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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효자. 감갑현의 본관은 회산(檜山). 자는 갑수(甲守). 회산감씨 시조 감규(甘揆)의 35세손이며 삼열공파(三烈公派)이다. 아버지는 감재춘(甘在春)이고, 어머니는 밀성박씨(密城朴氏)이다. 감갑현은 아버지의 병환을 6년간 지극한 정성으로 돌보았다. 그러나 백약이 효험이 없어 걱정하던 중 부인의 꿈에 신선이 나타나서 봉곡산 눈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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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감계리에 있는 청송심씨 문중 재실. 감의재는 본관이 청송(靑松)인 심선(沈鐥)과 심원지(沈沅之)를 봉향하는 추모당이다. 심선은 통정사복사정(通政司僕寺正)에, 심원지는 통정이참의(通政吏參議)에 추증되었다. 창원시 북면의 지방도 1045호선 굴현에서 3.2㎞ 정도 가면 나오는 화천교에서 감계리 방면으로 분기된 도로를 따라 약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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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창원 출신의 효자. 감화식(甘華植)의 본관은 회산(檜山). 자는 형관(亨寬), 호는 국포(菊圃). 회산감씨 시조 감규(甘揆)의 36세손이며 돈암공파(遯庵公派)이다. 아버지는 감태백(甘泰伯)이며, 어머니는 상산김씨(商山金氏)이다. 감화식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읜 뒤 정성을 다하여 홀어머니를 봉양하였다. 어머니가 병환이 나면 온갖 약을 지어 올리는 등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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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양. 이조 참의를 지낸 강기룡의 5세손이다. 강윤제(姜允齊)[?~?]는 아버지가 91세로 돌아가실 때까지 효성을 다한 효자이다. 성품이 순박하고 검소하였으며 용모가 의롭고 행동이 고결하였다. 부모를 모심에 정성을 다하였고 항시 부모의 뜻에 어긋남이 없이 지극히 하였다. 아버지가 사시는 동안 그 역시 늙고 쇠하였으나 정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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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효자. 강증흠(姜曾欽)은 강기룡(姜起龍)의 후손으로 성품이 어질고 효심이 깊었다. 부모를 모심에 그 직분을 다하니 인근 마을에서 그의 효행을 기려 여러 차례 상을 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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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내곡리 도태마을에 있는 밀양박씨 문중 재실. 경모재는 선조들을 향사하는 문중 재실로서 밀양박씨 창원 입향조인 박근진(朴根鎭)을 비롯한 선조들을 추모하는 곳이다. 경모재 기문에는 밀양박씨 조상들의 내력을 길게 기술하고 있으며, 입향조와 그의 세 아들에 대해서는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다. 창원시 북면과 칠북면 경계선 부근에서 북쪽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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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월백리 월산마을에 있는 달성서씨 학유공파(學諭公波)의 문중 재실. 경모재(월백리)는 서언복(徐彦福) 이후 선조를 제향하기 위해 세운 문중 재실이다. 묘소는 월산마을 인근 선산에 있다. 창원시 북면으로 지나는 국도 79호선 굴현에서 5㎞ 정도 가다가 동읍 화양리 방면 도로를 따라 약 1.5㎞에 이르면 백월산 남쪽에 월산마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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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반계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전주이씨 재실. 경운재는 옛 창원시 반계동, 현 팔룡동 지역에 있던 부곡마을에서 집성을 이루고 살았던 전주이씨 효령대군파(孝寧大君派)의 재실로서, 효령대군 13세손 모헌공(慕軒公) 이명린(李命麟)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이명린은 충청북도 진천에서 창원부곡으로 이거한 전주이씨 창원 입향조이다. 창원시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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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토월동에 있는 창원황씨 재실. 고산재는 17세기 창원 지역으로 이주한 창원황씨(昌原黃氏) 의창군파(義昌君派) 고산종중(高山宗中)의 재실이다. 창원황씨는 350여 년 동안 고산마을에서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으나, 창원시 도시계획으로 인하여 옛 자연마을이 없어지면서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되었다. 창원시 토월동 비음산 기슭 토월공원 남쪽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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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창원 지역의 열녀. 공우직은 지금의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감계리 사람이다. 공우직이 병사하자 공우직 처 이씨가 슬픔을 가누지 못해 남편이 죽은 날 목을 매 죽어서 남편과 한 무덤에 묻혔다. 이씨의 열행이 조정에 알려져 정려가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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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창원 출신의 효자. 구명신의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현보(顯甫)이다. 부사공파(府使公派) 창원·용정 문중으로서 구설(具雪)의 14세손이다. 아버지는 구세봉(具世鳳)이다. 구명신은 묘소가 창원시 동읍에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창원부(昌原府) 동면 일원(또는 대산면 일원)에 살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아버지가 병이 들자 지극한 효심으로 간호하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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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화양리 곡목마을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김귀의 사당. 구봉사(九峰祠)는 김해김씨 창원입향조 금산공(琴山公) 김귀(金龜)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김귀는 세종 대에 문과에 급제하였고, 춘추관편수관 및 경연참찬 등을 역임하였다. 이극돈에 의해 무고되어 용인에서 창원으로 이거하였다. 1485년 향년 60세에 사망하였으며, 묘소는 동읍 금산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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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효자. 구석린의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성래(聖䚅), 호는 정람(情嵐). 승지공파(承旨公派) 전북(全北) 문중으로, 구설(具雪)로부터 14세 손이며, 봉암(鳳岩) 구정려(具廷呂)의 현손이다. 아버지는 구한웅(具漢熊)이다. 구석린은 당시 창원부 일원에 살았을 것으로 여겨지나 분명하지 않다. 어려서부터 효행이 지극하였다. 특히 부친이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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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구암동에 있는 서원. 구암 서원에서는 조선 초기의 문신이었던 정이오(鄭以吾) 부자를 배향하고 있다. 정이오는 자가 수가(粹可), 호가 교은(郊隱)이다. 본관은 진주이고,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고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였고 조선 태종 때 성균관 대제학, 찬성사 등을 지냈다. 특히 글씨에 뛰어나 고려 명인으로 꼽히며 『교은집(郊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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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창원 출신의 효자. 구우서의 본관은 능주(綾州), 자는 치견(致見). 능주구씨의 시조 구존유(具存裕)의 25세손이다. 구우서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를 온갖 지성으로 섬겼다. 모친이 병을 얻어 자리에 몸져누운 때는 한시도 모친의 병석을 떠나지 아니하고 정성껏 간호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지성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병은 더욱 위중해 사경에 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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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창원 출신의 효자. 구정기의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우일(宇一). 전라병마절도사를 역임한 구복한(具復漢)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금송(琴松) 구재창(具在昶)이다. 구정기는 천성이 온건하고 평소 행동거지가 반듯하였다고 한다. 항상 『시전(詩傳)』의 「육아장(蓼莪章, 부모의 공을 노래한 대목)」을 읽었고 부모를 섬김에 있어 지체(志體)로 봉양하기에 힘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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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효자. 본관은 창원(昌原). 부사공파(府使公派) 동래 문중으로 구설(具雪)의 14세손이다. 아버지는 구득룡(具得龍)이다. 구주성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아버지가 병을 얻어 일어나지 못하자 손가락을 잘라 관혈하여 소생케 하였다. 효행이 향리에 널리 알려져 조정에서 정려를 내려 효의 귀감으로 삼았다. 이러한 내용이『창원시사』에 기록되어 있다. 묘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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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오서리에 있는 정사. 구천 정사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약한 ‘증 병조판서(贈兵曹判書) 신암(新菴) 박연홍(朴連弘)’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문중에서 건립하였다. 구천 정사 내에는 박연홍의 행적을 기록한 신도비가 있으며 매년 10월 17일에 유림들이 향사한다. 구천 정사는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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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창원 지역의 열녀. 구학령 처 강씨는 1783년(영조 14) 참봉 진양강씨의 딸로 태어나 16세에 지금의 창원시 동읍 단계리에 살던 구학령에게 시집왔다. 수개월 만에 남편 구학령이 병을 얻어 일어나지 못하게 되자 강씨는 약을 구해 간호하고 매일 밤 천지신명께 남편의 회복을 빌었으나 남편은 죽고 말았다. 이에 구학령 처 진양강씨는 미망 죄인으로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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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효자. 권규열의 본관은 안동이며, 효자로 이름난 진전면 오서리 입향조인 권용현(權龍見)의 후손이다. 권규열(權奎烈)[?~?]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남달랐다. 부모님께서 진노하심이 있으면 웃음으로 다가서서 다시 기쁜 얼굴이 되도록 하였다. 장성하여서는 몸소 고기를 잡고 사냥을 하여 부모님을 봉양하니 입맛에 맞지 않음이 없었다. 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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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효자. 권방희는 본관은 안동. 호는 기정(淇亭). 효자로 이름난 권용현(權龍見)의 후손이다. 권방희(權邦熙)[?~?]는 아버지께서 병이 들어 십년이 넘도록 일어나지 못하자 항상 곁에서 시중을 들면서 숟가락과 젓가락을 들고 있으면서 밥을 번갈아 먹으면서도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았다. 항상 변을 맛보아 그 병의 차도를 살폈다. 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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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열녀. 밀양 박씨 박경환(朴慶煥)의 딸로, 안동 권씨 권석(權석)의 처(妻)가 되었다. 권석 처 밀양 박씨는 성품이 정숙한 덕이 있어 모든 행동이 내칙(內則)에 합당하였다. 안동 권씨 권석에게 시집간 지 3년만에 남편이 병이 들어 학질에 걸리자 하늘에 기도하여 대신 죽을 것을 빌었으나 끝내 남편이 죽자 슬퍼함이 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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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효자. 권을의 자는 차갑(次甲). 아버지는 권준영(權俊英)이다. 이름은 을미년(1595)에 태어났기 때문에 ‘권을(權乙)’이라고 불렀던 것이 굳어진 것이라 한다. 『미수기언(眉叟記言)』에는 창원군 상남면[현 상남동] 바닷가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세거지, 문중, 후손 등은 확인되지 않는다. 권을은 조선 선조 대에 창원도호부 서쪽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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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효자. 권정래의 본관은 안동. 호는 모헌(慕軒)이다. 효자로 이름 난 권용현(權龍見)의 증손이다. 권정래(權正來)[?~?]는 영특함이 뛰어나 특별한 재능이 있었다. 부모를 봉양함에 지극한 정성으로 효를 다하였다. 부모의 상을 당하자 죽으로 연명하였다. 「이십명(二十銘)」을 지어 자손들을 경계하였다고 하나 전해지지 않는다. 나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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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효자. 권중엄의 본관은 안동, 자는 덕보(德甫), 호는 농계(農溪). 월암 권용현의 후예로 할아버지는 권기(權璣)이고 아버지는 권정래(權正來)이며 부인은 함안 이씨 이익종(李益宗)의 딸이다. 권중엄(權重儼)[1748~1830]은 학문에 힘썼고 효를 행함에 돈독하였다. 어려서 어머니의 상을 당하였을 때 예를 다하여 장례를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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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열녀. 진양 강씨(晉陽姜氏)는 강정환(姜鼎煥)의 딸로 안동 권씨 찬렬(燦烈)과 혼인하였다. 권찬렬 처 진양 강씨(晉陽姜氏)[?~?]는 성품이 효성스럽고 순박하며 지어미로서의 부덕(婦德)을 갖추었다. 시집가서 시부모를 모심과 종중에 돈목함이 그 마땅함을 다하였고 남편을 모신지 40여 년 동안 반드시 공경하며 어긋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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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무동리에 있는 선산김씨 취수공파 문중 재실. 귀후재는 본관이 선산(善山)인 김가행(金可行)과 아들 김상기(金尙琦)를 봉향위로 하는 후손들의 추모 제당이다. 김가행은 호가 계림(鷄林)으로 동래현령을 지냈고, 김상기는 진금현령·대사간을 지냈다. 김가행은 좌대언(左代言) 김군정(金君鼎)의 2남이고 지밀직사사 화의군 김달상(金達祥)의 손자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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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금산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김해김씨 판서공 불비파 종중 재실. 금호재는 판서공 불비파 후손들이 1924년에 파시조인 김불비(金不比)와 그 아들 환성헌(喚惺軒) 김수광(金秀光), 손자 김석공(金錫貢)·김석근(金錫根), 증손 김맹손(金孟孫) 등의 묘소 근처에 건립한 재실이다. 여말선초의 문신인 신묵재(愼默齋) 김불비는 창원시 동읍 산남리에서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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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효자. 김경련(金慶鍊)[?~?]의 본관은 광산. 호는 홍재(虹齋)이다. 타고난 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럽로 우애로왔다. 삼년 동안 부친의 병을 수발하면서 대변을 맛보아 그 차도를 살폈고 허벅지의 살을 베어 먹이는 등의 효도를 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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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효자. 김경호(金璟浩)의 본관은 안동, 호는 학고(鶴皐)이며, 지극한 효성으로 고을에 이름이 높아 향리의 칭송과 포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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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열녀. 파평 윤씨(坡坪尹氏)는 김해 김씨 김경호(金慶昊)의 처(妻)이다. 김경호 처 파평 윤씨(坡坪尹氏)는 나이 18세에 성혼을 하였는데 시어머니가 병들었다는 말을 듣고 바로 시댁으로 가서 시중들었다. 똥을 맛보아 병을 살피고 그에 맞게 약을 드리는 정성을 다하여 끝내 병을 낫게 하였다. 남편이 희귀한 병으로 드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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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열녀. 황씨(黃氏)는 김광식(金光寔)의 처(妻)이다. 김광식 처 황씨(黃氏)는 남편이 병들자 하늘에 기도하여 대신 아플 것을 청하였다. 그 기도가 통하여 병이 차도가 있어 5개월을 더 지탱하였다. 그 후 다시 재발하여 다시 일어나지 못하였다. 남편이 죽자 가슴을 치고 곧 따라 죽으려 하였으나 곁의 6촌 시누이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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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열녀. 전주 이씨(全州李氏)는 광산 김씨 김국현(金國鉉)의 부인이다. 김국현 처 전주 이씨(全州李氏)[?~?]는 어려서부터 의젓하고 훌륭한 행실이 있었는데 시집간 뒤 시부모님을 모시는데 정성을 다하였다. 남편이 병에 걸려 눕자 온갖 약을 구해 백방으로 구완하니 차도가 있었다. 