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특별시 도봉구 출신의 정치인. 강성태(姜聲邰)는 1903년 11월 2일에 태어났다. 1929년에 경성 제국 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1937년까지 조선 총독부에서 근무하였다. 1937년에 만주 척식 공사(滿洲拓植公社)에 입사하여, 1943년에 연길(延吉) 지점장이 되었다. 1948년 정부가 수립되자 재무부 관세국장에 임명되어 우리나라 관세 행정 체계 마련에 공헌하였고, 1953년...
-
서울특별시 도봉구 출신의 국회 의원. 강승구(姜昇求)는 서울 종로구에서 출생하여 보성 고등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동경 제국 대학교에 진학해 문리대를 졸업하였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조직된 우익 청년 단체인 대한 청년단 양주군단 단장을 역임하였고, 양주군 지역에서의 청년단 활동을 시작으로 정치적 기반을 닦아 정치계에 입문하였다. 1951년 이승만의 신당 창당 지시에 따...
-
일제 강점기 양주 군수와 노해면장을 역임한 친일 관료. 강원달(康元達)은 1875년 평안남도 순천에서 태어나 1907년 평안남도 순천 사립 시무 학교(時務學校) 교원, 1908년 경기도 광주군 광흥 학교(廣興學校) 교원, 기호 흥학회(畿湖興學會) 광주군 지부 교육부장 등 교육계에 몸담았다. 일제가 한국을 강제 병탄한 1910년 8월부터 평안남도 덕천 군수에 임용되었고, 이후 친일...
-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살았던 정치인이자 언론인. 계훈제(桂勳梯)는 1921년 12월 31일 평안북도 선천군 심천면에서 농사꾼의 5형제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본관은 수안(遂安)이다. 1943년 경성 제국 대학 법학부에 입학하였다. 재학 도중 징용령이 떨어지자 학도 지원병에 응할 수 없다며 중경 임시 정부로 가려다가 체포되어 훈련소로 압송되었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는 건국 동맹과 연...
-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서 국회 의원을 지낸 정치인. 고흥문(高興門)은 1921년 8월 5일 서울에서 태어나 1941년 경기 상업 학교를 졸업하고 고려 대학교 경영 대학원을 수료하였다. 1942년 도매상인 협신 상사의 지배인으로 시작, 1947년 흥한 무역 공사 사장을 지내는 등 기업인으로 활동하였다. 1950년 제2대 민의원 선거 당시 조병옥(趙炳玉)의 선거 참모로 활동하면서 정...
-
서울특별시 도봉구를 지역구로 활동했던 정치인이자 민주화 운동가. 김근태(金槿泰)는 1947년 2월 14일 경기도 부천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이고, 소설가 김국태(金國泰)가 그의 형이다. 재야 민주화 운동을 함께 했던 인재근(印在謹)과 결혼하여 1남 1녀를 두었다. 그가 별세하고 부인 인재근이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그의 지역구인 도봉 갑구에서 국회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김...
-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묘가 있는 경제인. 김상준(金相駿)은 수당 김연수(金䄵洙)의 장남으로 1918년 6월 4일 전라북도 부안에서 출생하였다. 할아버지 김경중(金暻中)은 전라도를 대표하는 거부(巨富)로 성장한 대지주였다. 이미 김상준이 성장할 시기에 아버지 김연수와 큰아버지 김성수(金性洙)는 경성 방직 주식회사와 삼양사, 동아 일보사 설립을 통해 사업적인 기반을 마련하고 있었다. 부...
-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서 활동했던 지방 의회 의원. 노해면은 경기도 양주군 노원면과 해등촌면 일대에 1914년에 신설된 행정 구역으로,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에 의해서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편입되면서 폐지될 때까지 존속되었다. 관할 범위는 현재의 도봉동·방학동·쌍문동·창동동·월계동·공덕동·상계동·중계동·하계동 일대로, 현재의 도봉구와 노원구에 해당한다. 1949년...
