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505
한자 窺岩 懿惠公主 胎室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함양로 82[함양리 97]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행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조성|건립 시기/일시 1523년연표보기 - 규암 의혜공주 태실 건립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41년 - 규암 의혜공주 태실 발견
문화재 지정 일시 2004년 12월 22일연표보기 - 규암 의혜공주 태실 부여군 향토문화유산 제71호 지정
현 소재지 규암 의혜공주 태실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함양로 82[함양리 97]지도보기
출토 유물 소장처 국립고궁박물관 - 서울특별시 종로구 효자로 12[세종로 1-57]
성격 능묘
관련 인물 의혜공주
관리자 규암면 함양리마을회
문화재 지정 번호 부여군 향토문화유산 제71호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함양리에 있는 조선 전기 공주의 태실.

[개설]

규암 의혜공주 태실(窺岩 懿惠公主 胎室)은 조선 시대 중종(中宗)의 둘째 딸이자 문정왕후(文定王后) 윤씨의 딸 의혜공주(懿惠公主)의 태실(胎室)이다. 태실은 왕실에서 출산이 있을 때 출생아의 탯줄을 봉안하고 표석을 세운 곳을 말한다. 규암 의혜공주 태실은 1941년 청농정이라는 정자를 짓기 위하여 터를 다지던 중 발견되었다. 이때 태지석, 태항아리 2점, 명반 1점, 분청사기 등 7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1941년 6월 이왕직전사가 내려와 태호를 옮겼으며, 태호는 현재 서삼릉에 있다. 백자 태항아리와 태지석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소장되어 있다. 규암 의혜공주 태실은 2004년 12월 22일 충청남도 부여군 향토문화유산 제71호로 지정되었다.

[건립 경위]

규암 의혜공주 태실의 건립 경위는 명확하지 않으나 태지석에 따르면 1523년 윤4월 13일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

규암 의혜공주 태실은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함양로 82[함양리 97] 도로변에 있다.

[형태]

규암 의혜공주 태실비는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다. 비석의 머리 부분은 반원형으로 연화문이며, 옆면은 3단이다. 상부에는 원좌 없는 연봉을 장식하였다. 비석의 받침돌에는 복련 12개가 있는데, 복련을 윗면에서 옆면까지 내려오게 조각하였다. 규암 의혜공주 태함 뚜껑은 평면 원형으로 상부가 둥글고 하부가 편평한 단면 반원형이며, 뚜껑 하부의 내부에는 평면 원형으로 얕은 감실을 팠다. 태함의 몸통은 평면 원형의 원통형으로 내부에 평면 원형의 감실을 깊게 팠다.

[금석문]

규암 의혜공주 태실비의 경우 마멸이 심하여 판독이 어려우며 앞부분의 ‘왕녀(王女)’ 정도만 확인될 뿐이다. 태지석에는 ‘황명정덕십육년삼월이십육일인시생(皇明正德十六年三月二十六日寅時生)’, ‘왕녀공주옥혜아지씨태실(王女公主玉蕙阿只氏胎室)’, ‘가정이년윤사월삼일사시장(嘉靖二年閏四月十三日巳時藏)’이라는 명문이 확인된다. 정덕 16년은 1521년(중종 16)에 해당하며, 이때 태어난 공주는 의혜공주가 유일하다. 태실의 주인이 의혜공주임을 알 수 있다. 가정 2년은 1523년(중종 18)에 해당하는데, 1523년 윤4월 13일에 태를 봉안하였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다.

[현황]

규암 의혜공주 태실비와 태함은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함양리 마을 입구 도로변 왼쪽에 있으며, 태지석은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규암 의혜공주 태실은 태실의 주인 및 조성 시기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여러 형태의 유물이 남아 있어 역사적, 고고학적 가치가 크다. 왕실 의례 및 묘제를 이해할 수 있는 유적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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