그러나 남편이 죽음에 이르자 과단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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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열녀. 해주 오씨(海州吳氏)는 오재묵(吳載黙)의 딸이다. 김해 김씨 김두철(金斗哲)과 혼인하였다. 김두철 처 해주 오씨(海州吳氏)[?~?]는 남편이 병이 들어 매우 낫기 어려운 지경이 되어 병져 누운 지 3년이 되었어나 회생할 기미도 보이지 않고 도리가 없었다. 산천에 백일 기도를 드리며 매일 밤 칠성에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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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창원 출신의 효자. 김만경의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중약(仲若), 호는 괴희자(愧喜子). 사정공파(司正公派)의 15세손으로 김귀(金龜)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김시진(金時振)이다. 직계 후손의 거처는 알 수 없으며, 방계 후손들이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화양리 곡목마을 등에 거주하고 있다. 김만경은 현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화양리 곡목마을에 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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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효부. 남양 홍씨(南陽洪氏)는 홍종한(洪宗漢)의 딸이며 김해 김씨 김병호(金秉浩)와 혼인하였다. 김병호 처 남양 홍씨(南陽洪氏)는 어려서부터 부모를 모심에 효성이 지극하였다. 시어머니가 병들어 누웠을 때 지붕에서 새가 우니 상스럽지 못한 일이라고 사람들이 말하자 새를 바라보고 울자 새가 울기를 그쳤다. 시아버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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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열녀. 본관은 김해. 아버지는 김성배이다. 성주 이씨 이시록과 혼인하였다. 남편 이시록이 우연히 병을 얻어서 수년간 병석에서 지냈다. 백방으로 약을 구하고 지성껏 간병하였다. 남편의 아픔을 대신하고자 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토록 지극한 정성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병세는 악화되어 갔고 애통하게도 숨지고 말았다. 남편의 시신을 거두고 난후 여필종부로서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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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효자. 김산은 김해(金海) 김씨로 문민공(文愍公) 김일손(金馹孫)의 후손이다. 호는 시락재(時樂齋)이며 성품이 어질고 효심이 깊었다. 부모의 상(喪)을 당하여서는 여묘살이를 6년 동안 하였는데 너무 애통한 나머지 눈물을 흘리며 슬프게 울었더니 묘(墓) 주변의 나무들이 말라 죽었다. 만년(晩年)에 고성(古城) 아래 정자(亭子)를 짓고 ‘시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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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창원 지역의 열녀. 김상찬 처 이씨의 아버지는 이인선(李寅善)이다. 남편 김상찬이 결혼 후 얼마 안 되어 병을 얻어 수년간을 신음하였다. 이씨는 백약으로 치료하였으나 김상찬이 죽자 모든 예를 다 갖추어 장사를 지냈다. 이 후 어린 아이들을 잘 키워서 집안을 일으켜 주위의 칭송이 자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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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효자. 김성환(金成煥)은 선산(善山) 사람으로 수사(水使) 김치형(金致亨)의 후손이다. 성품이 어질고 효심이 깊었다. 부모가 병이 깊자 대변을 맛보며 병세를 살폈으며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마시게 하여 생명을 연장시켰다. 마을의 선비들이 그의 효행을 기려 포상(襃賞)을 청(請)하였다. 진사(進士) 허채(許採)가 시문(詩文)을 지어 그의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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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열녀. 김소남은 본관은 김녕(金寧)으로 김기두(金基斗)의 장녀로 태어났다. 17세에 경상남도 창원군 동읍 무성리 영산신씨(靈山辛氏) 신지순(辛支順)의 아들 신용선(辛龍善)에게 시집을 갔다. 결혼하자마자 남편이 중풍에 걸려 눕고 말았는데 온갖 약을 써도 소용이 없을 만큼 병이 매우 위중하였다. 19세 되던 해 자신의 허벅지 살을 떼어 내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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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창원 출신의 효부이자 열녀. 김수양 처 이씨는 창원도호부 서쪽 사율리(斜栗里)[현 경상남도 창원시 명곡동] 출신이다. 이씨는 지성으로 시아버지를 받들고 남편인 김수양을 예를 다해 섬겼으나, 김수양이 세상을 뜨자 남편을 따라 죽었다. 김수양 처 이씨의 열행이 조정에 알려져 정려가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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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효부·열녀. 본관은 경주. 아버지는 김정우이다. 성주 이씨 이태순에게 출가하였다. 김용연(金龍淵)[1891~1961]은 나이는 비록 어렸지만 자애롭고 현명하고 정숙하였다. 가난한 살림에도 시부모님을 극진히 모셨다. 주변의 많은 이들의 칭송이 자자했다. 1913년 남편이 빈곤한 생활을 타파하기 위하여 광산으로 돈을 벌러 떠났다. 집을 떠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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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창원 출신의 효자. 김우진의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성겸(聖謙). 김해김씨(金海金氏) 삼현파(三賢派)의 5세손인 절효(節孝) 김극일(金克一)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김치영(金致永)이며, 아들은 효자로 이름난 김창용(金昌瑢)이다. 후손들이 창원시 일원과 타지에 거주하고 있다. 김우진은 창원군 상남면 지귀리[현 경상남도 창원시 지귀동]에서 살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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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효자. 김유식(金有軾)은 김해 김씨로 효성스런 행실이 탁월하였다.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를 모심에 지극 정성을 다하였다. 계모가 들어오자 더욱 효성을 다하였는데 아버지는 98세의 천수를 누렸다. 매번 부친이 병이 들면 하늘에 기도하였다. 부친이 돌아가시니 삼년을 묘 곁에 여막을 짓고 시봉하였다. 조선 영조 때 좌랑(佐郞)에 증직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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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창원 출신의 효자. 김응구(金應九)[?~?]는 부모를 모심에 지극한 정성을 다하였다. 효행은 예를 갖춘 것이었고 봉양함에도 마찬가지였다. 부모가 돌아가심에 상례와 장례를 치름에도, 소상(小祥)과 대상(大祥)에도 법도에 맞게 행함이 한결같았다. 장례 기간 동안 피눈물을 흘리며 삼년상을 치렀고 여막(廬幕)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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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열녀. 주씨(朱氏)는 김응범(金應凡)의 처(妻)이다. 본관은 불분명하다. 그러나 웅천 일대에 신안 주씨들의 세거지와 집성촌이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신안 주씨로 추정된다. 김응범 처 주씨(朱氏)는 나이 23세에 머리를 올리고 시집으로 가지 않았는데 홀연히 불의의 강제 폭압을 당하는 변고를 만났으나 몸이 더럽혀지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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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창원 출신의 효자. 김이창의 이름에 ‘창(昌)’이라는 항렬자가 있는것으로 보아 김해김씨(金海金氏)이고, 1700년대 인물로 추측될 뿐이다. 김이창은 현재의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내곡리에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버지가 병중에 있을 때 약을 구하여 오다가 동구에서 폭우를 만나 개천을 건널 수 없게 되었다. 이에 김이창이 하늘을 올려다 보며 통곡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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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진해 지역의 효자. 김정한(金正漢)[?~?]은 조선 시대 진해 지역에 살았던 효자로 부모를 섬기는 효성이 지극하였다. 하루는 부친이 병상에 있을 때 추운 겨울임에도 병환 중의 부친을 위해 연못에서 얼음을 깨어 고기를 잡아 드리고 눈이 쌓인 골짝에 산나물도 캐내어 드리면서 쾌유를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였다. 간병을 위한 정성에도 병세가 위독해지자 변(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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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효자. 김제주(金濟周)[?~?]의 초명(初名)은 하정(夏鼎)이며, 김무조(金武祚)의 증손자이다. 부모를 모심에 효성이 지극하였다. 아버지가 나이가 들어 시력을 잃을 뻔하자 여러 가지 약초를 구하여 지극 정성으로 탕약을 만들어 봉양하니 시력을 회복하였다. 마을의 선비들이 감동하여 그 효행을 기록하여 관청(官廳)에 고하니 관청(官廳)에서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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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효부(孝婦). 진양 강씨(晉陽姜氏)는 강위겸(姜渭謙)의 딸로 김해 김씨 김제주(金濟周)와 혼인하였다. 성품이 효성스러워 지아비를 잘 섬기고 시부모를 잘 모셨다. 시아버지가 병이 들자 하늘에 기도하니 새가 날아와 잡히고 물고기가 뛰어오르는 기적 같은 일이 있었다. 고을에서 그의 효행을 기려 포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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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창원 출신의 효자. 김창용의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내언(乃彦). 김해김씨(金海金氏) 삼현파(三賢派)의 5세손인 절효(節孝) 김극일(金克一)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역시 효자로 이름난 김우진(金禹振)이다. 김창용은 창원군 상남면 지귀리[현 경상남도 창원시 지귀동]에서 살았다. 아버지의 효행을 이었으므로 향리에서 ‘대를 이은 효자’가 났다고 칭송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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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창원 출신의 효부. 김처화 처 밀양박씨는 경상남도 창원 지역 사람이다. 그러나 당대의 기록에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어느 시대 사람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아마도 비교적 현대에 가까운 인물로 추정한다. 김처화 처 밀양박씨의 시아버지 김한장(金漢章)은 머리에 종기가 나서 항시 피고름이 흘러내렸다. 이에 김처화 처 밀양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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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효자. 김택윤(金澤潤)[?~?]은 본관은 광산으로 부모를 모심에 정성을 다하였고 계모를 받듦에도 지극 정성으로 봉양하였다. 여러 아우들도 그의 효행을 본받아 혼정신성(昏定晨省)의 범절을 행하였고 항상 입에 맛는 음식을 봉양하는데 정성을 그치지 않으며 좋아하는 것은 어떻게든 구해서 드렸다. 계모도 그러한 정성에 감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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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창원 출신의 효자. 김필서는 영조·정조 대에 창원대도호부에 살았던 것으로 여겨지나 분명하지는 않다. 부모를 지극하게 봉양하였으며, 돌아간 후에도 생전과 같이 예를 다하였다. 특히 자신이 늙어서까지 풍우한서(風雨寒暑)에도 부모 묘소를 살피는 일을 조금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사후에 효행이 널리 알려져 공조참의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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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효자. 김하정(金夏鼎)은 김해 김씨로 지극한 효심으로 부모를 봉양하니 탁월한 이적이 있었다. 그의 처 강씨와 더불어 부모를 봉양함에 예를 다하였다. 그 아비가 나이가 연로하여 날로 눈이 어두워져 사물을 잘 볼 수 없게 되었다. 어떤 사람이 와서 말하기를 ‘새의 간을 눈에 넣으면 눈이 밝아진다.’고 하였다. 상을 차려놓고 하늘에 기도하며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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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효자. 김학규(金學圭)[?~?]는 김주(金澍)의 후손으로 호는 죽암(竹菴)이다. 아버지가 병이 깊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마시게 하여 생명을 연장시켰다. 아버지의 상(喪)을 당하여서는 매우 애통한 나머지 몸을 상하여서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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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효자. 김학엽(金學曄)[?~?]의 본관은 안동, 호는 묵재(黙齋)로 효성스러운 성품과 우애로운 행실로 고을에 이름이 높아 칭송이 자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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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창원 출신의 효자. 김현구의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치성(致聲), 호는 회은(檜隱). 김해김씨(金海金氏) 경파(京派) 70세손이다. 아버지는 김주식(金周植), 동생은 김현세(金顯世)·김현영(金顯永)이다. 김현구의 후손들이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상천리 일원과 타지에서 살고 있다. 김현구는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아침저녁 부모에게 문안을 잊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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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창원 출신의 효자. 김현세의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익성(益聲). 김해김씨(金海金氏) 경파(京派) 70세손이다. 아버지는 김주식(金周植), 형은 김현구(金顯昫), 아우는 김현영(金顯永)이다. 김현세의 후손들이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상천리 일원과 타지에서 살고 있다. 김현세의 효행과 관련된 기록과 구전은 ‘효행이 특이하였다’ 정도이다. 형 김현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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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창원 출신의 효자. 김현영의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진성(振聲), 호는 욱암(勖菴). 김해김씨(金海金氏) 경파(京派) 70세손이다. 아버지는 김주식(金周植), 형은 김현구(金顯昫)·김현세(金顯世)이다. 김현영의 후손들이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상천리 일원과 타지에서 살고 있다. 김현영의 효행과 관련된 기록과 구전은 ‘효행이 특이하였다’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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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창원 출신의 효자. 김효량은 15세 때에 아버지 김득예(金得裔)가 악질에 걸려 낫지 않자, 산 사람의 뼈가 가장 좋다는 말을 듣고 자신의 왼손 무명지를 끊어서 피를 약에 타서 병구완하여 아버지의 병을 낫게 하였다. 효행이 향리에 널리 알려져 세종 때에 조정에서 정려를 내리고 조세와 요역을 면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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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효자 삼형제. 김희광(金喜光)·김희철·김희현 삼형제는 어머니를 봉양함에 삼형제가 함께 맛난 음식으로 봉양하며 지극정성을 다하였다. 어머니가 병이 들자 어머니의 대변을 맛보며 병세를 살폈으며, 서로 번갈아가면서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마시게 하여 병세를 호전시켰다. 어머의 상(喪)을 당하여서는 함께 여묘살이를 하였다. 향도(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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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용강리에 있는 나주임씨 삼대의 효행을 기려 세운 조선 후기 정려비. 나주임씨 삼대효자비와 관련하여 전해 오는 이야기가 있다. 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용강리에 사는 임성립은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는데, 어머니가 병이 나 자리에 눕자 백방으로 특효약을 구하던 중 꿈속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도와주어 병을 낫게 하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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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외감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정자이자 사당. 달천정(達川亭)은 1931년 미수 허목(許穆)[1595~1682]을 추모하기 위해 달천회에서 허목의 유지 근처에 건립한 정자이자 사당이다. 허목은 조선 숙종 때의 문신이자 학자로, 특히 예학(禮學)에 밝았다. 