-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살았던 기업가. 김연수(金䄵洙)의 본관은 울산(蔚山)이다. 전라북도 고부군에서 아버지 김경중(金暻中)과 어머니 장흥 고씨 사이에서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김연수가 어릴 때 이미 전라도를 대표하는 거부(巨富)로 성장한 대지주였다. 형인 김성수(金性洙)는 1891년에 출생해 동아 일보사와 경성 방직을 설립하였고,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김연수는 15세에...
-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서 활동한 지방 의회 의원. 노해면은 경기도 양주군 노원면과 해등촌면 일대에 1914년에 신설된 행정 구역으로,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에 의해서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편입되면서 폐지될 때까지 존속되었다. 관할 범위는 현재의 도봉동·방학동·쌍문동·창동동·월계동·공덕동·상계동·중계동·하계동 일대로, 현재의 도봉구와 노원구에 해당한다. 1949년 7...
-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에 있는 덕성 여자 대학교 총장을 지낸 관료. 부인은 조송자(趙松子)이며 아들은 김환석, 김환주이다. 김용래(金庸來)는 1934년 3월 15일 충청남도 아산에서 출생하여 경기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 대학교에서 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56년 제7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1962년~1963년 내무부 지방국 기획 감사과장을 시작으로 공직에 발을 디뎠...
-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서 면장으로 활동했던 관료. 노해면은 경기도 양주군 노원면과 해등촌면 일대에 1914년에 신설된 행정 구역이다.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에 의해서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편입될 때까지 존속되었다. 관할 범위는 현재의 도봉동·방학동·쌍문동·창동동·월계동·공덕동·상계동·중계동·하계동 일대로, 현재의 도봉구와 노원구에 해당한다. 김우영(金宇榮)은 195...
-
일제 강점기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이 속한 양주 군수를 지낸 관료. 김정제(金正濟)는 1913년 4월 충청남도 보령군 주산면 금암동에서 김상억의 아들로 태어났다. 광주 소학교와 광주 고등 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1931년 4월 경성 제국 대학 예과 문과에 입학하였다. 1933년 4월 경성 제국 대학 법문학부 법학과에 입학해 1936년 3월 졸업하였다. 1937년부터 1942년 6월까...
-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 출신의 경제인이자 정치인. 남궁련(南宮鍊)은 1916년 경기도 양주에서 출생하여, 1940년 니혼 대학[日本大學] 경제학과를 졸업하였다. 1949년 극동 해운을 설립하였으며, 1954~1959년 국영 대한 해운 공사 사장을 지냈다. 1959년에는 한국 석유를 설립해 대표를 지냈다. 1961년 5·16 군사 쿠데타 직후 국가 재건 최고 회의로부터 부정 축재자로...
-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서 활동한 지방 의원. 노해면은 경기도 양주군 노원면과 해등촌면 일대에 1914년에 신설된 행정 구역으로,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에 의해서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편입되면서 폐지될 때까지 존속되었다. 관할 범위는 현재의 도봉동·방학동·쌍문동·창동동·월계동·공덕동·상계동·중계동·하계동 일대로, 현재의 도봉구와 노원구에 해당한다. 1949년 7월 4...
-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에 거주했던 소설가이자 언론인. 박연희(朴淵禧)는 1918년 9월 24일 태어났다. 함경남도 함흥 출생인 박연희는 광복 후 월남하여 『백민(白民)』, 『자유 문학』 등의 잡지사에서 활동하며 편집장을 지냈다. 1946년 잡지 『백민』에 단편인 「쌀」을 발표하면서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고목(古木)」[1948], 「증인」[1954], 「그 여자의 연인」[...
-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있는 덕성 여자 대학교의 재단인 학교 법인 덕성 학원의 상임이사 및 덕성 여자중학교와 덕성여자고등학교의 교장을 역임한 교육인. 박원영(朴元榮)은 박준섭(朴俊燮)과 송금선(宋今璇)의 차남이다. 박준섭은 학교 법인 덕성 학원의 3대 이사장을 지냈으며, 송금선은 덕성 여자 초급대학 초대 학장이자 덕성 학원의 4대 이사장을 지냈다. 역시 학교 법인 덕성 학원의 이사장,...
