(喚醒), 쌍운(雙運), 대적(大寂) 등 당대 명승이라 불리던 여러 승려들을 찾아 배우고 끝내 운암(雲岩)의 법을 이었다. 조선 후기에 여러 스승을 찾아다니며 법을 찾던 수행자들의 일면을 뚜렷이 보여주는 행...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직지사 직지성보박물관에 걸려 있는 조선 후기 김정희(金正喜)의 친필 현판. 김정희[1786~1856]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서예가이자 금석 학자, 고증 학자이다. 본관은 경주, 호는 완당(阮堂)·추사(秋史)·예당(禮堂)·시암(詩庵) 등 503여 종에 이른다. 한국 금석학의 개조(開祖)로 여겨지며, 한국과 중국의 옛 비문을 보고...
-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평촌리 청암사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에 간행된 불교 경전. 인도의 학승 구마라집[鳩摩羅什]이 번역하고 송나라 승려 계환이 해설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은 『금강경(金剛經)』, 『화엄경(華嚴經)』과 더불어 대표적인 대승 경전의 하나이다. 『묘법연화경』은 “백련꽃과 같이 올바른 가르침을 주는 경전”이란 의미로 천태종의 법화 사상을...
-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평촌리 청암사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에 간행된 불교 경전 『수능엄경(首楞嚴經)』의 원명은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이다. 줄여서 『대불정수능엄경(大佛頂首楞嚴經)』 또는 『수능엄경(首楞嚴經)』이라고도 한다. 부처의 말을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체득하여 깨달음을 얻는 것을 주...
-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평촌리 청암사 나한전에 있는 16개의 나한상. 나한(羅漢)은 부처를 믿고 따르는 제자들을 의미한다. 본래 나한이란 인도의 옛말 아르하트에서 온 단어이다. 아르하트는 다른 말로 아라한(阿羅漢)[Arhan]이라 하며 줄여서 나한이라고도 한다. 뜻으로 옮겨 응공(應供), 무학(無學), 응진(應眞)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무학은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는...
-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평촌리 청암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석탑. 859년(헌안왕 3)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부처의 진신사리를 안치하기 위해 건립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청암사 다층석탑은 김천시 증산면 평촌리 688번지 청암사 대웅전 앞에 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성주 땅 어느 논 가운데에 있는 것을 1912년 청암사 중건 시 청암사 주지였던 대운대사(大...
-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평촌리 청암사에 있는 조선 후기 불전.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평촌리 685번지 청암사 극락전 후편 좌측 산기슭에 위치한다. 청암사 대웅전이 있는 큰절과 개울을 사이에 두고 암자가 있는데 동쪽 건물은 극락전이고, 서쪽은 보광전이다. 보광전 건립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1782년(정조 6)에 중건한 기록이 있어 그 이전부터 존재했...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의병. 본관은 화순(和順). 자는 취오(聚五), 호는 지재(止齋). 아버지는 최상도(崔尙道)이다. 동생으로 최창규가 있다. 최동규(崔東奎)[1674~?]는 지금의 김천시 조마면 신안리에서 태어났다. 8세에 『십팔사략(十八史略)』을 읽고 10세에 사서에 통달하였으며, 문예에도 특출하였다. 20세에 향시에 실패한 후 무예에 전념하여 26세인 1699년...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무신이자 의병. 본관은 화순(和順). 증조할아버지는 최선문(崔善門)이고, 아버지는 최득종이다. 아들은 최경운·최기운, 손자는 최유형·최유선·최유림·최유수, 증손자는 최여망·최단망을 두었다. 아들 최경운과 최기운도 1630년(인조 8) 각각 33세와 28세로 무과에 급제하여 무관의 대를 이어갔다. 이들은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남한산성에서 인조를 지근거리에서...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화순(和順). 자는 사겸(士謙). 아버지는 최응화이다. 최익대(崔益大)[1719~1783]는 지금의 김천시 조마면 신안리에서 태어났다. 윗대 조상인 수우당 최영경이 정여립 모반 사건에 연루되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면서 집안이 몰락하였다. 그는 “빛나던 가문은 빛이 없어지고, 당장에 끼니를 잇지 못하시는 늙으신 부모님이 계신다. 붓을...