달천회는 허목을 기리기 위해 창원을 중심으로 인근의 유림들이 결성한 모임이며, 현재는 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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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내곡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처사 김석우를 향사하는 재실. 덕양재는 처음부터 김석우의 제향을 위한 문중 재실로 출발하였다. 이는 제향 인물의 유래와도 관계가 있다. 김석우(金碩佑)는 김일손의 후손으로 학문과 행실이 돈독하였는데, 부모를 여읜 후 선세의 무오사화 및 기묘사화 때 김일손과 일가가 입은 참화를 생각하고, 덕계산 속에 은거하여 독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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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화양리에 있는 김귀의 유덕을 기리는 김해김씨 문중 서원. 도남서원은 현대에 세워진 문중 서원으로서, 향사나 강학보다 후손의 돈목을 더 큰 목적으로 삼으면서 그 구심점을 선조에게서 찾았다. 김귀는 단종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있었으나, 당시 세력가인 이극돈의 무고에 의해 어려움을 당하다가 창원으로 낙향한 인물이다. 제사는 후손들에 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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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석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도봉 서원은 건립 이래 줄곧 김명윤(金命胤) 한 사람만 향사하였는데, 숙종 때에 사우로 창건되어 서원으로 승격하였다가 그 후 훼철과 복설 과정을 겪어서, 대부분의 미사액 서원들과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김명윤은 일본 통신사인 김성일의 종사관으로 다녀와서 견문록을 남기기도 하였으며, 임진왜란 때는 파주와 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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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일암리에 있는 초계 변씨 문중이 세운 서당. 도산 서당은 ‘一’자 모양의 목조 건물로 사우 정면에 위치하며, 전면 좌우편에 동재(東齋)인 일신재(日新齋)와 서재(西齋)인 존양재(存養齋)를 두었고 솟을대문, 내삼문, 외삼문을 배치했다. 성구사(誠久祠)의 강당에 해당되는 도산 서당은 충절의 정신을 고취하기 위한 교육장으로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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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전면 고사리에 있는 효열비(孝烈碑). 고사리(姑寺里) 전주 최씨 효열비(全州 崔氏 孝烈碑)는 전주 최씨인 최상호의 지극한 효행을 추모하여 후손들이 1942년에 건립한 비석이다. 비명(碑名)은 ‘효자 전주 최공 휘상호지비(孝子全州崔公諱祥鎬之碑)’이다. 진전면 고사리에 살았던 최상호의 부모님에 대한 효성과 행실을 기리기 위하여 일제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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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고사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의 누정. 청송(靑松) 심씨(沈氏) 죽포공(竹圃公) 심예택(沈禮澤)의 학문과 행적을 추모하기 위해 1935년 후손들의 정성으로 심예택이 거처하던 곳에 건립하였다. 이후 상당히 낡았던 것을 2005년 기와를 새롭게 고치는 등 수리를 하였다. 당시에 입구에 ‘경앙문(敬仰門)’이라는 편액을 건 건물을 새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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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고사리에 있는 효행비(孝行碑). 고사리에 있는 청송 심씨 효행비(靑松沈氏孝行碑)는 청송 심씨 남파공(南巴公) 심상성(沈相城)의 효행을 추모하여 1943년에 향리에서 건립하였다. 진전면 고사리에 살았던 심상성의 부모님에 대한 효성과 행실을 기리기 위하여 일제 강점기에 후손들과 지역민들이 뜻을 모아 효행비(孝行碑)를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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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고사리에 있는 효행각(孝行閣). 고사리(姑寺里)의 효행각은 밀성 박씨인 박준구의 효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1934년에 유림들이 건립한 비석(碑石)과 비각(碑閣)이다. 비명(碑名)은 ‘효자 밀성 박공지비(孝子密城朴公之碑)’이다. 진전면 고사리에 살았던 박준구(朴準龜)의 부모님에 대한 효성과 행실을 기리기 위하여 일제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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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에 있는 정려각.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금암리 745에 위치한다. 마산 금암리 삼선려는 김해 김씨인 김재선의 처 월성 이씨와 아들 화습, 며느리 회산 구씨 등 삼인을 기린 정려로, 1885년에 건립되었다. 정려각의 규모는 정면 1칸, 측면 1칸이고, 지붕은 팔작 지붕이다. ‘삼려각기(三呂閣記)’의 내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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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에 있는 열부각.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금암리 758-4답에 위치한다. 이곳은 금암리 중촌 마을 금암리~고사리 간 도로변이다. 황익권의 처 안동 권씨의 행적을 기려 유림과 향교의 통문으로 1932년에 건립하였다. 지붕의 우측 처마 부분은 하중을 견디게 하기 위해 활주를 설치하였고 외곽에는 돌담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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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금암리에 있는 비석. 금암리에 있는 일열이효비(一烈二孝碑)의 비명(碑名)은 ‘김해 김씨 일열이효 유적비(金海金氏一烈二孝遺蹟碑)’이다. 이 비는 김해 김씨(金海金氏) 김재선(金在善)의 부인 월성 이씨(月城李氏)와 그의 아들 김화습(金華槢), 며느리 회산 구씨(檜山具氏) 등 3인의 효열(孝烈)을 기리는 비석이다. 김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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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다구리 370-2에 있는 정려각. 마산 다구리 효자각은 다구리 마을 입구 도로변에 위치하는데 이 마을에 살던 나주 임씨 윤홍 부부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현판에 ‘효자 조봉대부 나주 임윤홍 창선각(孝子朝奉大夫羅州林潤弘彰善閣)’이라고 적혀 있다. 현판 끝에 ‘공부자 탄강 삼천사백칠월일(孔夫子誕降三千四百七月日)’이라고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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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에 있는 정려각. 경주 김씨 김광희, 김철희, 김현희 3형제의 효행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 대티리 239-2답에 위치하며, 진북면 대티리 중촌 마을과 정현리 대현 마을 간 도로변에 있다. 건물의 규모는 정면 1칸, 측면 1칸이고 지붕은 팔작 지붕이다. 벽은 판벽으로 되어 있으며 서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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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동산리에 있는 초계(草溪) 변씨(卞氏) 재실. 조선 영조(英祖) 연간의 인물인 초계 변씨 증 통훈대부 사복시정(贈通訓大夫司僕寺正) 변진서(卞振瑞)를 추모하기 위하여 1943년 후손 변상태(卞相泰), 변상구(卞相龜) 등이 건립한 재실이다. 입구의 문은 덕을 닦는다는 뜻의 ‘수덕문(修德門)’이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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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에 있는 정려각. 쌍효각은 월성 최씨 신광과 그의 처 청송 심씨의 효행을 기리는 정려각으로, 구산면 반동리 반동 마을 중앙에 위치한다. 부부가 부친상을 당하여 3년을 시묘하는데 호랑이가 와서 여막을 지키고, 시묘하는 곳에서 우연히 샘이 솟아 갈증을 면하게 하였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당시 사람들은 이 샘을 효자샘으로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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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에 있는 정려각. 포열각은 이동신의 처 삭녕 최씨의 열행을 기리는 정려이다. 포열각 내에는 ‘학생 이동신지처 열녀 삭녕 최씨 려(學生李東新之妻烈女朔寧崔氏閭)’를 표한 정려문과 ‘삭녕 최씨 정려 사수기(朔寧崔氏旌閭四修記)’, ‘열녀 최씨 정려 실기(烈女崔氏旌閭實記)’가 있다. ‘처사 공동신처 삭령 최씨 정려기(處士公東新妻朔寧崔氏旌閭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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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봉곡리에 있는 정자. 마산 봉곡리 해사정은 해사(海槎) 이일장(李日章)을 추모하기 위하여 후손들이 건립하였다. 이일장은 본관이 성주(星州)고 자는 회숙(晦叔)이다. 1572년(선조 5)에 태어나 문과에 급제하고 1597년(선조 30) 임진왜란(壬辰倭亂) 때는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휘하에서 공을 세웠던 인물이다. 정자 입구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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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있는 정려각. 조선 시대 진북면 이목리에 살던 효자 이국로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이다. 이국로의 자는 순직이며, 호는 이촌, 본관은 전주이다. 경상도 유림이 그의 효행을 기리니 1893년(고종 30) 나라에서 동몽교관을 내리고 정려를 세워 ‘영언각’이라 했다. 정려에는 ‘증 동몽교관 조봉대부 이국로지려(贈童蒙敎官朝奉大夫李國魯之閭)’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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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사동리에 있는 정려각. 마산 사동리 행원각은 진북면 부산리의 효자 참봉 정필형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선조 때 세운 정려각이다. 정필형은 1510년 진북면 부산리에서 출생하였고, 6세 때 부친을 여의고 모친을 봉양한 것이 40년 동안 한결같았다. 정려에는‘효자 예빈시 참봉 정필형지려(孝子禮賓寺參奉鄭弼衡之閭)’라고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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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삼계리에 있는 재실. 재령(載寧) 이씨(李氏)의 선조인 이원순(李元淳)을 추모하기 위해 일제 강점기에 후손들이 세운 재실이다. 부인인 김해 배씨(裵氏), 장자 이익망(李翼望), 계자 운망(雲望) 등도 함께 언급되고 있다. 이때의 기문인 광음재기(匡陰齋記)는 이훈호(李熏浩)가 지었다. 이후 1954년 훼손된 재실을 다시 짓게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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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에 있는 정려각. 옛날 이 마을에 살던 교하 노씨 문중의 정중, 성중 형제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906년 나라에서 세웠다고 한다. 이들 형제는 일찍이 어려서 모친을 여의자 예를 다해 장례를 치렀고 이후 홀로 남은 부친에게 정성을 다해 봉양하였다. 이후 부친도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나자, 형제는 여막을 짓고 3년 내내 부친의 묘소를 지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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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삼계리에 있는 재실. 삼계리(三溪里) 입향조인 김해(金海) 김씨(金氏) 김귀생(金貴生)을 비롯한 선조들의 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후손들이 건립한 재실이다. 대문의 이름은 ‘삼락문(三樂門)’으로, 부모가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 하늘과 사람에게 부끄러워할 것이 없는 것,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가르치는 것인 군자 삼락(君子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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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상곡리에 있는 정자. 재령(載寧) 이씨(李氏)의 선조인 이원순(李元淳)을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세운 정자다. 정자 입구에는 ‘취성문(聚星門)’이라고 쓴 편액이 걸린 대문이 있으며, 정자인 기소정(企小亭), 뒤편의 재실인 기소재(企小齋)가 있다. 기소정의 편액은 사라졌으나 왼편에 경관을 조망할 수 있는 마루가 있고, 오른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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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상곡리에 있는 정려각. 조선 시대 상곡 마을에 살던 성주 이씨 시록(時錄)의 처 김해 김씨의 열행을 기린 비와 이 비를 보호하는 비각이다. 현재 비는 없어지고 비각만 남아 있다. 김씨 부인은 내서면 호계리에서 태어나 상곡 마을의 이시록에게 시집왔다. 어느 해 남편이 병을 얻어 자리에 눕게 되니, 김씨 부인은 백방으로 약을 구해 정성껏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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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시락리에 있는 안동 권씨 문중의 재실. 안동(安東) 권씨(權氏) 권필래(權弼來)와 권중억(權重億) 등 두 조상을 추모하기 위해 1935년 후손들이 건립했다. 두 사람은 효행과 우애가 뛰어났으며, 학문에도 조예가 깊어 사복시정(司僕寺正)과 참의(參議) 벼슬을 증직받았다고 한다.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시락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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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 합포구 진전면에 있는 비각. 김해 김씨 김시우·김시종·김시균 삼형제의 효행을 기린 비각이다. 비문에 따르면 조선 1891년(고종 28)에 조정의 특명으로 시락리의 김해 김씨 증 조봉대부 동몽교관(贈朝奉大夫童蒙敎官) 김시우, 증 통훈대부 건원릉 참봉(贈通訓大夫建元陵參奉) 김시종, 증 통훈대부 의금부 도사(贈通訓大夫義禁府都事) 김시균에게 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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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시락리에 있는 재실. 광산(光山) 김씨(金氏) 집안에서 조상께 시제(時祭)를 올리기 위해 후손들이 건립한 재실이다. 신라 왕족인 김흥광(金興光)의 28세손인 통훈대부 장악원정(通訓大夫掌樂院正) 김광필(金光必)이 합천 대양 노동에 살다가 1650년경 곡안리(谷安里)로 옮겼다. 이러한 입향조의 얼을 기리기 위해 1914년 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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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 합포구 구산면에 있는 정려각. 열부 영산 신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한 정려각이다. 현판에는 ‘고 열부 영산 신씨지려(故烈婦靈山辛氏之閭)’라고 써져 있다. 상량문에는 단기 4322년 을사 11월 4일 상량했다고 하였는데, 이는 1989년이다.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심리 일대에 위치한다. 이는 구산면 남포리에서 심리로 넘어가는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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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양촌리에 있는 정자 겸 재실. 마산 양촌리 우우정(友于亭)은 초계(草溪) 변씨(卞氏) 근암공(謹菴公) 변상학(卞相學)이 생전에 효행과 우애와 자선을 행하면서 살던 곳이다. 변상학은 그의 형 송강공(松岡公)과 함께 이불을 덮고 자는 등 우애가 대단히 깊었다고 한다. 변상학이 죽은 후 1940년 아들 변순섭(卞純燮)이 부친의 뜻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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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양촌리에 있는 재실. 남평(南平) 문씨(文氏) 봉사(奉事) 문덕립(文德岦), 도정(都正) 문자악(文自岳), 첨사(僉使) 문도신(文道新) 등의 충효와 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후손들이 건립한 재실이다. 여기에 첨사(僉使)와 구례 현감(求禮縣監)을 지낸 문도환(文道桓)도 함께 기리고 있는데, 그를 모시는 재실은 바로 옆에 지은 한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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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에 있는 정려각.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의 휘하에서 싸우다가 당항포에서 전사한 변연수와 그의 아들 변립, 변립의 전사 소식을 듣고 순절한 그의 처인 안동 김씨의 충·효·열을 기리기 위하여 변씨 문중에서 정려를 세웠다. 1893년(고종 30)에 건립되었는데 심석 송병순이 현판 글씨를 쓰고 비문은 가선대부 사헌부 대사헌을 지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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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양촌리에 있는 재실. 초계(草溪) 변씨(卞氏) 변상용(卞相瑢)이 그의 증조 변지영(卞智榮)과 조부 변진(卞鎭)의 효와 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1937년에 건립하였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양촌리 양촌 마을 구릉에 있다. 정면 6칸, 측면 2칸의 팔작 지붕 한옥이다. 건물의 외곽은 돌담으로 둘렀다. 건물은 많이 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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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여양리에 있는 효행비(孝行碑). 