-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있는 덕성 여자 대학교의 재단인 학교 법인 덕성 학원의 제3대 이사장을 지낸 교육인. 박준섭(朴俊燮)은 1929년 송금선(宋今璇)과 결혼해 슬하에 박원국(朴元國)·박원영(朴元榮)·박원택(朴元澤)·박원경(朴原炅) 등 4남을 두었다. 박준섭은 평안남도 진남포(鎭南浦)에서 출생해, 고향에서 진남포 국민학교와 진남포 상공 학교를 졸업한 뒤 배재 학당에 전입해 수학하였다...
-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서 당선된 정치인. 서범석(徐範錫)은 1902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1919년 양정 고등 보통학교 재학 중 3·1 운동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일제 말기에는 친일적인 행보를 걸었던 인물이다. 1921년 중국으로 건너가 베이징 중국 대학 정경과에서 수학하였다. 1924년부터 1931년까지 『조선 일보』·『시대 일보』·『동아 일보』 기자로 활동하였으며, 1930년...
-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있는 덕성 여자 대학교의 전신인 덕성 여자 초급 대학의 초대 학장을 지낸 교육인. 송금선(宋今璇)은 1905년 1월 15일 서울의 양골[陽洞]에서 송우영(宋禹榮)과 김명운(金明雲)의 장녀로 출생하였다. 본관은 여산(礪山)이다. 송금선은 1929년 박준섭(朴俊燮)과 결혼하여 슬하에 박원국(朴元國)·박원영(朴元榮)·박원택(朴元澤)·박원경(朴原炅) 등 4남을 두었다....
-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있는 덕성 여자 대학교 이사장을 역임한 교육자. 송우영(宋禹榮)은 1880년 신의주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여산(礪山)이다. 23세 때인 1903년 김명운(金明雲)과 결혼해 1905년 장녀 송금선(宋今璇)을 낳았다. 슬하에 3남 3녀를 두었다. 송우영은 어려서 부모와 함께 상경하여, 처음에는 미국인 선교사 언더우드가 경영하는 미국인 학당에 입학하여 영어, 한문,...
-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의 정치인. 신필희(申弼熙)는 이승만(李承晩)이 사사오입 개헌 등 헌법을 부정하는 행위를 통해서 장기집권을 꾀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1955년 장면(張勉) 등이 중심이 되어 창당한 민주당(民主黨)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정치인이다. 민주당은 1960년 4·19 혁명으로 제2공화국의 정권을 장악하였다가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해산되었고, 1963년...
-
조선 후기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 거주한 역인(役人). 1852년(철종 3)과 1858년(철종 9) 양주목에서 안만길(安萬吉)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2부가 남아 있어 안만길의 가계와 활동 사항을 파악할 수 있다. 준호구에 따르면 안만길은 본관이 순흥으로 아버지는 안성남(安成男), 할아버지는 안엇금(安旕金)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안선학(安善學)이다. 외할아버지는 본관이 전주인 이...
-
조선 후기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 거주했던 역인(役人). 1861년(철종 12) 양주목에서 안장손(安長孫)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가 남아 있어 안장손의 가계와 활동 사항을 파악할 수 있다. 준호구에 따르면 안장손은 본관이 순흥(順興)으로 아버지는 안동이(安同伊), 할아버지는 안귀복(安貴福)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안엇금(安旕金)이다. 외할아버지는 본관이 김해(金海)인 김미대(金味大...
-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서 활동했던 지방 의회 의원. 노해면은 경기도 양주군 노원면과 해등촌면 일대에 1914년에 신설된 행정 구역으로,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에 의해서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편입되면서 폐지될 때까지 존속되었다. 관할 범위는 현재의 도봉동·방학동·쌍문동·창동동·월계동·공덕동·상계동·중계동·하계동 일대로, 현재의 도봉구와 노원구에 해당한다. 1949년...
