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어대 전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1467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현북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광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56년 - 「희어대 전설」 통문관에서 발행한 『백제의 전설』에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2년 - 「희어대 전설」 한민에서 발행한 『여기가 부여다』에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21년 11월 - 「희어대 전설」 충남대학교 출판문화원에서 발행한 『부여 백제 전설 연구』에 관련 내용 수록
관련 지명 희어대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현북리
채록지 현북리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현북리 지도보기
성격 설화
주요 등장 인물 의자왕|처녀들
모티프 유형 역사적 사건|지명 유래담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현북리 일대에서 희어대와 관련하여 전하는 이야기.

[개설]

「희어대 전설」에서 ‘희어대’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현북리의 ‘희어티’라는 지명이 굴절되어 전하는 이름으로 보인다. ‘희어티’는 지질학적 특성에서 비롯된 지명으로 보이는데, 구비 전승되는 과정에서 역사적 사건과 결합하여 ‘희어대’라는 지명으로 전한다. 「희어대 전설」은 ‘희어대’라는 지명에 대하여 새롭게 더하여진 지명 유래담으로 볼 수 있다.

[채록/수집 상황]

「희어대 전설」은 1956년 통문관에서 발행한 홍사준(洪思俊)[1905~1980]의 『백제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고, 1992년 한민에서 발행한 『여기가 부여다』에도 수록되어 있다. 2021년 충남대학교 출판문화원에서 발행한 『부여 백제 전설 연구』에는 지명 유래담과 희어대와 희어티의 관계, 주민 인터뷰 등 조사한 자료가 함께 수록되어 있다.

[내용]

옛날에 부여읍에서 석성면 쪽으로 넘어가는 길에 ‘희녀고개’라는 곳이 있었다. 희녀고개에는 여러 미녀들이 사는 ‘희녀대’라는 대궐 같은 집이 있었다. 백제 의자왕(義慈王)이 때때로 희녀대에 와서 피로를 풀고는 하였다. 삼국 시대에는 백제가 땅이 비옥하여 풍족한 까닭에, 백제 땅을 노린 전쟁이 항상 있었다. 전쟁으로 인하여 의자왕은 세금을 많이 거두었고, 남자들을 징병하여 전쟁터로 보내었다. 그리고 아름다운 처녀들을 따로 수소문하여 희녀대로 보내었다. 백성들은 왕에게 크게 실망하였으나 의자왕은 개의치 않았다. 당나라가 신라에 기울고 신라와의 계속되는 전쟁으로 나라가 어려운 상황인 데도 매일 희녀대에 와서 놀았다.

의자왕이 주색에 빠져 있는 사이 나당 연합군이 쳐들어와 백제가 망하게 되었다. 희녀대의 처녀들 역시 적들에게 희생되고 말았다. 이후 백제가 망한 뒤 백성들 사이에서는 백제가 망한 것은 백성 탓이 아니라 임금과 신하들 때문이며, 백제 처녀들의 고운 모습이 사라진 것은 희녀대 때문이라는 말이 퍼졌다. 이후 희녀대는 텅텅 비게 되었지만 밤에 처녀들이 웃고 즐기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또 밤이 깊으면 고통스러운 소리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하여 통일 신라 시대에는 흉가로 불렸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모티프 분석]

「희어대 전설」의 주된 모티프는 ‘역사적 사건’이있다. 백제의 패망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 데 전승자들의 입장에서 당대 역사적 상황에 대한 부정적 속성을 강조하여 나타내고 있다. 다만 부정적 속성의 강조는 실제 역사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며, 과거 역사적 상황에 대한 지역민들의 안타까움이 담겨 있는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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