여양리에 있는 밀성 박씨 효행비(密城朴氏孝行碑)는 박정화(朴正和)의 극진한 효행을 추모하여 종손(宗孫) 박용만(朴鏞萬)이 1929년에 건립하였다. 비명(碑名)은 ‘통정대부 밀성박공 효행 기적비(通政大夫密城朴公孝行紀蹟碑)’이다. 진전면 여양리에 살았던 박정화의 부모님에 대한 효성과 행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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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전면 여양리에 있는 효행비. 마산 여양리 서석년 효행비는 항재(航齋) 서석년(徐錫年)의 효행을 추모하여 1944년에 후손들이 건립한 비석이다. 비명(碑名)은 ‘통사랑 임통신원주사 서석년 효행비(通仕郞任通信院主事徐錫年孝行碑)’이다. 조선 시대 진전면 여양리에 살았던 서석년의 효성과 행실을 기리기 위하여 일제 강점기 말에 달성 서씨 후손들이 뜻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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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전면 여양리에 있는 비각(碑閣). 여양리 쌍효각(雙孝閣)은 호조판서(戶曹判書) 밀릉군(密陵君) 효항(孝恒)의 7세손 박의진과 그의 처 함안 조씨 부부의 효행을 기리는 비각이다. 박의진은 이를 갈 나이쯤에서부터 지극한 효성을 다하였으며, 장성하여서는 ‘노래자(老萊子)’가 부모를 섬기는 듯 하였다고 한다. 또한 부인 역시 시부모를 잘 섬겼으며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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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전면 여양리에 있는 재실(齋室). 여양리 여양재(艅陽齋)는 동몽교관(童蒙敎官) 밀양(密陽) 박씨(朴氏) 신형(新亨)을 기리기 위해 1867년(고종 4)에 후손들이 공의 무덤 옆 옥계천(玉溪川) 양지 바른 곳에 건립하였다. 제문은 5세손인 박유진(朴維鎭)이 지었다. 창원시 진전면 여양리 129로, 여양리 옥방마을회관 뒤쪽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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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전면 여양리에 있는 열부각(烈婦閣). 여양리 열부각은 시부모에 대한 효행이 뛰어났던 밀양 손씨(密陽孫氏)의 행적을 기리는 비각이다. 1924년 마을에서 비석을 세우고 1928년 문중에서 비각을 세웠으나 현재는 관리부실로 인해 비각의 지붕 및 출입문 등이 전체적으로 많이 훼손되었다. 비각의 규모는 단칸이고 지붕은 팔작 지붕이다. 비각 주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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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전면 여양리에 있는 비각(碑閣). 창효각(彰孝閣)은 인근에 있는 쌍효각(雙孝閣)의 주인공인 밀양 박씨(密陽朴氏) 만포공(晩圃公) 의진(毅鎭)의 셋째아들 준규(準奎)의 효행을 기리는 비각이다. 박준규는 아버지 만포공에 이어 대대로 효를 행함이 특이하여 각 지방 삼천여 유생들과 유인 향약 본소(儒人鄕約本所)에서 이를 표창하자는 공론이 있었다. 이에 18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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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여양리에 있는 효열각(孝烈閣). 여양리 효열각은 밀양 박씨 집안의 네 여인의 지극한 효행과 정렬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일찍부터 그들의 효성과 정렬이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었고, 이에 1931년 비서승(秘書丞) 박문화(朴文和)가 주관하여 비각을 건립하였다. 김해 김씨(金海金氏), 청송 심씨(靑松沈氏)는 효부(孝婦)로 이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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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여양리에 있는 효열비(孝烈碑). 여양리 효열비는 옥방 마을에 살던 밀양 박씨 박준인(朴準仁) 처 효열 부인(孝烈夫人) 은진 임씨(恩津林氏)의 높은 부덕과 남다른 효열을 기리기 위해 1861년에 세운 것이다. 은진 임씨 부인의 효열을 기리기 위해 조정에 정려(旌閭)를 내려 줄 것을 지역 유림들이 계문(啓聞)하였으나 여의치 않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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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예곡동에 있는 비각(碑閣). 예곡동 효자각(孝子閣)은 조선 후기 이 마을에 살았던 김승락이 집에 화재가 발생하였을 때 시신을 안치한 관을 보호하고 죽었는데 이러한 그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비각이다. 1754년(영조 30) 12월 그믐날, 저녁제를 지낼 무렵 갑자기 집에 불이 났다. 불은 곧 바로 빈막(殯幕)으로 옮겨 붙어 빈막에 모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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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오서리에 있는 재실. 조선 중기 효종(孝宗) 대의 인물 권시망(權時望)과 그의 아우 권시일(權時一)의 학문과 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1864년에 안동(安東) 권씨(權氏) 후손들이 건립하였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오서리 월안 마을에 있다. 1864년 안동 권씨 후손들이 선조를 우러르기도 하고 잠도 잘 수 있는 건물을 세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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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에 있는 안동 권씨 집안의 정려각. 마산 오서리 사정려각은 조선 인조 시기의 월암 권용현, 영조 시기의 모헌 권정래, 숙종 시기의 농계 권중엄 및 권석의 처 밀양 박씨 등 4효열을 기리는 정려이다. 3인은 그들의 특이한 행적으로 정려되었고, 권석의 처 밀양 박씨는 시집온 지 3년 만에 남편이 병을 얻어 세상을 뜨자 같은 날에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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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오서리에 있는 종실 건물. 밀성(密城) 박씨(朴氏) 신암(新菴) 박연홍(朴連弘)을 위한 종실로 지어진 건물이다. 박연홍은 임진 왜란 때 최강(崔堈), 이달(李達) 등과 의병으로 참여하였다. 사천(泗川) 창속(倉粟)의 전투에서는 적장의 목을 베고 돌을 던져 많은 사상자를 내었다. 오늘날에도 남진(藍津)에는 간석 기념비(干石紀念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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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우산동에 있는 비각. 마산 우산동 창렬각은 순흥 안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 비각 안에는 ‘열녀 순흥 안연지비(烈女順興安燕之碑)’가 모셔져 있다. 순흥 안씨는 조선 말 옥동리 신정 마을에 살던 가난한 소금 장수의 부인이었다. 어느 날 남편이 뒷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사라지고 돌아오지 않았다. 옆집에 사는 홀아비가 평소 본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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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 인곡리에 있는 정자. 조선 중기 성균관 진사(成均館進士)를 지낸 요산(樂山) 장탁(張鐸) 선생을 추모하기 위하여 인동(仁同) 장씨(張氏) 후손들이 증축하고 개축하였다. 장탁은 조선 현종대 조정 내부의 당파 싸움과 조정 내의 부정을 피해 이곳으로 내려와 터를 잡고 요산재(樂山齋)라는 집을 지어 학문과 시를 벗하며 지냈던 곳에 재실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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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일암리에 있는 재실. 김해(金海) 허씨(許氏) 집안에서 시사(時祀)를 올리는 재실로 후손들에 의해 1944년에 건립되었다.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일암리 대방 마을에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 지붕 한옥이다. 동네 민방위 소집장으로도 활용되는 등 현재도 활용이 가능하도록 보존되어 있다. 조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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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일암리에 있는 초계 변씨 문중의 사당. 여말 선초 조선의 개창을 반대한 두문동(杜門洞) 72현 중의 한 사람인 변빈(卞贇)과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이끌고 이순신 휘하에서 많은 공을 세우고 장렬히 전사한 변연수(卞延壽), 그의 아들 변립(卞岦)을 향사하는 초계(草溪) 변씨(卞氏) 집안의 사우(祠宇)다. 1919년 4월 3일 진동·진전 일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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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임곡리에 있는 정자. 회산(檜山) 황씨(黃氏) 남와공(南窩公) 황세철(黃世喆)의 충(忠)과 부인의 열(烈)을 기리기 위해 종중에서 대종회(大宗會)를 열고 뜻을 모아 1937년에 건립하였다. 황세철은 관직이 어모장군(禦侮將軍)에 이르렀는데, 임진왜란에 군량관(軍糧官)으로 활동하다 진양(晉陽)에서 순절하였다. 창원시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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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에 있는 비각. 정현리 표효각은 진북면 정현리 대현 마을 입구의 도로변에 있다. 진동에서 함안으로 넘어가는 대티 고개를 향하는 길가이다. 표효각 안에는 조선 영조 시기의 인물인 김해 김씨 김득명, 김득추, 김득해 3형제의 효행을 기리는 비석이 모셔져 있다.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 정현리 542-2에 위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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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내서읍 중리에 있는 효열비(孝烈碑). 중리 효열비는 조선 후기 이 마을에 살던 칠원 제씨(漆原諸氏) 부인의 효열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부인은 고성군 대가면 제동환의 딸이다. 18세 때 이 마을 밀성 박씨(密城朴氏) 박영의와 혼인하여 슬하에 2남 1녀의 자녀를 낳고 살았다. 부인은 평소 시부모에 대한 효성이 극진하였음으로 문중과 고을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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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 지산리에 있는 비석(碑石). 지산리 열행 표창비(烈行表彰碑)는 이 마을에 살던 문광호(文光灝)의 부인 상산 김씨(象山金氏) 부인의 열행을 추모하여 1925년에 건립하였다. 김씨 부인은 병 중의 남편을 위해 밤마다 자기 몸을 대신할 것을 기도하였고,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남편의 병을 완치시켰다고 한다. 진북면 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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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태봉리에 있는 정려각. 마산 태봉리 행원각은 조선 말기 전주 이씨 이인철의 효행을 기리는 정려이다. 이인철은 아버지가 죽은 뒤 유복자로 출생하여 편모의 슬하에서 자랐다. 그 어머니를 모시는 효행이 특출하여 1905년에 정려가 내려졌고, 나라에서 가선대부 호조참판겸 의금부 도총관(嘉善大夫戶曹參判義禁府都摠管)을 증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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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합성동에 있는 재실. 순흥(順興) 안씨(安氏) 문중에서 조상을 받들고 일족의 화목을 도모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영조 대에 21세손인 안무(安懋)가 창건하였으나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훼손되자 1990년 가문에서 모임을 열어 중건하였다. 입구에는 영모재의 안내문이 있어 내용을 자세히 알 수 있도록 하였다. 조상을 추모한다는 뜻의 ‘추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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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에 위치한 마산 향교 내 성현들의 신위를 모신 제향 공간. 마산 향교(馬山鄕校)는 원래는 진해현의 향교인 진해 향교였으나, 진동면이 마산시에 행정 구역이 편입되면서 마산 향교로 개칭되었다. 마산 향교는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교동1길 86 교동 마을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1414년(태종 14)에 진해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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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명서동에 있는 조선시대 김해김씨 부자(父子)의 효성을 기려 세운 정려비. 조선 순조 때 경상남도 창원시 지귀동 사람인 김우진(金禹振)[1795~1835]은 어렸을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자 생전에 잘 모시지 못하였음을 자책하며 평생 고기를 먹지 않았다고 하는데, 집에서 기르던 개도 주인의 행실을 본받을 정도였다고 한다. 또한 삼 년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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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내곡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밀양박씨 재실. 모본재는 약 400년 전 입향조인 돈수(遯叟) 박세충(朴世忠)이 송촌마을에 입주한 이래 밀양박씨가 집성촌을 이루어 생활해 오면서, 종족간의 학문과 예절을 가르치고 배우는 기능을 하였던 곳이다. 재실의 뒤뜰에는 1978년에 밀성박씨 박맹번(朴孟蕃), 박계은(朴繼誾), 박무성(朴戊成), 박승휴(朴承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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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동전리에 있는 영산신씨 상장군파(上將軍派) 문중 재실. 모선재는 동전리의 입향조를 배향하는 문중 재실이다. 현 동전리에 거주 영산신씨(靈山辛氏)의 항렬에 따라 9~8대, 또는 12~11대의 조를 매년 10월에 제향한다. 창원시 북면의 국도 79호선 굴현에서 5㎞ 정도 가다 서쪽으로 분기하여 400m 지점에 동전리가 있는데,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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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지개리 신기마을에 있는 압해정씨의 문중 재실. 모원재는 압해정씨(押海丁氏)의 시조 대양군(大陽君) 정덕성(丁德盛)의 6세손인 신라 문하시중 휘 광현공(光顯公)과 부인 진주강씨(晉州姜氏), 아들인 고려조 이부전서(吏部典書) 휘 우공(祐公)과 부인 거창유씨(居昌劉氏)를 제향하는 곳이다. 제향조의 묘소는 천주산 자락 경태룡(庚兌龍) 곤좌(坤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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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화천리 대천마을에 있는 창녕조씨 승지공파(承旨公派) 문중 재실. 모원재는 본관이 창녕(昌寧)인 조하빈(曺夏彬)을 배향하는 추모당이다. 조하빈(曺夏彬)은 정우당(淨友堂) 조치우(曺致虞)의 9세손으로, 묘소는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지개리에 있다. 북면의 지방도 1045호선 굴현에서 약 4㎞ 지점 도로변 북쪽에 대천마을이 있으며,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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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월백리 월산마을에 있는 순창설씨 참의공파(參議公派) 문중 재실. 모육재는 본관이 순창(淳昌)인 설마려(薛磨礪)를 배향하는 추모당이다. 설마려의 자는 방언(邦彦), 호는 모육재(慕育齋)이고, 연일현감을 지냈다. 설마려가 월백리에 입향한 이후 현재 그의 12대 이후 후손들이 문중을 이루고 있다. 창원시 북면의 국도 79호선 굴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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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무곡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밀양손씨 문중 재실. 무산재는 선조를 향사하고 후손들이 강학의 장소로 삼은 사립 교육기관이다. 기문에 의하면 손기복(孫基馥)이 6대조인 참봉 손계남(孫桂南)을 위하여 지었다고 한다. 또한 밀양손씨의 역대 선조들을 열거할 때 특정인만 언급한 게 아니어서 집안의 선대를 위한 재실임을 알 수 있다. 역대 조상을 대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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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창원 출신의 효부이자 열녀. 박경천 처 분성 배씨는 곧고 맑은 품성으로 시어머니를 정성껏 봉양하였다. 남편 박경천이 해괴한 병에 걸려 앓게 되자 박경천 처 분성 배씨는 자신이 그 병을 앓게 해 달라고 빌었으나, 남편은 효력도 없이 죽고 말았다. 그러자 배씨는 그날 밤 남편 박경천의 시신을 안고 따라 죽었다. 박경천 처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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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효부. 김녕 김씨(金寧金氏)는 밀양 박씨인 박기우(朴基宇)와 혼인하였다. 박기우 처 김녕 김씨(金寧金氏)[?~?]는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를 모심에 몸과 마음을 다하였다. 시아버지께서 병으로 자리에 누워 위독하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여 병을 낫게 하려 하였다. 고을의 선비들이 그의 효행에 감동하여 포상을 하였다.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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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창원 출신의 효부이자 열녀. 박문중 처 김씨는 창원 지역 사람이다. 시부모를 극진히 모시어 효부로 칭송이 자자했는데, 남편 박문중이 병에 걸려 죽자 3일 만에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다. 