-
6·25 전쟁 때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서 사망한 미국 군인. 월턴 워커(Walton H. Walker)는 1889년 텍사스 주에서 출생하였다. 월턴 워커의 외아들 샘 워커(Sam Sims walker) 대위도 6·25 전쟁에 참전하였다. 월턴 워커는 미군 역사상 최연소 대장으로 진급하였다. 월턴 워커는 1912년 웨스트포인트 육군 사관 학교를 졸업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삼산 학원과 정의 여자 중학교를 설립한 교육자. 윤기안(尹基安)은 1899년 평안북도 박천(博川)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4일 평안북도 대동군 율리면 무진리의 독립 만세 시위를 주동하였다. 윤기안은 당시 이곳의 선수 예수 학교의 교사로 재직 중이었는데, 서울에서의 독립 만세 시위 소식을 듣고 이날 동료 교사와 학생, 주민들을 동원하여 만세 시위를 주동하다...
-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서 활동했던 지방 의회 의원. 노해면은 경기도 양주군 노원면과 해등촌면 일대에 1914년에 신설된 행정 구역으로,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에 의해서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편입되면서 폐지될 때까지 존속되었다. 관할 범위는 현재의 도봉동·방학동·쌍문동·창동동·월계동·공덕동·상계동·중계동·하계동 일대로, 현재의 도봉구와 노원구에 해당한다. 1949년...
-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있는 덕성 여자 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교육자. 부인은 황정규이며,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 이강혁(李康爀)은 1935년 9월 10일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났으며, 경기 고등학교와 서울 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1966년, 「한국 노동조합 정치 활동의 한계: 노동조합법 개정안에 대한 검토」라는 논문으로 서울 대학교 대학원 법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1...
-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살았던 노동 운동 지도자. 이소선(李小仙)은 장남인 전태일(全泰壹)이 1970년 11월 13일 청계천 평화 시장에서 분신자살한 이후, 아들의 유지를 이어 한국 노동 운동의 대모(大母)로 활동한 노동 운동가이다. 특히 1986년에는 전국 민주화 운동 유가족 협의회를 설립하고 1993년까지 회장을 맡는 등 노동 운동 지원 활동을 벌였다. 이소선은 1929년 경상북도...
-
6·25 전쟁 때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서 전투를 지휘한 군인. 이응준(李應俊)은 1890년 8월 12일 평안남도 안주(安州)에서 빈농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처는 이정희(李正熙)로 추정(秋汀) 이갑(李甲)의 딸이다. 맏사위 이형근(李亨根)은 일본 육군 사관 학교 56기로 해방 직전 일본군 소좌까지 진급하였고, 해방 후 미군정의 지원으로 설립된 조선 경비 사관 학교 초대 교장을 지...
-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서 활동했던 지방 의회 의원. 노해면은 경기도 양주군 노원면과 해등촌면 일대에 1914년에 신설된 행정 구역으로,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에 의해서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편입되면서 폐지될 때까지 존속되었다. 관할 범위는 현재의 도봉동·방학동·쌍문동·창동동·월계동·공덕동·상계동·중계동·하계동 일대로, 현재의 도봉구와 노원구에 해당한다. 1949년...
-
서울특별시 도봉구청장을 지낸 관료. 이재환(李在煥)은 충청남도 부여 출신이다. 부인은 변순옥으로,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다. 이재환은 1957년 서울시 공무원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후 주택 행정과장, 중앙 공무원 교육원 교수부장, 지하철 운영 사업소장 등을 지냈다. 1985년 제11대 도봉구청장에 임명되어 4년간 구청장을 지냈다. 1986년 당시 도봉구는 인구는 서울특별...
-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의 국회 의원을 지낸 정치인. 이진수(李鎭洙)는 함경남도 이원(利原) 출신으로 고향에서 북청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니혼 대학[日本大學] 상학부 경제학과에서 수학하였다. 이후 교토 제국 대학에서 경제학과 사회학 과정을 수료하였다. 졸업 후 변리사 사무소를 개업해 변리사로 활동했고, 조선 변리사회 회장을 지냈다. 해방 후 독립 정치 경제 문제 연구소를 설립하고 대...