-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화순(和順). 자는 범구(範九), 호는 남애(南涯). 증조할아버지는 최하대이고, 아버지는 최성수이다. 아들로 김천의 대표적 독립운동가 최학길(崔鶴吉)을 두었다. 최창락(崔昌洛)[1832~1886]은 지금의 김천시 조마면 신안리에서 태어났다. 1880년(고종 17) 12월 김천시 안서동[현 조마면 신안리]에서 동민들과 함께 마을의 규...
-
임진왜란 당시 추풍령에서 일어난 김천의 대표적 전투. 1592년 3월 14일 부산포에 상륙한 왜군이 파죽지세로 각 읍을 함락하고 북진하자 조정에서는 17일 강계부사 조경(趙儆)을 우방어사로 임명하여 즉시 추풍령으로 떠나게 하였다. 조경은 이수광(李睟光)을 종사관으로, 양사준을 조방장으로 삼아 100여 명의 관군을 이끌고 김산 김천역에 당도하였다. 때마침 진주성 훈령봉사인 30세 청...
-
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 파천리에 있던 조선 후기 교육 기관. 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 파천1리, 김천에서 무주로 가는 길에 있다. 김천시 감천면, 구성면, 지례면을 거쳐 부항면을 지나면 무주의 무풍면이다. 노론파의 영수인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과 그의 증손자인 운평(雲坪) 송능상(宋能相)을 제사하기 위해 연안 이씨 경호(鏡湖) 이의조(李宜朝) 등이 1756...
-
경상북도 김천시 어모면 구례리에 있는 문충공(文忠公) 김득배(金得培)를 추모하기 위한 조선 후기의 사우. 충의재는 문충공(文忠公) 김득배(金得培)를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1867년(고종 13)에 건립한 사당이다. 김득배의 본관은 상산이고, 호는 난계(蘭溪)이며, 아버지는 판전의(判典醫) 김이록(金李祿)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검열(藝文檢閱)을 지내고, 전객...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상좌원리에 있는 이숭원(李崇元)을 비롯하여 연안 이씨(延安李氏) 선조를 기리기 위한 조선 후기의 사우. 충효당은 1870년(고종 7)에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도동서원(道洞書院)이 철폐되자 충간공(忠簡公) 이숭원(李崇元)을 비롯해 서원에 배향하였던 선조들의 영정과 위패를 모시기 위해 1871년에 연안 이씨(延安李氏) 문중에서 건...
-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평촌리의 무흘정사(武屹精舍)가 있던 터.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는 1563년에 이황(李滉)을, 1566년에 조식(曺植)을 스승으로 삼았다. 1563년 향시(鄕試)에 합격하였고 학문 연구에 전념하다가 1580년 창녕현감(昌寧縣監) 관직생활을 하였다. 1584년 동복현감(同福縣監)을 거쳐, 교정청낭청(校正廳郎廳)을 지냈...
-
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 중산리에 있는, 송천상을 기리기 위한 조선 후기의 사당. 은진 송씨 남촌(南村) 송천상(宋天祥)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지례향교에 있던 오성의 위패를 호위하여 유교의 도의를 지켰다. 이에 그 은덕을 갚기 위해서 1860년(철종 11)에 지방의 유림이 모여 의논하기를 “어찌 편안하게 모시고 제사 드릴 곳이 없을 수 있겠는가....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황악산을 배경으로 쓴 조선 후기 가사문학. 황악산구곡은 김천 황악산의 서남쪽 구성·지례·증산·대덕·조마·양천, 넓게는 감천 일대를 말하며 ‘황남구곡’이라고도 이른다. 이곳을 배경으로 이관빈(李寬彬)[1759~?]이 장편 가사(歌辭) 「황남별곡(黃南別曲)」, 윤희배(尹喜培)[1827~1900]가 「황산별곡(黃山別曲)」을 썼다. 「황남별곡」은 18세기 말에 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