박문중 처 김씨의 열행이 조정에 알려져 정려가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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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효자. 박상구(朴祥龜)[?~?]는 밀양 박씨로 천성이 효성스러웠다. 부친의 병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여 소생시켰다.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피눈물을 흘리며 삼년상을 치렀다. 어머니의 병에 하늘에 기도하니 새가 날아와 환약을 뱉어 그 약으로 소생시켰다. 문장과 학행이 뛰어났다. 당시 진해에 유배와 있던 김려(金鑢)가 그의 문행(文行)을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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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효자. 박서구(朴瑞龜)의 호는 구암(龜菴)으로 천성이 효성스러웠다. 아버지가 병으로 위독하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흘려 넣어 소생시켰다. 또한 변을 맛보아 병의 차도를 살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3년이 지난 뒤 다시 어머니가 병져 누우니 하늘에 제를 드리고 칠성에 빌어 낫기를 청하였다. 어느날 문득 한 마리의 새가 날아와 입에 환약을 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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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창원 출신의 효자. 박시명은 1400년대 후반 창원도호부 사화(沙火)[현 경상남도 창원시 사화동]에 살았는데, 당시 참봉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타고난 성품이 순후하여 어릴 때부터 부모의 마음을 받들어 효를 다하였다. 27세에 무과에 응시하여 출사하려 하였으나, 때마침 어머니가 병을 얻어 출사의 뜻을 접고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어머니가 93세에 죽자 매우 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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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열녀. 황석순(黃錫順)의 딸로 밀양 박씨 박영현(朴榮鉉)과 혼인하였다. 박영현 처 창원 황씨(昌原黃氏)[?~?]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이 병으로 죽자 한모금의 물도 입에 넣지 않고 죽기를 각오하였다. 그러나 시부모님이 노쇠하여 의탁할 곳이 없음을 생각하여 죽기를 그만두고 시부모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효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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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창원 출신의 효부이자 열녀. 박익천 처 배씨는 지금의 경상남도 창원시 안민동 출신이다. 시부모를 극진히 모시어 효부라고 칭송이 자자했는데, 남편 박익천이 죽자 목을 매어 죽음으로써 절개를 지켰다고 한다. 박익천 처 배씨의 열행이 조정에 알려져 정려가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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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창원 출신의 효자. 박정견은 조선 성종·연산군조에 창원도호부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연산군 때 상기(喪期)을 짧게 제한하는 법이 엄하였음에도 연이은 부모상에 3년간 최복(衰服)을 입어 애도했으며, 상을 마친 후에도 초하루와 보름에 전(奠)을 올리는 예를 그만두지 않았다 한다. 1510년(중종 5) 경상도관찰사 강혼(姜渾)의 장계에 의해 정려가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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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효자. 박종징(朴宗徵)[?~?]의 본관은 밀양이고 효행은 하늘에서 타고난 것이었다. 아버지가 병이 들어 혼미하자 대신하기를 하늘에 청하였다. 그 고을에 한 노인이 와서 이 병에 살아있는 해삼이 좋은 약제가 된다고 하자 바닷가에 가서 울면서 호소하니 문득 백 여 마리의 해삼이 스스로 모래밭으로 올라와 잡혔다. 날이 이미 어두워졌는데 큰 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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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열녀. 정씨(丁氏)[?~?]는 박춘경(朴春慶)과 혼인하였다. 시집간 지 오래지 않아 남편이 중한 병이 들어 여러 해 동안 매우 앓았다. 이에 정성을 다하여 온갖 치료 방법을 구하였으나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어느날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사람의 살이 효험이 있다고 하였다. 놀라서 일어나 허벅지 살을 베어 먹이니 집안사람들도 알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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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열녀. 정씨(鄭氏)는 박형직(朴衡直)와 혼인하였다. 남편이 병으로 앓아 누우니 온갖 정성을 다하여 남편의 병수발을 하였고 하늘에 병이 낫기를 기도함이 간절하였다. 남편이 병들어 죽어 상을 치르게 되자 약을 먹고 남편을 따라 순절하였다. 1829년(순조 29) 나라에서 정려를 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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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열녀. 이씨(李氏)는 의생(醫生) 배낙용(裵洛鎔)과 혼인하였다. 정숙하고 부덕(婦德)이 있었다. 남편이 요절하자 후사가 없음을 생각하여 순절하지 않고 몸소 삯바느질을 하며 방아를 찧어 제사를 정성으로 모셨다. 삼년의 대상(大祥)이 끝나자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 순절하였다. 고을의 선비들이 여러번 장계를 올려 포상을 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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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열녀 주씨(周氏)는 상주 주씨로 배문선(裵文善)과 혼인하였다. 남편의 상을 당하자 예를 다하여 장례를 치렀다. 시아버지가 천수를 누리고 돌아가시는 날까지 지극 정성으로 봉양하였고 종질을 양자로 삼아 후사를 잇고 남편의 기일이 되어 제사를 모신 후 차마 혼자 삶을 부끄럽게 여겨 자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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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열녀 남평문씨(南平文氏)는 분성 배씨 배병준(裵炳俊)과 혼인하였다. 남편이 역병을 만나 병들어 눕자 온갖 정성을 다하여 약을 구하여 병 구완을 하였다. 남편이 죽어 상을 당함에 시신을 끌어안고 통곡하다 자진하여 순절하였다. 온 고을의 사람들이 놀라고 감탄하여 칭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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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효자. 백우진(白瑀鎭)은 호는 야은, 본관이 수원으로 부친이 병들어 잉어와 꿩을 먹고 싶어 하니 강가에 나아가 울면서 기도하니 잉어가 얼음 위로 뛰어 올랐고 꿩이 날아와 잡히는 이적이 일어났다. 밤을 새워가며 약을 구할 때면 항상 호랑이가 따라 다니며 호위하였고 개를 물어다 주는 이적도 일어났다. 나라에서 그 효성에 감동하여 정려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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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열녀 전주 이씨(全州李氏)는 이치재(李致宰)의 딸로, 수원 백씨 백재수(白載洙)와 혼인하였다. 백재수 처 전주 이씨는 남편과 어린 딸이 기이한 병으로 기맥이 막혀 혼절하니 다리 살을 베어 피를 내어 그것을 술에 섞어 먹여서 소생시켰다. 나라에서 정려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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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내곡리에 있는 김해김씨 재실. 벽계정은 성재(省齋) 김학두(金鶴斗)를 향사하고 후손들을 강학하는 사립 교육기관이다. 문중 재실로서 김해김씨 집성 마을에 위치해 있으며, 담을 사이로 원모재·상현사 등 문중의 또 다른 재실과 한 영역을 이룬다. 김학두는 고향에서 학문에 전념하고 문집을 남긴 선비였는데, 그의 사후 둘째 아들인 김용도(金容道)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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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열녀. 안동 김씨(安東金氏)는 변립(卞岦)과 혼인하였다. 변립 처 안동 김씨(安東金氏)[?~?]는 남편 변립이 시아버지 변연수(卞延壽)가 의병을 일으켜 충무공 이순신의 휘하에 들어가자 같이 참석하였다. 전장에서 여러 번 공을 세웠다. 정유년에 당항포 싸움에서 부자가 모두 죽으니 그 말을 듣고 안동 김씨가 그날로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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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조상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신성 공간. 사당(祠堂)이란 조상의 신주(神主)를 모셔놓은 장소이며 그곳에서 조상의 제사를 지낸다. 대개 일반 가정에 있는 사당은 가묘(家廟)라고 하며 왕실의 것은 종묘(宗廟) 혹은 예묘(禮廟)라고 한다. 조상을 신으로 모시고 제사 지내는 것은 조상신을 숭배하는 많은 국가들이나 고대 부족들의 예를 보아 고대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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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사화동에 있는, 박신윤을 제향하기 위해 조정에서 내린 사우. 『우곡 선생 문집』의 「우곡 선생 연보」에 “고을의 사림들이 선생의 효성과 덕행, 학행을 들어 조정에 청하였다. 조정에서는 이에 호조 좌랑을 내리고 운암 서원에서 향사를 받도록 하였다[二十八年壬午鄕邦士林以先生孝行德學請于朝贈戶曹佐郞享于雲巖書院]”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박치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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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하천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김녕김씨 문중 재실. 삼사재는 김형대(金炯大)의 공적을 기리고 문중의 향사와 후손들의 돈목을 위해 건립한 건물이다. 김형대는 구한말에서 근대까지 생존한 인물로서, 관직 생활도 하였지만 그보다 효행과 돈목으로 집안과 지역민에게 많은 공을 끼쳤다. 재실에서 1㎞쯤 떨어진 도로변에 지역민들이 세운 영세불망비가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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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내리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감경인과 감경륜의 사우. 삼열사는 임진왜란 당시 활약한 공으로 선무원종공신에 오른 감경인(甘景仁)과 그의 동생 감경륜(甘景倫)을 향사하기 위해 창원시 내리동에 세운 사우(祠宇)이다. 감경인은 죽은 뒤 충훈부로부터 삼열(三烈)이라는 사호(祠號)를 받았다. 1871년(고종 8) 서원철폐령으로 창원향교(昌原鄕校) 서편에 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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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오서리에 있는 정사. 서계 정사는 조선 후기 영조 시기의 권득래를 추모하여 1934년에 후손들이 건립한 정사이다.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탑동길 236-79[오서리 1393]에 위치한다. 서계 정사는 목조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이다.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서계 정사는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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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효자. 서신재는 달성 서씨이며, 부모를 봉양함에 뜻에 어긋남이 없었고 예를 다하였다. 부친의 병들자 하늘에 기도하여 낫기를 빌었고 변을 맛보아 병의 차도를 살폈다. 여러번 돌아가실 뻔할 때마다 정성을 다하여 소생시켰다. 상을 당함에 날마다 묘소에 나아가 성묘를 하였다. 묘 아래에는 큰 냇물이 있었는데 하루는 큰 비가 내려 물이 불어나 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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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유학 교육과 선현 제향을 위하여 설립된 사설 교육 기관. 서원은 조선 시대에 발달한 사립 고등 교육 기관이다. 창원 지역은 15세기 초에 이미 도호부로 편제되어 중부 경남의 행정과 학문 거점 기능을 하였다. 지역 특성상 임진왜란 때 의병 활동을 한 유학자와, 조선 후기 정계 진출로가 막힌 향촌 사림 학자들의 덕행을 기리는 서원이 많다. 창원 지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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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진해 출신의 효자. 서지순(徐志淳)[1734~1801]은 23세 때 웅산에서 내려온 한 마리의 범이 군졸과 읍민에게 쫓겨 지금의 웅천 1동인 망덕리(望德里)로 와서 뜻밖에 그의 부친을 물고 말았다. 이를 본 서지순은 낫으로 범을 찔러 죽였다. 그러나 부친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으며 죽은 범의 암컷이 마을에 내려와서 사람들을 위협하였다. 이에 서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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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봉곡리에 있는 여양진씨의 문중 재실. 성경재는 여양진씨(驪陽陳氏) 종인들이 모이고 후손들에게 강학을 하는 사립 교육 기관이다. 원래 문중에 진양강씨 열행비와 연일정씨 효행비가 있었는데, 비각이 퇴락하자 다시 지었다. 동시에 중조(中祖)인 진사 진충건(陳忠健)의 제각(祭閣)을 건립하여 오늘에 이른다. 주남저수지와 맞붙은 동판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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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화양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선비 김상정의 사당. 창원시 동읍의 읍사무소에서 지방도 30호선을 따라 북쪽으로 약 2㎞ 정도 가면 왼쪽 편에 화양리 비석군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곡천(谷川) 김상정(金尙鼎)[1668~1729]의 고향인 창원시 동읍 화양리 곡목마을 입구이다. 곡목마을 입구에서 약 200m 정도 들어가면 마을회관이 있고, 마을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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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사파동에 있는 조선 후기 김기호가 지었던 서당. 소산(小山) 김기호(金琦浩)[1822~1902]는 창원의 남쪽 사파정마을 김녕김씨 가문에서 태어났다. 37세에 동향 문우들과 요천시계(樂川詩契)를 맺어 요천시사(樂川詩社)를 지도하고, 39세에 소산제(小山薺)를 지어 고장 선비들을 길러낸 유서 깊은 소산서당을 창시하였다. 44세에 김해부사(金海府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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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창원 지역의 효부이자 열녀. 손씨 처 이씨의 이야기는 김종하의 『창원군지』에 처음 등장한다. 따라서 자세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1899년(고종 36) 『창원읍지』 편찬 이후의 일이라 여겨진다. 손씨 처 이씨는 열일곱 살에 웅남면 정리[현 경상남도 창원시 웅남동] 손씨 집에 시집을 갔으나 불행하게도 남편이 일찍 죽었다. 이에 손씨 처 이씨는 정절을 지키고 시부모를 잘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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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창원 출신의 효자. 안세인은 1700년대 현 경상남도 마산시 내서읍 안성리에서 살았다. 효행이 돈독하여 아버지가 죽은 후 애도하고 사모하는 마음을 헤아릴 길이 없어 하늘에다 부르짖어 애통함을 달랬다. 그 연유로 향리 사람들이 호천재(呼天齋)라고 불렀다 한다. 경상도에서 조세와 요역을 면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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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진해 지역의 효자. 어경덕(魚敬德)[?~?]은 조선 시대 진해 지역에 살았던 효자로 어려서는 물론이고 어른이 되어서도 부모를 섬기는 효성이 지극하였다. 어느 날 아버지가 전선대장(戰船代將)으로서 전선을 타고 군사 훈련에 참가했다가 뜻밖에 실화(失火)로 익사하였다. 그도 따라 죽으려고 몸을 바다에 던졌으나 문중 사람에게 발견되어 구출되었다. 어경덕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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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중리에 있는 서당. 여산 서당은 원래 조선 선조, 인조 시기 원종공신(原從功臣)으로 책봉된 무숙공(武肅公) 박진영(朴震英)을 향사하기 위해 밀성 박씨 후손들이 설립한 사당이었다. 이곳이 언제 서당으로 변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박진영의 자는 실재(實哉), 호는 광서(匡西)이다. 그는 1569년 함안군 하리에서 증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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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팔룡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성주이씨 재실. 연산재는 옛 창원시 반계동[현 팔룡동] 지역에 있는 평산마을에 집성을 이루고 살던 성주이씨(星州李氏)의 재실로서, 소산처사(小山處士) 이만득(李萬得)을 기리기 위하여 1938년에 세운 것이다. 성주이씨의 재실은 북면 남백 지역의 월산재 등 여러 곳에 있으나 거의 낡았으며, 연산재는 최근에 지어 그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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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남편에 대한 정절을 지켜 포상된 여자. 