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상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902
한자 高相俊
영어공식명칭 Go Sangju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세도면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민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0년 12월 17일연표보기 - 고상준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0일 - 고상준 강경읍 독립 만세 시위 주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14일 - 고상준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형 언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6월 7일 - 고상준 경성복심법원에서 항소 기각으로 징역 1년형 확정
활동 시기/일시 1930년 - 고상준 임시 정부에 군자금 조달
몰년 시기/일시 1977년 7월 25일연표보기 - 고상준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87년연표보기 - 고상준 대통령 표창 수훈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고상준 건국훈장 애족장 수훈
출생지 중앙리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중앙리
거주|이주지 청포리 - 충청남도 부여군 세도면 청포리 지도보기
활동지 강경읍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갑동 산23-1] 독립유공자 2묘역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남성

[정의]

부여 지역에 거주하였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고상준(高相俊)[1900~1977]은 1900년 12월 17일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전국에서 만세 시위가 격화되자 당시 부여군 세도면 청포리에 거주하던 고상준은 3월 6일 창영학교에서 엄창섭(嚴昌燮)·추병갑(秋炳甲)·서삼종(徐三鍾)·김종갑(金鍾甲)·추성배(秋聖培) 등과 함께 강경읍에서 만세 시위를 벌이기로 결의하였다. 세도면 청포리와 강경 포구는 금강을 끼고 마주하며 수로로 직결되어 있었다.

고상준 등은 3월 10일 오후 3시 옥녀봉에 모인 군중에게 전날 만들어 둔 태극기를 나누어 주고 ‘대한 독립 만세’를 선창하며 강경 읍내로 시위 행렬을 이끌었다. 시위대는 강경 장터에 모인 군중과 합세하여 만세 시위를 이어 가다가 일제 경찰에 의하여 강제 해산되었고, 고상준은 시위를 주도한 이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고상준은 1919년 4월 1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았고, 6월 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항소 기각으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1930년에는 함께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던 강세형(姜世馨)을 통하여 임시 정부 군자금 조달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고상준은 1977년 7월 25일 사망하였다.

[묘소]

고상준의 묘소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갑동 산23-1]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2묘역에 있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고상준의 공적을 기려 1987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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