-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서 활동했던 지방 의회 의원. 노해면은 경기도 양주군 노원면과 해등촌면 일대에 1914년에 신설된 행정 구역으로,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에 의해서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편입되면서 폐지될 때까지 존속되었다. 관할 범위는 현재의 도봉동·방학동·쌍문동·창동동·월계동·공덕동·상계동·중계동·하계동 일대로, 현재의 도봉구와 노원구에 해당한다. 1949년...
-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살았던 노동 운동가. 전태일(全泰壹)은 1948년 8월 26일 대구의 가난한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전상수, 어머니 이소선(李小仙) 사이의 2남 2녀 가운데 맏이로 태어났다.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은 전태일이 죽은 후 노동 운동가로 활동하였다. 여동생 전순옥도 노동 운동가가 되어 활동하였고 2012년에 국회 의원에 당선되었다. 전태일은 정규 교육을 거...
-
서울특별시 도봉구 출신의 문화재 수집가. 전형필(全鎣弼)은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 일찍부터 가치 있는 문화재를 수장하고자 자신의 힘과 막대한 재산을 쏟았으며, 일제 강점기 암울했던 시대 상황 속에서 우리의 문화재가 밀반출되어 해외로 유출되는 것을 막고, 우리의 문화유산을 수호해 현재까지 계승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본관은 정선(旌善). 자는 천뢰(天賚), 호는...
-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서 활동했던 지방 의회 의원. 노해면은 경기도 양주군 노원면과 해등촌면 일대에 1914년에 신설된 행정 구역으로,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에 의해서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편입되면서 폐지될 때까지 존속되었다. 관할 범위는 현재의 도봉동·방학동·쌍문동·창동동·월계동·공덕동·상계동·중계동·하계동 일대로, 현재의 도봉구와 노원구에 해당한다. 1949년...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묘소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남궁찬의 부인. 정부인 평산신씨(貞夫人平山申氏)는 성균관 대사성을 지낸 신자승(申自繩)의 9남 4녀 가운데 넷째 딸이다. 남궁찬(南宮璨)과 결혼하여 남궁필(南宮弼), 남궁익(南宮翼), 남궁숙(南宮淑) 세 아들과 두 딸을 두었다. 1530년(중종 25) 12월 12일 74세로 사망하여 이듬해인 1531년(중종 26) 2월 27...
-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서 활동했던 지방 의회 의원. 노해면은 경기도 양주군 노원면과 해등촌면 일대에 1914년에 신설된 행정 구역으로,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에 의해서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편입되면서 폐지될 때까지 존속되었다. 관할 범위는 현재의 도봉동·방학동·쌍문동·창동동·월계동·공덕동·상계동·중계동·하계동 일대로, 현재의 도봉구와 노원구에 해당한다. 1949년...
-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서 활동했던 지방 의회 의원. 노해면은 경기도 양주군 노원면과 해등촌면 일대에 1914년에 신설된 행정 구역으로,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에 의해서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편입되면서 폐지될 때까지 존속되었다. 관할 범위는 현재의 도봉동·방학동·쌍문동·창동동·월계동·공덕동·상계동·중계동·하계동 일대로, 현재의 도봉구와 노원구에 해당한다. 1949년...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묘소가 있는 조선 전기의 노비. 김동(金同)은 강녕 부정(江寧副正) 이기(李祺)의 노비라고 기록되어 있을 뿐, 그 밖의 자세한 가계나 내력은 알려져 있지 않다. 이기는 세종의 아들인 영해군(寧海君) 이당(李瑭)의 손자로서 작위를 물려받아 부정이 되었는데, 후에 당파에 붙어 정사를 관여했다 하여 관직을 삭탈당한 채 생애를 마쳤다. 이후 이기는 영조 때 도정...