대부분의 열녀들은 남편에 대한 정절을 지키기 위하여 남편이 죽으면 수절하거나 남편을 따라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러한 열녀들의 행적은 멀리는 순장 제도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겠으나, 그보다는 여성을 독립적인 인격체로 인식하지 않고 남성의 예속물이나 종속물로 인식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즉 유교적 국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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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효자. 본관은 파주. 효자로 호조 좌랑에 증직된 염범(廉范)의 아들이다. 염상유(廉尙儒)는 부모를 모심에 뜻에 어긋남이 없었고 예법에 맞게 하였다. 상을 당할 때에도 그러하였고 제사를 모실 때에도 역시 예법에 맞게 하였다. 대대로 효성을 이어갔다. 나이 팔십에 별세하니 고을의 많은 선비들이 향교에 글을 올렸다. 그 글에 “우리 고을에 자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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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내곡리 도태마을에 있는 창원구씨 문중 재실. 영모재는 전라병마사를 지낸 구복한(具復漢)을 향사하고 후손들에게 강학을 한 교육기관이다. 문중 재실로서 규모는 작은 편으로, 구복한 묘에서 30m 떨어진 남서쪽 언덕 위에 세웠다. 창원구씨(昌原具氏)의 조상은 원래 구씨(仇氏)로서, 창원의 옛 지명인 구사군(仇史郡)과 관계가 있다. 구복한은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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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효자 오국명은 본관은 해주(海州). 전서(典書) 오광연(吳光延)의 후손이며. 호는 농은(農隱)이다. 오국명(吳國命)[?~?]은 성품이 어질고 효심이 깊어 부모를 모심에 맛난 음식으로 봉양하였다. 부모의 상(喪)을 당하여서 여묘살이를 하였는데 호랑이가 와서 그를 보호해 주었다. 마을 사람들이 그의 효심을 칭찬하고 권장하여 상을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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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창원 출신의 효자. 오이원의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감발(甘發), 호는 이수(以秀). 충정공(忠貞公) 오윤겸(吳允謙)의 8세손이자 병조판서 서파공(西波公) 오도일(吳道一)의 5세손이다. 아버지는 오태성(吳泰聖)이다. 현재 후손들이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용강리 일원에 살고 있다. 오이원은 7세 때에 모상(母喪)을 당하였다. 이 후 어머니에 대한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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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창원 출신의 효자. 옥석견의 본관은 의령(宜寧). 의령옥씨(宜寧玉氏)의 14세손이며 감사공파(監司公派)이다. 아버지는 옥수(玉壽)이다. 후손들이 경상남도 창원 지역 일원과 타지에서 살고 있다. 옥석견은 창원도호부 불천(佛川)[현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용잠리 인근]에 살았다. 어릴 때 아버지가 죽어 가난하였으나 별미가 생기면 가슴에 품고 와서 어머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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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월촌리에 있는 성산이씨 한은공파(閒隱公派) 문중 재실. 요월정은 월촌리에 세거하는 성산이씨 한은공파 소문중에서 제향을 하는 재실이다. 북면의 국도 79호선 굴현에서 5㎞ 정도에서 분기되어 동읍 화양리 방면 도로를 따라 1㎞ 정도 가면 백월산 남서쪽에 월촌리에 있다. 요월정은 마을 중앙에 위치하며 월산재 보다 약 20m 아래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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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화양리에 있는 김병린이 건립한 서당. 눌재(訥齋) 김병린(金柄璘)은 1891년 창원시 동읍 화양리 곡목마을에서 염산(廉山) 김찬원(金璨元)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만구(晩求) 이종기(李種杞)의 문인이 되었다. 용계서당은 조선 말기 영남을 대표하는 선비로 학문과 문장으로 이름이 높았던 김병린이 만년인 1935년 강학과 수양을 목적으로 건립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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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고암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성주이씨 문열공파(文烈公派) 문중 재실. 용산재는 본관이 성주(星州)인 이영분(李永賁)을 배향하는 문중 추모당이다. 이영분의 자는 자려(子荔)이다. 1467년(세조 13) 북청판관이 되었고, 이어 함경도 수령을 거쳐 1479년(성종 10) 부호군에 이어 제포첨절제사가 되었으며, 1488년(성종 19년) 창원부사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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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사화동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운암서원은 사우인 운암사(雲巖祠)가 서원으로 승격되는 일반적인 건립 과정을 거쳐 세워진 서원이다. 고려 후기 문신으로 팔은(八隱) 중 한 사람인 박익(朴翊), 그 아들인 박소(朴昭), 임진왜란 때 창의한 공신 박홍정(朴弘貞), 효자인 박신윤(朴身潤)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으며, 매년 4월 25일 제향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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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내곡리 중리마을에 있는 김해김씨 재실. 원모재는 선현을 향사하고 후손들을 가르치는 사립 교육기관으로, 사당인 상현사(尙賢祠)에 김해김씨 입향 선조인 김억남(金億南)과 그 5세손인 김현이(金顯以) 처사를 제향한다. 기문에 의하면 김억남은 기묘사화 후에 가솔을 거느리고 이곳에 와서 은거하였으며, 그 후로 일문이 여기에 정착하여 살았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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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 이목리에 있는 재실. 원천 서당에 향사되는 이세갑(李世甲) 장군은 1731년 진북면 이목리에서 태어났다. 자는 여관(汝寬), 호는 척산(尺山)이며 전주 이씨 효령 대군의 후손이다. 원천 서당이 위치한 곳은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 학동로 245[이목리 191-2]로 이목리 배목 마을 회관 위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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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월촌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성산이씨 한은공파(閒隱公派) 문중 재실. 자는 운서(雲瑞), 호는 정곡(定谷)인 성산이씨(星山李氏) 창원 입향조인 이응룡(李應龍)과 그의 아들 및 손을 추모하는 제당이다. 이응룡의 묘소는 남백마을 백월산 자락에 있다. 이 후 선조의 묘사도 이곳에서 함께 지낸다. 북면의 국도 79호선 굴현에서 5㎞ 정도에서 분기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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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창원 출신의 효자. 유광익(柳光益)의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국서(國瑞). 문화유씨 시조 유차달(柳車達)의 29세손으로 좌상공파(左相公波)이다. 아버지는 유정문(柳正文)이며, 어머니는 해주오씨(海州吳氏)이다. 유광익은 농부에 불과했지만 효행이 극진하여 친상 중에 죽으로 연명하면서 여막살이를 하였다. 묘소는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가월리 화산(花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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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전개된 공자의 사상을 중심으로 한 학문 또는 종교. 유교는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철학, 사상, 윤리로서 정치, 문화, 교육 등 개인적·사회적 활동의 원리로 존재해 왔다. 유교는 한국 역사상 삼국 시대 전기에 도입된 이래 학교 교육과 사회 제도를 통해 발전하면서 개인과 가족의 윤리에서부터 국가의 정치사상에 이르기까지 사람의 삶 전체를 유지하는 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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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효자. 유기원(柳基元)은 유상모(柳相模)의 아들로 호는 모헌(慕軒)이다. 아버지가 병이 깊자 잉어를 구하여 봉양하려 하였다. 밤에 깊은 계곡을 건너는데 호랑이가 나타나 길을 인도하여 주었다. 마침내 잉어를 구하여 봉양하니 효험이 있었다. 마을에서 칭찬하여 상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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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에 있는 성균관 유도회 산하 마산 지역 지부. 해방과 더불어 유교는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급속한 시대변천과 서구사조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유교적 정통성이 소멸되는 과정을 겪어야 했다. 과거의 유교사상이 정치에 치중한 관례를 벗어나 유교적 도의 고취와 윤리의 확립에 가치관을 두었다. 1945년에 전국의 유림대표 2,500여명이 모여 유도회(儒道會) 창립총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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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효자. 유복규(柳復奎)의 본관은 문화(文化), 호는 은민재(隱民齋)로 좌상(左相) 유만수(柳曼殊)의 후손이다. 은거(隱居)하면서 학문에 힘썼다. 여덟 개의 잠언(箴言)을 지어 스스로의 경계로 삼았다. 부모를 모심에 효성이 지극하였다. 집이 가난하였지만 물고기를 잡고 땔감을 팔아 항상 맛난 음식으로 부모를 봉양하였다. 부모가 병이 들자 대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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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창원 출신의 효부이자 열녀. 윤재홍 처 강씨의 열행 사실은 1899년(고종 36)에 편찬된 『창원읍지(昌原邑誌)』에는 전하지 않는데, 이로 미루어 『창원읍지』 편찬 후인 조선 말기로 짐작된다. 윤재홍 처 강씨는 지금의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동에서 출생하였다. 극진한 효성으로 시부모를 모시어 근동에서는 효부로 칭찬이 자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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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진해 출신의 효자. 윤치언(尹致彦)은 조선 시대 진해 지역에 살았던 효자로 부모를 섬기는 효성이 지극하였다. 부모 섬기는 효성이 지극하여 집에 기르는 개도 그의 효심을 알고 그를 도왔다. 어느 날 외출하였을 때 집안에 급한 일이 있어서 그 아버지가 아들을 찾으니 집에 기르던 개가 그 뜻을 알아차리고 아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신발을 물고 짖어대니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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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열녀. 창녕 조씨(昌寧曺氏)는 조병관(曺秉寬)의 딸로 전주 이씨 이강두(李康斗)와 혼인하였다. 이강두 처 창녕 조씨는 시집간 지 얼마되지 않아 남편이 병들어 위독하게 되었다. 온갖 정성을 다하여 구완하며 백약으로 치료하면서 하늘에 기도하여 대신할 것을 청하였다. 남편이 죽어 상을 당함에 늙으신 시조모를 위로하며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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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효자. 이강영(李康榮)[?~?]은 이정현(李廷賢)의 조카로 성품이 어질고 효심이 깊었다. 부모를 모심에 있어 몸과 마음을 항상 바르게 하였다. 부모의 병이 깊자 병을 낫게 해달라고 하늘에 기원하였다. 상(喪)을 당하여서는 3년 동안 머리를 풀어 내리고 지냈으며 날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부모의 묘소를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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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효자. 이경혁은 이일장(李日章)의 후손으로 호는 모헌(慕軒)이다. 성품이 어질고 효심이 깊었다. 부모의 상(喪)을 당하여서는 날마다 묘소를 살피며 슬프게 울면서 심히 애통해 하였다. 또 그는 독서를 좋아하였다. 마을에서 그의 효행을 칭찬하고 권장하여 상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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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효자. 이경화(李璟華)[?~?]는 본관은 성주. 호는 은우(隱隅)이며 고성 현감을 지낸 이일장(李日章)의 후손이다. 이경화는 학문이 높고 효행이 돈독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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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효자. 이국로는 본관은 성주. 호는 이촌(梨村). 이일장(李日章)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이세갑(李世甲)이다. 이국로(李國魯)[?~?]는 타고난 품성이 효성스러웠다. 그의 아버지가 찹쌀떡을 좋아하여 매년 2두락 밭에 찹쌀을 심었는데 갑술년 여름 가뭄에 벼 이삭이 말라가게 되었다. 하늘을 우러러 울며 기도하니 하늘에서 홀연히 소나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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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효부. 선산 김씨(善山金氏)는 김채규(金采珪)의 딸이며 전주 이씨 이극(李克)과 혼인하였다. 집안이 매우 가난하여 몸소 나물을 캐고 나무를 하여 생계를 이어가면서도 시부모를 모심에 그 입에 맞게 봉양하였다. 계묘(癸卯)년에 흉년이 들어 그 자신이 병이 들었음에도 머리카락을 잘라서 쌀을 바꾸어 공양하였다. 이 때 도둑의 무리가 습격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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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효자. 이기린(李起麟)[?~?]은 부모를 모심에 지극히 효성스러웠고 예를 갖추어 봉양하였다. 부친의 병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여 소생시켰다. 상을 당함에 관을 부여안고 통곡함이 마치 어린아이가 어미를 잃은 듯하였다. 이 때 나이가 66세였다. 초상에 예를 다하여 치름이 모두 예법에 합당하였고 삼년상을 치르는 동안 죽을 먹으며 지내 얼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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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효자. 이기백(李起伯)[?~?]은 성주 이씨 이국로(李國魯)의 손자로 호는 경와(耕窩)이다. 효심이 깊고 우애가 돈독하였다.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서는 날마다 묘소에 들렀다. 간혹 홍수가 들어 묘소에 가지 못할 때에는 해안가에 가서 묘소를 바라보며 절을 하였다. 겨울에 눈이 내려 쌓이면 반드시 빗자루를 가지고 가서 쓸었는데 종신(終身)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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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열녀. 전주 이씨(全州李氏)는 경주 이씨 이기준(李機駿)과 혼인하였다. 이기준 처 전주 이씨는 남편이 병이 들어 위독해지자 세 번에 걸쳐 다리살을 베어 약에 섞어 공양하니 살이 다 하여 뼈가 드러날 지경이었다. 그 남편은 그것을 먹고 끝내 병이 쾌유되어 일어났다. 암행어사에게 전주 이씨의 열행이 알려져 포상이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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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 지역의 열녀. 삭령 최씨(朔寧崔氏)는 최인급(崔人岌)의 딸이며 성주 이씨 이동신(李東新)과 혼인하였다. 이동신(李東新)의 처 삭령 최씨(朔寧崔氏)는 남편이 중병에 들어 눕자 온갖 정성을 다하여 구호함이 지극하였다. 매일 목욕 재계하고 밤낮으로 하늘에 기도하며 대신하기를 청하였다. 그러나 필경에 남편이 죽자 손수 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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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출신의 효자. 이득희는 『창원군지』 등에 효행 내용이 전승되고 있는 것을 보아 창원시와 연고가 있는 인물로 추정된다. 17세 때 어머니가 괴질을 얻어 눕지도 일어나지도 못하고 음식을 자유로이 먹지 못하자 한시도 옆을 떠나지 않고 정성으로 봉양하였다. 또한 부인 박씨도 지아비와 같이 효성이 지극하여 30년을 하루같이 시어머니를 봉양하였다. 향리에서 효자·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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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효자. 이명모(李命模)[?~?]는 이춘혁(李春赫)의 증손으로 호는 낙계제(樂溪齊)이다. 어려서부터 효심이 깊어 어머니를 모심에 맛난 음식으로 극진히 봉양하였다. 어머니의 상(喪)을 당하여서는 예(禮)를 다하여 통곡하였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추모하며 삼년 동안 상복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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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 지역 출신의 효자 이백도(李伯道)[?~?]는 어려서 아버지의 마마병을 입으로 빨아 낫게하고 장성하여 처 강씨와 함께 부모를 정성으로 모셨다. 아버지 나이 팔십에 종기가 생기자 부부가 번갈아 빨아내어 치유하였다. 또 어머니께서 병으로 위독하자 손가락을 잘라 소생시켰다. 상을 당함에 매일 세 차례 성묘하고 곡을 하며 삼년상을 치루었다. 