-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서 활동했던 지방 의회 의원. 노해면은 경기도 양주군 노원면과 해등촌면 일대에 1914년에 신설된 행정 구역으로,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에 의해서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편입되면서 폐지될 때까지 존속되었다. 관할 범위는 현재의 도봉동·방학동·쌍문동·창동동·월계동·공덕동·상계동·중계동·하계동 일대로, 현재의 도봉구와 노원구에 해당한다. 1949년...
-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서 활동했던 지방 의회 의원. 노해면은 경기도 양주군 노원면과 해등촌면 일대에 1914년에 신설된 행정 구역으로,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에 의해서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편입되면서 폐지될 때까지 존속되었다. 관할 범위는 현재의 도봉동·방학동·쌍문동·창동동·월계동·공덕동·상계동·중계동·하계동 일대로, 현재의 도봉구와 노원구에 해당한다. 1949년...
-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살았던 사회 운동가·종교인·언론인. 함석헌(咸錫憲)은 1901년 3월 13일 평안북도 용천의 기독교 가정에서 출생하여, 유년기에 한학을 수학하고 덕일 학교(德一學校), 양시 공립 보통학교(楊市公立普通學校), 평양 고등 보통학교, 오산 학교 등에서 수학하였다. 1917년에 황득순과 결혼하였다. 1924년 일본으로 건너가 1928년까지 도쿄 고등 사범 학교에서 수학...
-
6·25 전쟁 때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 전투에서 사망한 군인. 함준호(咸俊鎬)는 1921년 11월 17일 서울 종로구에서 출생하였다. 경기 도립 상업 학교를 졸업하고, 경성 법학 전문학교에서 수학하였으며, 해방 후 미군정이 설립한 군사 영어 학교에 입교해 1946년 2월 18일에 졸업하였다. 졸업 직후 조선 국방 경비대 육군 참위[소위]로 임관되었다. 1948년 정부가 수립되자...
-
일제 강점기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 거주한 학자이자 정치가. 홍기무(洪起武)[1910~?]의 가문은 풍산 홍씨 추만공파(秋巒公派)로서 노론계 명문 사대부가이다. 고조할아버지 홍우길(洪祐吉)은 평안 감사, 한성부 판윤, 이조판서 등을 역임하였고, 증조할아버지 홍승목(洪承穆)은 병조참판을 거쳐 대한 제국 시기 중추원 찬의(贊議)를 지냈고, 할아버지 홍범식(洪範植)은 금산 군수로서 1...
-
일제 강점기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은거한 독립운동가이자 국어학자. 홍기문(洪起文)[1903~1992]의 호는 대산(袋山)이다. 가문은 풍산 홍씨 추만공파(秋巒公派)로서 노론계 명문 사대부가이다. 고조할아버지 홍우길(洪祐吉)은 평안 감사, 한성부 판윤, 이조판서 등을 역임하였고, 증조할아버지 홍승목(洪承穆)은 병조참판을 거쳐 대한 제국 시기 중추원 찬의(贊議)를 지냈고, 할아버지 홍범...
-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있는 덕성 여자 대학교 총장을 지낸 교육자. 홍웅선(洪雄善)은 1918년 2월 3일 서울에서 출생하였으며, 호는 진암(晉庵),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은행가인 홍헌(洪憲)의 장남으로, 1946년 오기환과 결혼하여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다. 홍웅선은 1937년 경성 사범 학교 연습과를 졸업하였다. 사범대를 졸업한 후 교사로서 사회생활의 첫발을 내딛어 미동 초등...
-
일제 강점기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의 면장을 지낸 친일 관료. 조선 총독부는 강점 초기부터 지역의 명망가들을 면장으로 끌어들여서 지방 지배를 효율적으로 실시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식민 지배에 대한 조선인들의 거부감, 면장의 제한된 권한 등으로 인하여 면장 자리는 주로 하급 계층에서 충원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면 제도가 확립되어가고 면에서 처리해야 할 사무도 증가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