고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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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효자. 이부화는 본관은 성주. 고성 현감을 지낸 이일장(李日章)의 후손이다. 이부화는 아버지가 병으로 7년을 누워 지냈는데 그 동안 온갖 정성을 다하여 끝내 소생시켰다. 상을 당하여 삼년동안 여묘살이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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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창원 출신의 효자. 이석년의 본관은 경주(慶州). 할아버지는 이성문(李聖門), 아버지는 이순적(李順迪)이다. 이석년은 정려비의 비문에 비추어 볼 때 1700년대 인물로 여겨진다. 당시 창원부 상남면 신덕리[현 경상남도 창원시 토월동]에 살면서 손수 농사를 지어 부모님을 봉양하였다. 어머니가 죽자 지극 정성으로 상을 치렀다. 아버지가 병이 나서 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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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창원 지역의 열녀. 이두식(李斗植)의 딸이며 이여근(李汝根)과 혼인하였다. 이여근 처 전의 이씨(李汝根 妻 全義李氏)[?~?]는 시집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이 요절하자 슬프게 통곡하며 순절할 것을 생각하였다. 그러나 시부모가 노쇠하고 남편이 후사가 없는 것을 생각하여 몸소 상례를 집례하며 염습을 행하였고 예를 다하여 소상과 대상을 치루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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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창원 지역의 효자. 이응록(李應祿)[?~?]은 타고난 성품이 효성스럽고 우애로왔다. 부모를 모심에 있어 예법과 도리가 있었다. 향촌에서는 그의 효성과 행실에 대해 칭송이 높았다. 고을의 사람들이 이응록의 효성과 행실을 높이 기려 칭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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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효자. 이찬휘(李贊輝)[?~?] 는 이보(李𥙷)의 후손으로 성품이 어질고 효심이 깊었다. 집이 가난하였지만 맛난 음식으로 부모를 극진히 봉양하였다. 부모가 병이 들자 산에 들어가 백일 동안 기도를 드리는데 호랑이가 문득 나타나 이찬휘를 보호하였다. 마침내 영약(靈藥)을 얻어 봉양하니 효험을 보았다. 상(喪)을 당하여서는 극진히 예(禮)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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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감계리에 있는 영산신씨 도천파(都泉派) 문중 재실. 인보정은 중방마을에 입향한 영산신씨(靈山辛氏) 도천파 26세 이후 선조를 제향하는 문중 재실이다. 북면의 지방도 1045호선 굴현에서 약 3.2㎞ 정도 가면 나오는 화천교에서 감계리 방면으로 분기된 도로를 따라 약 2㎞ 지점 감계리 중방마을이 나온다. 인보정은 마을 남서쪽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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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창원 출신의 효자. 임림(林淋)의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의중(義仲). 나주임씨 시조 임비(林庇)의 25세손이며 장수공파(長水公派)이다. 아버지는 임성립(林星立)이고, 아들은 임윤국(林潤國)이다. 임림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아버지의 병이 깊어서 매우 위급한 지경에 이르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서 주혈을 하여 회생시키기도 하였다. 나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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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창원 출신의 효자. 임성립의 본관은 나주(羅州). 나주임씨(羅州林氏) 시조 임비(林庇)의 24세손이며 장수공파(長水公派)이다. 아들은 임빈(林彬), 손자는 임윤국(林潤國)이다. 후손들이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용강리 일원에 살았으나 지금은 타지로 이주해 살고 있다. 임성립은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슬하에서 자랐으나 효성이 지극하였다. 14세때 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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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창원 출신의 효자. 임윤국의 본관은 나주(羅州). 나주임씨(羅州林氏) 시조 임비(林庇)의 26세손이며 장수공파(長水公派)이다. 할아버지는 임성립(林星立), 아버지는 임빈(林彬)이다. 후손들이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용강리 일원에 살았으나 지금은 타지로 이주하였다. 임윤국은 할아버지와 백부, 아버지로 이어진 효문에 태어났는데, 선대의 효행을 이어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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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효자. 임윤홍(林潤弘)[?~?]은 성품이 어질고 효심이 깊었다. 어머니가 병이 들었을 때 손가락을 베어 그 피를 마시게 하여 소생시켰다. 아버지가 병이 들어 겨울에 배[梨]를 먹고 싶다고 하자 배를 구할 수 없어 수풀 아래에서 통곡하였는데 홀연히 여러 종류의 배가 낙엽더미에서 나왔다. 그것을 가지고 돌아와 봉양하였다. 상(喪)을 당하여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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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창원 출신의 열녀. 장귀 처 양씨는 지금의 경상남도 창원시 사화동에서 태어났다. 남편 장귀가 죽어서 장사를 지내려 하는데, 장귀 처 양씨가 목을 매어 죽어 남편과 한 무덤에 묻혔다. 장귀 처 양씨의 열행이 조정에 알려져 정려가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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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대산면 유등리에 있는 김해 김씨 문중 서원. 저산 서원은 현대에 건립된 서원으로서, 고려 후기 문신인 김관(金菅)을 주향으로 하여, 김문숙(金文淑)·김항(金伉)·김서(金湑) 등을 배향하고 있다. 김관은 안향과 도의로 사귀어, 함께 충선왕을 호종하여 원의 수도에 머물면서 주자학을 연구하고 고려에 도입하였다. 충혜왕과 충목왕 때도 외교와 정치에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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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창원 출신의 효자이자 자선사업가. 본관은 옥산(玉山). 자는 사영(士榮). 아버지는 전대홍(全大洪)이며, 아들은 전철환(全哲煥)·전병환(全秉煥)·전연환(全延煥)이다. 전근효(全根孝)는 어려서부터 효심이 지극하여 부모를 극진히 봉양하였으며, 형제간의 우애도 깊었다. 형이 어려서 죽고 난 후에 가정 살림을 맡아 배움에 전념할 수 없었지만, 근면함과 성실함으로 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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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창원 지역의 열녀. 진양 정씨 정시갑(鄭時甲)과 혼인하였다. 정시갑 처 안동 권씨(鄭時甲 妻 安東權氏)[?~?]는 가난한 정시갑의 집에 시집갔다. 시아버지가 병들어 눕자 몸소 나무를 하고 물고기를 잡으며 생업을 지탱하면서도 온갖 봉양을 다하였다. 그러다 남편이 병들어 죽자 따라서 순절하려다가 홀로 계시는 시아버지와 어린 자식을 생각하여 마음을 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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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창원 지역의 효부이자 열녀. 정주안 처 안씨의 효행과 열행의 시기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1997년 편찬된 『창원시사』에 전해 온다. 정주안은 지금의 경상남도 창원시 웅남동 출신의 사람이다. 안씨는 정주안과 결혼 후 시아버지가 눈이 멀고 남편도 병이 들었지만, 수십 년을 한결같이 시아버지를 봉양하고 남편을 섬기어 효부와 열녀로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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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진해 출신의 효자. 정창진(鄭昌鎭)[?~?]은 양경공(良景公) 정희계(鄭熙啓)의 후손으로 성품이 어질고 효심이 깊었다. 아버지가 병이 들자 하늘에 기도하면서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마시게 하여 병세를 호전시켰다. 어머니가 병이 깊을 때도 그렇게 하였고, 6년 동안 탕약(湯藥)을 달여 봉양하였다. 마을에서 여러 번 그 효행을 기록하여 포상(襃賞)을 청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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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진해 지역의 효부. 영응대군(永膺大君) 이염(李琰)의 후손인 이방영(李邦영)의 딸이다. 정창진(鄭昌鎭)과 혼인하였다. 정창진 처 전주 이씨(鄭昌鎭 妻 全州李氏)[?~?]는 성품이 효성스러웠다. 시어머니가 병으로 눕자 변을 맛보아 차도를 살폈고 하늘에 기도하여 병이 났기를 빌었다. 상을 당함에 예를 다하여 치루어 내니 고을에서 글을 올려 포상하기를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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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창원 지역의 효자. 본관은 진양이다. 정필형(鄭弼衡)[?~?]은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를 모심에 정성을 다하였다. 어머니의 상을 당함에 3년을 여묘 살이를 하였고 아버지의 상을 당한 것에 정성을 다하지 못한 것을 더하여 6년간 복을 입었다고 한다. 나라에서 정려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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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효자. 조성학(趙性學)[?~?]은 부모를 모심에 효심이 지극하였다. 어머니가 병이 들자 대변을 맛보며 병세를 살폈으며 병을 낫게 해달라고 하늘에 기원하였다. 마을의 선비들이 여러번 조성학의 효행을 기록하여 포상(襃賞)을 청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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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창원 지역의 열녀. 이흥신(李興臣)의 딸로 조성학(趙性學)과 혼인하였다. 조성학 처 성주 이씨(趙性學 妻 星州李氏)[?~?]는 가난한 집안으로 시집가서 남편이 병들자 온 고을을 돌면서 구걸하면서도 생업을 지탱하였다. 고을에서 성주 이씨의 열행을 높이 기려 여러 번의 포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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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창원 지역의 열녀. 의생(醫生) 조원서(趙元瑞)와 혼인하였다. 조원서 처 황소사(趙元瑞 妻 黃召史)[?~?]는 혼인한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이 병들자 지극 정성으로 수발하며 하늘에 병이 낫기를 기도하였다. 병 문진을 가는 길에 호랑이가 길을 막자 울며 호소하니 길을 열어 주었다. 남편의 상을 당하여 예를 다하여 초상을 치르고 초상이 상이 끝나자 약을 먹고 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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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창원 지역의 효자. 조윤사(曺允師)[?~?]는 용모와 행실이 높고 단정하며 문장과 덕행이 다른 사람들보다 걸출하였다. 부모를 모심에 지극하여 아침저녁으로 문후하는 일을 조금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오랜 병으로 누워계실 때 약탕을 손수 달여 봉양하였고 아침저녁으로 변을 맛보아 병의 차도를 시험하였다. 임종을 맞이하여 손가락을 잘라 피를 흘려 넣어 회생하게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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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창원 지역의 효자. 조창복(曺昌復)[?~?]은 어려서부터 천성이 효성스럽고 우애로웠다. 집의 살림이 지극히 가난하였으나 부모를 봉양함에는 부자와 같이 넉넉히 하였다. 아버지가 병들자 육 년을 하루같이 탕약을 달여 받들고 입에 맞는 음식을 구해 봉양하며 한결같은 마음으로 조금도 게을러지지 않았다. 양친의 상을 당하였을 때에도 조금도 예법에 어긋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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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진해 출신의 효자. 주병석(朱秉奭)[?~?]은 부모님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다. 어느 날 주병석이 부친의 약을 지어 돌아오는 밤길에 큰 발티 고개에서 범이 주병석의 효심에 감응하여 길을 비켜준 일이 있었다. 또한 집안의 밭에 인삼이 저절로 자라는 일도 있어서 위독한 부친의 병환에 그 인삼을 써 쾌유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아버지는 83세에 이르도록 장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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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의 효자. 주정원의 본관은 신안(新安)이고, 자는 재삼(在三), 호는 국정(菊井)이다. 신안주씨(新安朱氏)의 시조 주희(朱熹)의 30세손이며 웅천파(熊川派)이다. 아버지는 주봉갑(朱鳳甲), 부인은 문씨(文氏)이다. 후손들은 경상남도 진해시 일원에 거주하며 기제를 지내고 있다. 주정원은 당시의 창원부 진해면[현 경상남도 진해시 석동 일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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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진해 출신의 효자. 주한혁(朱漢奕)[?~?]은 사람됨이 순수하고 부지런하며 신중하였다. 집안에서는 효자로 사람됨이 세속에 물들지 않고 매사를 삼가고 부모님 생전에 효성도 지극하였다. 돌아가신 뒤 무덤 옆에 막을 짓고 3년의 시묘(侍墓)를 하는 동안에도 그 정성이 지극하여 고을 사람들이 모두 감복하였다. 1618년(광해군 10) 나라에서 그의 행실을 기려 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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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원계리에 있는 서원. 증산 서원은 창계공(昌溪公) 서응시(徐應時)를 추모하여 달성 서씨 후손들이 건립하였다. 증산 서원은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원계증산길 43[원계리 520]에 있다. 이는 내서읍 원계리 마을 입구의 정자나무를 끼고 왼편에 위치한 지점이다. 구한말 대지 200평에 건평 60여 평의 서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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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창원 출신의 효부. 진정원 처 정씨의 효행은 1899년(고종 36)에 편찬된 『창원읍지(昌原邑誌)』에는 전하지 않는데, 이루 미루어 『창원읍지(昌原邑誌)』 편찬 후의 일로 짐작된다. 진정원 처 정씨는 창원부 동쪽 봉곡[현 경상남도 창원시 봉곡동] 출신이다. 시아버지가 병이 들어 오랫동안 자리에 눕게 되자 등에 종기가 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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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북부동 산32-1 일원에 있는 조선 시대의 관학 교육 기관 터. 향교는 중등정도의 지방관학으로 지방의 양반 자제 교육 및 공자를 비롯한 중국과 우리나라의 성현에 대한 향사를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지방 문화의 향상 및 사풍 진작 등 사회 교육적인 기능도 지니고 있다. 조선 초기에는 적극적인 진흥책을 실시한 결과 전국의 부·목·군·현에 향교가 설치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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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북부동 569-6, 572-2 일대에 있는 조선 시대의 관학 교육 기관 터. 향교는 지방의 양반 자제 교육 및 공자를 비롯한 중국과 우리나라의 성현에 대한 향사를 목적으로 설립한 지방의 중등 관학 기관이며 아울러 지방 문화의 향상 및 사풍 진작 등 사회 교육적 기능도 지니고 있다. 조선 초기 적극적인 향교 진흥책을 실시한 결과 전국의 부·목·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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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창원 출신의 효부이자 열녀. 진흥은 처 강씨는 창원도호부 봉곡[현 경상남도 창원시 봉곡동] 사람이다. 강씨는 시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근동에서 효부로 칭찬이 자자하였다. 어느 날 남편 진흥은이 병으로 자리에 눕자 백방으로 수소문해 약을 구해 먹이고 간호하였으나 차도가 없었다. 남편을 살려 달라고 정성을 다해 하늘에다 빌기도 하고 심지어는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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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오서리에 있는 안동 권씨 재실. 안동(安東) 권씨(權氏) 문중 회계 서원(檜溪書院)의 지원(支院) 격이었던 이 재사(齋舍)는 건립 초기에는 문중의 재실 겸 한학 서숙으로 사용되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사립 경행 학교의 건물로 사용되어 신식 교육의 요람으로써 기능하였다. 또한 민족 운동의 근거지로 많은 애국 열사를 배출하기도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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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내리동 반룡산에 있는 조선 후기 회산감씨 재실. 창원의 반룡산은 현재 팔룡산으로 불리는데 창원과 마산의 경계이다. 이 반룡산의 남동쪽 끝에 위치한 군사 시설 안에 회산감씨 삼열공파의 재실인 관술정(觀術亭)이 있다.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의 선봉장으로 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오른 감경인(甘景仁)[1569~1648]의 호가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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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구산면 내포리에 있는 비각(碑閣). 내포리의 삼효각(三孝閣)은 구산면 내포리에 거주하였던 조선 후기의 진양 강씨(晋陽姜氏) 강태형(姜泰馨)·강내형(姜乃馨)·강재형(姜載馨) 3형제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905년에 건립한 비각(碑閣)이다. 비문에 따르면 이들 3형제는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 생전에는 3형제가 정성을 다하여 부모를 보살폈으며, 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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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지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조치우의 부인 창원 박씨의 효심을 기리기 위한 옥비. 정우당 조치우는 조선 중종 때 대구 부사·예천 군수 등을 역임한 인물로 청렴하면서 선정을 베푼 공적이 뛰어나 청백리로 기록되어 있다. 정우당 조치우와 부인 창원 박씨는 노모 봉양 등 효심이 지극하였는데 이를 기리기 위하여 임금이 조치우 부부에게 『소학(小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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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해운동에 있는 서원. 월영 서원(月影書院)은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해운동에 월영대(月影臺)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1713년(숙종 39)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의 학문과 업적을 추모하여 창건하고 위패를 봉안하였다. 최치원이 생전에 자주 거닐던 곳에 선생의 학덕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서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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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소답동에 있는 조선 전기 지방 교육기관. 창원 향교는 지방의 교육기관이지만 중앙의 성균관과 마찬가지로 제사를 드리는 문묘(文廟), 강학 공간인 명륜당(明倫堂) 및 중국과 조선의 선철(先哲)·선현(先賢)을 제사하는 동무(東廡), 서무(西廡)와 동재(東齋), 서재(西齋)가 있다. 향교는 각 지방 관청의 관할 하에 두어 부(府), 대도호부(大都護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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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에는 많은 역사적인 인물들이 있고 또한 그들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그 중 유학자로서 최초의 인물은 신라의 최치원(崔致遠)이다. 최치원은 월영대와 관련된 설화로 회자되고 있으나 징험할 자료가 없다. 그 이후 고려시대에도 창원 지역을 거쳐 간 많은 인물들이 있으나 이들이 창원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는 알 수 없다. 창원 지역에 유학이 제대로 진작된 것은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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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소답동에 있는 창원 향교에서 공자를 비롯한 성현들을 기리던 제향 공간. 조선 왕조는 개창 후 일읍 일교(一邑一校)의 원칙에 따라 수령이 파견된 지역에는 중등 유교 교육 기관으로 향교를 설립하였다. 지방의 각 고을에 설치된 향교는 교육의 기능과 함께 성현인 공자를 제향하는 교화의 기능을 아울러 수행하였다. 특히 조선 중기 이후에는 교화의 기능이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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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삼계리에 있는 재실. 첨두 서원은 임진왜란 때 왜적과 맞서 공을 세워 선무 원종 이등 공신(宣武原從二等功臣)에 책록된 노경종(盧景宗)을 추모하여 교하 노씨 후손들이 건립한 재실로 1981년 향교 유림에 의해 서원으로 승격되었다. 서원으로 승격된 시기에 대해서는 기록들 사이에 차이가 있다. 1731년에 서원으로 건립되었다가 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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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월백리에 있는 김해김씨 삼현파(三賢派) 문중 재실. 첨모재는 김해김씨(金海金氏) 창원 입향조인 김현루(金顯僂)를 배향하는 후손들의 추모당이다. 김현루는 통정군자감(通政軍資監)으로 추증된 인물이다. 북면의 국도 79호선 굴현에서 5㎞ 정도 가다가 동읍 화양리 방면으로 분기하여 도로를 따라 1.5㎞ 이르면 백월산 남쪽의 월백리 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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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삼동동에 있는 최윤덕 장군의 정려각. 창원시 삼동동 충혼탑 옆에 있는 조선 태종, 세종 대에 공적이 뛰어났던 정렬공 최윤덕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정려각이다. 창원시 소답동에 세웠던 것을 창원시 삼동동 충혼탑 옆으로 이건하였다. 6판의 중건기가 있으므로 6번 중건한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목조기와로 된 건축물의 형태이다. 정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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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두척동 두곡 마을에 있는 영당. 최치원 영당에는 최치원의 영정과 선생이 13세 때 썼다고 전해지는 필적이 봉안되어 있다. 이곳에 봉안된 영정의 제작자와 연대는 알 수 없으나 하동 쌍계사에 보관되어 있던 것을 조선 고종 시기에 옮겨 왔다고 한다. 필적 역시 1870년에 최씨 문중이 인수하였다고 하지만 그 이전에 어디에 있었는지는 명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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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지개리 대한마을에 있는 일제강점기 창녕조씨 승지공파(承旨公派) 문중 재실. 추감당은 본관이 창녕(昌寧)인 조치우(曺致虞)를 배향하는 문중 추모당이다. 조치우는 조선 성종 때 문신으로, 1494년(성종 25) 별사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검열을 거쳐 성균관전적이 되어 『성종실록(成宗實錄)』 편찬에 참여하였다. 예천군수를 지내면서 선정으로 이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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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적현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창원황씨 재실. 김종하의 『창원군지』「추경각기(追敬閣記)」에 의하면 추경각이 지어지게 된 경위는 다음과 같다. 창원황씨의 시조 시중공(侍中公)의 분묘는 창원의 적현(赤峴)에 있다. 옛날에 재실이 있었는데 영모재(永慕齋)이다. 창원황씨인 상서(尙書) 황기연(黃耆淵)이 매번 제사의 일을 주관하였으나 재실이 좁아서 다 수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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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사림동에 있는 일제 강점기 비각. 원래 창원 대학교 인문대학 건물 뒤편에 있었으나 교내 시설 용지로 편입됨에 따라 1987년 지금의 위치인 학군단 뒤편으로 옮겨 세웠다. 이전할 때 주춧돌과 지붕 등을 크게 수리하였다. 추모각은 어모장군 김중철의 유허비를 보호하기 위해 1954년 세웠다. 육주식(六柱式) 단칸 목조 건물로 지붕은 팔작지붕이며,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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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무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밀양박씨 장사랑공파(將仕郞公派) 문중 재실. 배향위는 밀양박씨 충헌공 8세손, 장사랑공 4세손, 박태손(朴泰孫)과 아들 박계(朴桂)이다. 박태손은 문과행사직증참의였고 박계는 통사랑을 지냈다. 박계가 무동리에 입향하여 집성촌을 이루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문중의 화목과 번창을 위한 문중 돈목계(敦睦稧)가 1893년에 결성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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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신촌리에 있는 조선 말기 창원황씨 문중 재실. 추모재는 선조를 향사하고 후손들의 강학 장소로 쓰였던 사립 교육기관이다. 첨정을 지낸 황룡발(黃龍潑), 통정(通政)에 오른 황세발(黃世潑)을 향사하고 있다. 황룡발은 창원황씨 논산 입향조로서 학문에 힘쓴 사람이며, 그 후손들이 이 마을에서 번성하였다. 향사일은 3월 25일이다. 기문에 의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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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 출신이거나 창원 지역에서 국가나 민족을 위해 충성을 다하였거나 절의를 지킨 사람들의 행적. 충절이란 충성(忠誠)과 절의(節義)를 합한 말이다. 충(忠)이란 말이 성(誠)과 결합하는 이유는 충과 성이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충(忠)은 진심진기(盡心盡己)라고 풀이한다. 즉 몸과 마음을 다한다는 의미이다. 성(誠)은 진실무망(眞實無妄)이라고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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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사림동에 있는 조선 후기 순흥안씨 문중 서당. 퇴산서당은 처음에는 임진왜란 때 용감하게 싸우다가 전사한 사헌부감찰 안민(安慜)과 그의 큰아들 안신갑(安信甲) 부자를 기리기 위해 봉림동 적암(赤巖) 아래에 건립한 사우(祠宇)였는데, 뒤에 사학(私學) 교육기관인 서당으로 이용되었다. 서당은 사설 초등교육 기관으로, 사학이나 향교에 진학하기 위한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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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창원 출신의 효자. 팽붕석(彭鵬錫)의 본관은 절강(浙江). 자는 우칠(禹七), 호는 효우당(孝友堂). 절강팽씨 시조 팽우덕(彭友德)의 10세손으로 아버지는 팽화일(彭華日)이고, 어머니는 분성배씨(盆城裵氏)이다. 『절강팽씨세보(浙江彭氏世譜)』에 의하면, 족명은 관석(寬錫)이고 속명은 봉석(鳳錫)이다. 팽붕석은 효행이 극진하였으며, 효행으로 이적이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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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소답동에 있는 조선 전기 창원향교의 정문 누각. 향교는 조선시대 지방의 양반 자제를 위한 교육기관으로서 전국에 걸쳐 행적구역을 단위로 설립되어 있었다. 대성전·동무·서무·명륜당·동재·서재·풍화루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풍화루는 유학생들이 풍류(風流)를 즐기며 시를 짓고 사색도 하며 여가를 보내던 곳이다. 풍화루는 창원시 의창동에 속한 북동과 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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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창원 지역의 효자. 본관은 청주. 호는 농은(農隱)이다. 한경유(韓敬維)[?~?]의 아버지가 기이한 병이 들어 눕자 10년을 하루같이 탕약을 달여 올렸으며 모든 음식을 입에 맞게 정성을 들여 마련하였다. 어느 더운 여름날에 물고기를 잡아가는데 왜가리 한 마리가 물고기를 물고 날아갔다. 그가 울면서 호소하니 다시 돌아와 물고기를 떨어뜨리고 갔다. 겨울에 또한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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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창원 출신의 효자. 한철충(韓哲冲)의 후손이다. 한광택(韓光宅)[?~?]은 성품이 어질고 효심이 깊었다. 부모를 모심에 기쁜 마음으로 섬겼으며, 상(喪)을 당하여서는 눈물을 흘리며 슬프게 울었다. 아침저녁으로 부모의 묘소를 찾아 살폈는데 비바람이 부는 날에도 항상 성묘(省墓)를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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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창원 지역의 효자. 한도원(韓道源)[?~?]은 아우 한필원(韓必源)과 더불어 형제가 모두 효도를 다하였다. 아버지가 병이 들어 위독하자 형제가 함께 허벅지 살을 베어 먹였다. 상을 당하자 장례를 치르는 동안 같이 여묘(廬墓) 살이를 하였다. 고을에서 한씨 형제 효행을 높이 기려 여러 번 포상을 청하는 장계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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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창원 출신의 효자. 한필원(韓必源)[?~?] 은 부모에 대한 효심이 깊었다. 아버지가 병이 들자 허벅지의 살을 베어 내어 봉양하였으며, 상(喪)을 당하여서는 함께 여묘 살이를 하였다. 향도(鄕道)에서 여러 번 그 효행을 기록하여 포상(襃賞)을 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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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창원 출신의 효자. 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근와(謹窩)이다. 허준(許鎨)[?~?]은 성품이 어질고 효심이 깊었다. 부모의 상(喪)을 당하여서는 극진히 예(禮)를 다 하였고, 3년 동안 부모의 묘소를 찾아 살폈다. 비바람이 불어도 그 일을 그치지 않았는데 절을 한 자리에 구덩이가 파졌다. 이종기(李鍾杞)와 김도화(金道和) 문중(門中)에 유학하여 경서(經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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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창원 지역의 효자. 호는 임헌(林軒). 할아버지는 황상옥(黃尙鈺)이며 아버지는 황재하(黃再河)이다. 황심(黃審)[?~?]은 부모를 섬김에 지극한 효성을 다하였다. 음식을 봉양함에 입맛에 어긋남이 없었다. 상을 당함에도 예를 다하여 장례를 치렀고 삼년상을 치르는 동안 날마다 곡을 하여 피눈물을 흘렸다. 또한 경서를 공부하고 예학을 익히는 것을 좋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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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효자. 황하룡은 조선 성종·연산군 대에 창원도호부 서쪽 물리동에 살았다. 형 황한룡(黃漢龍)과 함께 지극한 정성으로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돈독하였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여막살이로 효행을 다하였다. 경상도에서 계를 올려 조정에서 조세와 요역을 면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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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효자. 황한룡은 조선 성종·연산군 때에 창원도호부 서쪽 물리동에 살았다. 동생 황하룡(黃夏龍)과 함께 지극한 정성으로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돈독하였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여막살이로 효행을 다하였다. 경상도에서 계를 올려 조정으로부터 요역을 면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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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오서리에 있는 서원. 회계 서원은 조선 중기 인조 시기 증 이조참판(贈吏曹參判)에 책정된 월암(月巖) 권용현을 향사하던 서원이다. 1841년 여러 사람들의 뜻에 따라 권용현의 학문과 행의를 기리기 위하여 서원으로 건립되었으나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따라 폐쇄되었다. 이후 한동안 서원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채 방치되었던 건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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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봉림동에 있는 김해김씨 경파 재실. 회남정은 경상남도 창원시 봉림동의 서편에 위치하고 있다. 정면 4칸, 측면 1.5칸의 규모이며, 실의 구성은 툇마루가 있는 온돌방 2칸, 대청, 툇마루가 있는 온돌방 1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청 배면에는 감실을 두었는데, 상층에는 위패를 봉안하고, 하층에는 제기를 보관하고 있다. 모르타르로 마감한 기단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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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교방동에 있는 서원. 두척산 산정에서 교방, 교원, 성호, 회원으로 흘러내리는 계곡 언저리에 고옥 한 채가 있다. 현판에는 ‘관해정(觀海亭)’으로 되어 있지만 이곳은 본래 회원 서원이었다. 조선 시대 선조와 광해군 시기의 학자 한강(寒岡) 정구(鄭逑)가 이곳에서 문하생들에게 시서를 강론하였다. 정구는 함안 군수로 재직하던 시절 이곳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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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용잠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정려각. 효원각은 조선 전기 효자 옥석견(玉石堅)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의령 옥씨(宜寧玉氏) 문중에서 세운 정려각이다. 효자 옥석견은 조선 전기 창원도호부 불천(佛川)[현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용잠리 인근] 사람으로서 아버지는 옥수(玉壽)이다. 생몰연대는 족보를 통해서도 확인되지 않는다. 경상도관찰사 강혼이 효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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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부모를 지극하게 섬겨 향리에서 효자로 칭송되었거나 나라로부터 복호, 정려 등에 의해 효자로 인정받은 남자. 효는 자식으로서 마땅히 어버이를 섬기는 마음과 몸가짐이다. 공자의 가르침에 따르면 효(孝)란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리는 것이며, 예로써 제사를 받드는 것이라고 하였다. 경상남도 창원 일원의 조선 시대에도 이러한 덕목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